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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Jul 07. 2020

나만의 내밀한 글쓰기 공간


소설가 에이미 탄은 두꺼운 커튼으로 창문을 가린 자궁과 비슷한 공간에서 글을 쓴다고 고백했다. <작가의 공간> 에릭 메이젤 작가 역시 의자와 테이블, 고요함, 약간의 경외심만 있으면 어떤 공간이든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전한다. 나만의 아늑하고 한갓진 공간을 찾는 것. 나만의 물리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다.         


요즘의 나는 우리 집 식탁 위에서 글을 쓰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과 나무들이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영감을 주는데 창문 사이로 들려오는 맑고 청아한 새들의 지저귐이 글 쓰게 만든다. 딱히 시간은 정해두지 않고 틈틈이 글을 쓴다. 아이가 일어나기 전 아침 시간, 아이가 수업 듣는 시간, 아이가 학원 가 있는 시간 등. 엄마 역할이 있다 보니 아이 스케줄에 따라 글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 턱 없이 부족했다 유동적이다.

       

글을 쓰기 전 경건한 마음으로 식탁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조명을 켠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인 후 예쁜 찻잔에 티를 준비해 노트북 옆에 얌전하게 놓아둔다. 이 모든 의식이 끝나면 노트북을 켜고 글쓰기를 시작한다. 초점이 흐려질 때면 가끔 안경을 착용하는데 최근 시야가 자주 뿌예져 안경을 바꿀 시기가 온 것 같다.     


글을 쓰다 어깨가 뻐근해지면 자리를 옮겨 베개 2개를 등 뒤로 받친 후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글을 쓰기도 한다. 에릭 메이젤 작가의 말처럼 몸은 침대에 맡기고 정신은 생각이 이끄는 대로 자유롭게 떠다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침대가 지겨워질 즈음이 되면 소파로 옮겨와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다시 글을 쓴다.    


맛집 취재를 갈 때면 취재지가 곧 글쓰기 공간이다. 카페, 레스토랑, 한정식 집, 냉면집, 떡볶이 집까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만 있다면 모든 공간이 글을 쓸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인터뷰를 하며 노트북으로 내용을 받아 적은 후 뺄 내용은 빼고 덧붙일 내용은 덧붙여 원고를 작성해 나간다. 셰프가 음식 만드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사진 촬영이 길어지게 되면 그만큼 글 쓰는 시간이 늘어나 취재지에서 원고를 완성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다. 따로 기사를 정리할 필요가 없어 시간이 절약된다.     


하루에도 여러 군데 취재가 있는 날이면 빠른 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쁘다. 그러다 보면 원고 쓸 시간이 부족해진다. 그럴 때 애용하는 공간은 지하철이다. 앉을자리만 확보하면 글쓰기에 바로 돌입할 수 있다. 지하철은 마감이 다가오면 자주 찾게 되는 글쓰기 공간이기도 하다.     


내 취향의 집 주변 카페를 발견한다면 그곳은 글쓰기에 더없이 훌륭한 공간이다. 눈에 보이는 밀린 집안일에 대한 부담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 근처에 가끔 이용하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하나 있는데 노트북을 들고 1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곳이다. 그곳은 조명도 적당하고 소음도 적당하다.


가끔 마실 나온 내 또래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목소리가 커질 때면 이어폰을 꽂거나 이어폰을 챙겨 오지 못한 날은 대놓고 그들의 얘기를 엿듣기도 한다.  <언어의 온도>, <한 때 소중했던 것들>의 이기주 작가는 종종 낯선 이들의 대화를 엿듣곤 한다고 고백했는데 그의 글을 읽고부터 나도 엿듣기의 즐거움에 눈 뜨기 시작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의 글쓰기 공간은 주로 학교 앞 소공원 놀이터 벤치였다. 엄마들이 모인 공간보다 외진 곳에 자리를 잡아 원고를 써 내려갔다. 아이의 위치를 중간중간 눈으로 파악해가며 글을 써야 했기에 진도를 시원하게 빼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공간이다.     


같은 반 엄마를 만날 경우 얼른 노트북을 덮어두고 아이의 사생활을 관리해주는 엄마 역할로 재빨리 모습을 바꿨다. 치열하게 글을 썼던 시기였다. 취재 끝나자마자 지하철을 타고 마을버스를 갈아탄 후 아이를 데리러 부리나케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불과 몇 년 전 일인데 아주 머나먼 옛날이야기처럼 아득하다. 대한민국 모든 일하는 엄마들이 내용은 다르지만 그런 비슷한 시기를 보냈으리라 짐작해본다.


글쓰기 공간 중 마음의 곁을 두고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는 글을 쓰기보다 책 읽기를 주로 하지만 말이다. 책장 사이사이를 기웃거리며 책들을 구경하는 일은 내가 즐기는 놀이문화 중 하나다. 도서관 식당 영양사가 만들어준 균형 잡힌 밥도 챙겨 먹고 가성비 좋은 카페에 앉아 티타임도 즐긴다. 잡지가 읽고 싶으면 간행물실에 들어가 원 없이 잡지를 보다 나오면 된다.     


특히 여행 갈 때 아이와 함께 그 지역 도서관을 찾아가곤 하는데 여행지 도서관을 방문하는 것은 여행의 색다른 묘미를 안겨준다. 제주도 여행을 갈 때마다 들리는 동네 도서관이 있다. 눈앞에 한라산을 품고 책을 읽거나 글을 써 내려갈 때면 제주도에 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더라.    


<작가의 집>을 펴낸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 작가는 책들이 탄생하는 매혹적인 공간은 결국 작가의 집이라고 말한다. 집, 카페, 공원 벤치, 여행지 등 어떤 장소든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나만의 글쓰기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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