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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Jun 27. 2020

불친절해도 괜찮아,  머릿결만 지켜준다면


바야바 같은 머리가 산에서 내려온 사람 마냥 자연스럽다 못해 원초적이다. 어디 미용실을 가야 하나 고민스럽다. 우리 동네 미용실은 나와 미용실 언니들 사이에 간극의 거리를 쉬이 좁히기 어려운 걸로 결론이 났다.     




1번 미용실은 머릿결은 잘 뽑아주는데 커트를 내 취향이 아닌 언니의 취향으로 둥글게 둥글게 여러 번 잘라놨고 2번 미용실은 커트는 그런대로 맘에 드는데 파마만 하면 개털로 만드는 신기한 파마 기계를 가진 곳이다. 그나마 3번 미용실이 내 소중한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주면서 머릿결도 나쁘지 않게 만들어주는 꽤 만족스러운 곳이었는데 작년에 주인장이 바뀌었단다. 그래서 몇 개월 고민 좀 했다. 마침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하는 기간이었으므로. 코로나 핑계로 버티다, 버티다 더 이상 버티기가 사회생활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러서 미용실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친구가 지난번 소개한 그녀 집 근처 미용실이 떠올랐다. 좀 더 자세한 걸 물어보고 어떤 언니에게 했는지 체크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는데 아차, 친구는 지금 영국 유학 중이다. 영국시간이 한국시간에서 밤낮이 바뀐 상태에서 4시간 차이 난다고 말해줬는데 앞으로 4시간 빠지는지 뒤로 빠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시차 검색을 해볼까 하다 이래나 저래나 늦은 시간인 거 같아 통화 버튼을 누르는 대신 미용실 검색 키를 눌렀다. 동네 미용실이라 많은 검색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몇 개 소개된 내용을 보니 무난한 것 같은데 짧은 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결과물은 괜찮은데 불친절하다는 멘트였다. 미용실에서 불친절해봤자 인사를 살갑게 안 하는 정도 아니겠어?라고 생각하고 미용실에 전화를 걸었다.    


“저기요~ 오늘 영업하나요?”    

황당하다는 듯 “네”    

“그럼 예약을 해야 하나요?”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 “네”    

“몇 시가 괜찮나요?”    

다시 황당하다는 듯 “몇 시에 오실 건데요?”    

“2시 반 정도...”    

말을 끊으며 “2시 30분 예약하겠습니다”라며 전화를 끊는다.      


아, 그렇구나. 인터넷에 한 줄 평 쓴 그 사람 말이 맞네. 전화를 끊고 망설여졌다. 전화 통화만으로는 내 머리를 믿고 맡길 수 없겠다 싶었다. 그러다 거울에 비친 자연인 같은 머리 상태를 다시 보고야 말았다. 그래, 결과물은 괜찮다니 한번 가보자. 친구의 찰랑거리는 머리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머리만 예쁘게 잘 나오면 되는 거지 모.    


2시 30분 시간을 딱 맞춰 도착했다. 동네 미용실 치고는 인테리어도 고급지고 직원도 꽤 많아 보였다. 친구가 말했던 그 가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괜찮다. 그런데 남자 직원이 크롭티에 가죽 미니스커트를 입은 경험 없고 어려 보이는 헤어드레서를 소개한다. 마음이 불안해진다. 친구가 말해줬던 이름을 떠올려 보려 애써 노력했지만 도통 생각이 안 난다. 그냥 운명에 맡길 수밖에.    


그녀는 웃음기 1도 없는 얼굴로 머리에 쓱싹쓱싹 약을 바르고 좀 있다 머리를 감겨준다. 다시 자리에 앉아 머리를 다듬는다. 오호 이 언니 봐라, 생각보다 손이 빠르고 머리 다듬는 솜씨가 눈을 사로잡는다. 다시 약을 바른다. 기계로 싹싹 핀다. 불안했던 마음이 그녀의 손길을 받으며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린다. 머리를 감은 후 드라이를 한다. 이제 끝났나 보다.    


“머리 다 말리시죠?”    


뭔 말이여. 일부러 머리를 안 말리는 사람도 있남. 질문의 의중을 몰라 눈만 껌뻑 껌뻑 거렸다.    


“머리가 잘 안 마르네요.”    


살짝 짜증스러운 목소리다. 머리 말리기 힘들다는 소리였구나, 나는 괜히 미안해서     


“아, 머리가 반곱슬이에요.”    


머리가 반곱슬인 것과 머리가 잘 안 마르는 것 사이에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를 이해시켜주고 싶었다. 그녀는 인내심을 가지고 머리를 뽀송하게 다 말린 후 끝났다고 말한다. 인터넷 한 줄 평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불친절하지만 결과물이 만족스러웠다. 사물함에서 짐을 건네받으며 가방을 메고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렸다.    


“선글라스 머리 위로 올리면 안 돼요. 2-3일간 귀 옆에 머리 꽂는 것도 주의해 주세요”    


그녀는 잔뜩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가 만족스러우니 그녀의 불친절한 말투가 프로페셔널하게 들린다. 실제로 그녀는 부수적인 서비스보다 자기 맡은 일에 더 신경 쓰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 끝까지 고객의 머리를 걱정해 주는 걸 보니.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머리가 만족스러워 히죽히죽 웃음이 나오는 걸 꾹 참느라 혼났다. 앞으로 가죽치마 헤어드레서 언니만 믿으면 될 것 같다. 오래오래 그곳에서 일해주길 마음속으로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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