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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Oct 27. 2021

지속가능한 사적 글쓰기에 대하여

사적인 글을 쓰기 전까지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공을 들여 고치고 고치고 고치다 가지고 있는 단어 중 가장 빛나는 단어들을 문맥에 맞게 껴 놓고 예쁘게 포장해 내놓는 상품 같은 거였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주관적인 느낌은 최대한 배제한 체 시각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글을 썼다.      




불친절한 연예인을 인터뷰할 때도 그의 무례한 언행은 접어두고 대중 앞에 원하는 모습만큼만 인터뷰 기사를 써냈다. 괴팍한 성격의 오너 셰프가 만든 돈 주고 사 먹기 아까운 맛없는 레스토랑 기사를 쓸 때도 그랬다. 맛이 없는 걸 맛이 있다고 쓰는 건 사실 왜곡이지만 맛에 대한 부분을 아예 언급하지 않으면 왜곡이 아니었기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애를 썼다. 정작 중요한 맛에 대한 이야기는 차마 쓸 수가 없어 레스토랑 벽과 천장에 돈으로 바른 인테리어 얘기만 추켜세우며 맛집 기사를 마무리해야 했다.      


그렇다고 잡지 기사가 죄다 인위적인 건 아니다. 인터뷰 한 셀럽 중 내면과 외면 모두 아름다워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훈훈한 기사가 절로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진심이 담긴 한 그릇을 위해 새벽잠을 설쳐가며 혼을 불어넣은 셰프의 요리를 글로 쓸 때도 혀로 느낀 맛의 풍요를 어떤 형용사로 표현해야 하나,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잡지 기사는 신문 기사와 달리 냉철한 시각보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잡지 사진과 어울릴만한 글을 예쁘게 쓰는 기술이 중요한 작업이다. 허나 사적인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는 건 완전히 다른 분야이며 가끔은 가시밭길 걷는 기분이 든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글은 적어본 경험이 별로 없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오픈을 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속마음을 어떻게 드러내며 글을 써야 하는지가 가장 힘든 부분이다. 불특정 다수가 글을 주고받는 글쓰기 플랫폼에 어느 선까지 내 진짜 이야기를 적어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왔다. 쓰던 대로 쓰면 그저 기사 쓰기일 테고 다 드러내 놓기에는 그리 속 시원한 성격도 못될뿐더러  일기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냥 쉬운 거 써 봐요. 쓰기 편한 거. 오래 써질 수 있는 소재를 하나 잡아서 꾸준하게 써요.”     


펜을 잠시 내려놓고 싶다가도 글을 계속 쓰게 만드는 치명적 매력을 가진 후배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라고 팁을 줬다. 쓰다 보니 쉬운 거 쓰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남의 아이 가르치는 것보다 내 아이 가르치는 게 더 어렵듯, 남의 글을 쓰는 것보다 내 글을 쓰는 게 훨씬 고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신예희 작가는 일하는 과정은 즐기되 결과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권한다.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되 집착하지 말 것. 본인의 글이나 작품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나 또한 내 글에 집착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는 몰랐다. 그것이 집착인지. 그저 애착이라고만 여겼다. 지금도 여전히 습관처럼 글에 대해 집착 아닌 집착을 할 때가 있지만 그냥 흘려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작가의 말처럼 기다림은 결과를 떠나 과정의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것을 조금씩 체득하고 있다. 곰돌이 푸우가 가장 행복해하는 시간은 꿀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꿀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이제는 글쓰기에 대한 부담은 내려놓고 곰돌이 푸우처럼 과정의 설렘을 만끽해보련다. 지속가능한 사적인 글쓰기를 위해 그렇게 마음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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