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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Jul 08. 2020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하지 않은 이유


"이 기자, 논문 쓰니?”

    

한 달에 한번 마감을 치르는 월간지에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마감을 하는 주간지로 옮긴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편집장은 내 글을 보고 저렇게 말을 했다. 월간지 패턴에 익숙한 나는 주간지 패턴이 숨이 찼다. 그러다 보니 기사가 갈피를 못 잡았다.

 



영업 직원과 동행하는 광고성 기사 쓰기 역시 익숙지 않았다. 그곳 주간지 시스템 상 광고와 연관이 있는 기사는 카피라이터의 몫인데 손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기자들도 바로바로 투입해야 했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글을 써내기가 쉽지 않은 체계였다.     


잡지 기사체에서 주간지 기사체로 바꿔보려 적잖은 노력을 했다. 잡지 기사가 소프트하다면 주간지는 덜 소프트한, 잡지와 신문의 중간 정도의 톤이다. 그 톤을 찾기 위해 한 주, 두 주, 한 달, 두 달, 세 달, 네 달 가랑비에 옷 젖듯 맞춰가고 있던 어느 날,     


”이 기자는 글이 너무 감성적이야. 월간지랑 주간지는 달라.”


아니, 지난주까지 다니던 전 편집장은 논문 쓰냐, 는 말을 하던데 새로 오신 이 양반은 감성적이라고 하네. 더 이상 상사들의 취향에 맞춰 내 문체를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바꾸는 척만 했을 뿐 진심으로 바꿀 생각이 없었다. 내 글의 결이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 받고 글 쓰는데 회사에 맞추는 것이 당연한 것을. 다 쓸데없는 고집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온다. 그냥 그런 곤조 있던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주간지에서 부적응자로 지내다 다시 월간지로 돌아왔다. 역시 난 월간지 체질이야, 한 달에 한번 마감이 딱 좋아, 라는 마음으로. 그렇다고 주간지의 업무량이 월간지보다 월등히 많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어슬렁어슬렁 한갓지게 다니다 금요일이 되면 회사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퇴근하는 시스템이다. 일주일마다 치러야 하는 마감이 부담이었다.    


다시 돌아온 월간지는 팀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글을 체크받던 위치에서 체크하는 위치로 바뀌었다. 물론 최종 오케이는 편집장의 일이지만 중간 다리 역할을 해야 했다. 기자들마다 개성 넘치는 고유의 톤이 있는데 본연의 색은 인정하되 잡지사 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다듬어 나가는 것. 글을 봐준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라. 주간지 편집장들이 나에게 무심코 던진 말들이 떠올랐다. 가볍게 웃으며 시원하게 인정하고 넘길 수 있던 말들에 은근히 신경 쓰고 마음에 둔 나의 연약한 스몰 마인드가 멋쩍게 느껴졌다.     


이 자리에 앉으면 누구에게도 큰 간섭받지 않고 자유로울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글쓰기에 대해 나처럼 섬세함을 빙자한 예민하고 나약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후배들을 대하는 말 한마디에 신중을 기하고 조심하려 애를 썼다. 막중한 책임이 더해진 자리는 자유가 아니라 부담으로 다가왔다.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후배들의 글을 체크하던 중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문예 창작과를 졸업한 남자 후배의 글이었는데 예술을 사랑하던 그의 성격과 흡사한 문체가 시선을 붙잡았다.      


“그녀를 만나러 갔다. 주황색 옷을 입고 등장한 그녀의 옷에서 금붕어가 튀어나와 말을 건넨다.”  


아나운서 인터뷰를 적어낸 기사를 읽어보고 그의 문장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금붕어가 말을 걸다니, 거참 요 녀석 봐라. 내가 만약 저 인터뷰를 하고 주황색 옷을 입은 아나운서에 대한 묘사를 했다면 저렇게 못 써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비드 한 또는 유니크한 주황색 옷을 입고 등장한 그녀, 정도로 설명하지 않았을까 싶은 내용을 그 후배는 상상력을 더해 구미가 당기는 기사로 작성해 내더라.     


세월이 흘러 나는 아이를 낳고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그 후배는 다른 잡지사로 이직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끔 카페에 앉아 읽어보는 잡지에서 그의 글을 보면 반가운 마음과 함께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불안하고 조급한 청춘의 마음으로 잡지사에 다니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후배들의 기사를 보며 기특하고 흐뭇한 마음이 드는 내 나이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나이 먹는 게 썩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후배들의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는 날이면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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