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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Nov 08. 2021

나의 귀여운 60대 베스트 프렌드


“미리 나오면 기다리게 되니까 내가 지하철 출발시간 체크해서 알려줄게.”     


오랜만에 선생님과의 만남이다. 평촌에 계실 때는 주기적으로 만났는데 서울로 이사 간 후 몇 년이 유유히 흘렀다. 코로나로 한참 어수선해 아이가 학교를 가다 못 가다 반복하던 시기인 데다 거리도 만만치 않아 만남이 순조롭게 성사되지 못했다.




선생님과는 글쓰기 수업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5명 정도의 팀원 중 왜인지 앞자리에 앉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살짝 깐깐해 보이지만 귀여운 말투와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세련된 스타일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나보다 나이가 많긴 할 텐데 몇 살 정도 많으려나, 10살? 10살 조금 안되려나.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글쓰기 수업이 기다려졌다. 글쓰기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학구열과 함께 그 안에서 관심이 생긴 누군가가 있다는 건 일상 속 잔재미를 주는 일이기도 했다. 글쓰기라는 공동의 화제가 있어서인지 팀원들끼리 자연스럽게 밥도 같이 먹고 차도 나눠 마셨다. 그러다 보니 호기심을 자극했던 앞자리 여인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중학교 음악 선생님으로 교직 생활을 했고 두 딸아이의 엄마라는 것을.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인 후 그녀는 만날 때마다 기분 좋은 미소로 나를 반겨주었다.        


“오늘은 청바지 입고 왔네. 너 나이 때가 생각난다. 나도 이렇게 입고 다녔어. 예뻐라~”     


아침에 서둘러 아들을 등원시킨 후 눈에 보이는 아무 청바지를 급하게 주섬주섬 입고 나갔는데 애정 어린 한마디에 부끄러우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를 낳은 후 몇 년 간 사적으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일이 없던 나는 그렇게 그녀와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글쓰기 수업 시간에 돌아가신 이모에 대한 글로 수필을 발표한 적이 있다. 글을 적으면서 이모 또래의 선생님에게 마음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모가 살아있다면 몇 살일까, 가끔 속으로 생각하곤 했는데 그녀와 비슷한 나이다.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것도 비슷하다.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그 잔잔한 공기가 파동을 타고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선생님, 얼굴 좋아지셨어요. 더 젊어지셨네요. 그동안 좋은 시술받으셨나 봐요~”

“하하, 오늘 내가 밥 살게.”     


그녀와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고 힐링된다. 짓궂은 농담을 재치 있게 받아주는 센스가 유쾌하다. 어린 시절 이모와 신나게 대화하던 어린 내 모습이 스치듯 지나간다. 패션 얘기를 한참 하다, 어느 순간 건강 주제로 넘어간다. 체질이 비슷해서인지 건강 관련 주제도 할 얘기가 많다.    


“추석 전에 피곤해서 마늘 주사를 맞았거든.”

“마늘 주사 때문에 피부 좋아지신 거 아니에요?”

“아, 그런가? 하하하.”


그러다가 요즘 쓰고 있는 수필 관련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진다. 교직에서 내려온 후 수필가로 활동하는 그녀의 글을 찬찬히 음미하며 읽노라면 다정한 성품이 오롯이 전해진다. 행간을 꼭꼭 짚어 읽어 내려가다 어느 순간 글로 위로받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문장으로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그녀의 따뜻한 문체가 참 좋다.




선생님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다 하마터면 언니라고 부를 뻔한 적이 있다. 19살 나이 차이임에도 한결같이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주기 때문이리라. 위엄을 내세우기보다 먼저 손 내밀어주고 좋은 걸 보면 좋다고, 예쁜 걸 보면 예쁘다고 표현하는 모습은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다.      


“여기 너무 좋다. 같이 셀카 찍을까?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같이 찍은 사진이 없더라고.”     


선생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리적 거리감 때문에 자주 못 만나지만 마음으로 의지하는 누군가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건 존재 자체만으로 큰 위로와 평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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