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한마디, 그것으로 충분하다

by 아일린


“아는 언니가 잡지사 기자인데 독자 모델 구하거든. 한 번 해볼래?”


고등학교 후배이자 대학 과동기인 친구의 제안으로 잡지사에 첫 발을 들였다. 여대생들이 즐겨보는 잡지에 ‘대학생의 용돈벌이’라는 내용으로 진행되는 꼭지였다. 휴학 기간 동안 집 근처 학원에서 사회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몇 달 모은 돈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터였다. 휴학 생활에 대해 기자 언니와 짧은 인터뷰를 하고는 곧바로 사진 촬영에 들어갔다. 잡지사에 있는 회의실 칠판 앞에서 강의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촬영이었다.


칠판에 적어놓은 아무 문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카메라를 응시만 하면 되는데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자연스럽게 쳐다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다음은 통장과 쿠폰을 손에 움켜쥐고 눈을 동그랗게 뜬 후 역삼각형으로 입모양을 만들어 치아를 드러내 기뻐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촬영이다. 기쁨을 표출하는 표정연기는 칠판 촬영보다 강도 높은 노동이었다.


기사 방향은 대학생들이 어떤 아르바이트를 하고 어떤 소비를 하며 어떻게 저축하는지 일상을 담은 내용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라 인터넷으로 출력한 할인쿠폰을 다이어리에 필수로 지참하고 다녔다. 다이어리 속에는 어학원 수강증도 있었는데 나의 생활 패턴을 엿볼 수 있는 종이들을 한가득 꺼내 펼쳐 보였다.




사실 나는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내내 영화 잡지 기자가 꿈이었다. 그 당시 영화 마니아라면 즐겨보던 영화 잡지계의 양대 산맥 <스크린>과 <로드쇼>를 꼬박꼬박 챙겨 읽고 자정 이후부터 하는 영화음악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자는 것이 너무나 행복한 소녀였다. 애정 하던 프로그램에 보낸 엽서 사연이 소개되며 <로드쇼> 2개월 무료 구독권을 받고는 마치 꿈에 더 가까이 다다른 것 마냥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꽤 지속적으로 영화 잡지 기자에 대한 뜻을 품고 자랐는데 어느 날 신문에서 읽게 된 영화 전문기자의 글을 읽고부터 꿈을 살포시 접어야 했다.


지금은 1인 기업처럼 독보적인 존재로 활동하는 그가 신입 시절 썼던 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잡지로 독서를 하고 편지로 글쓰기 훈련을 하던 내가 도저히 흉내 낼 수조차 없는 그의 필력. 성인이 되어서야 제대로 읽히는 그의 글 솜씨는 영화 기자를 꿈꾸던 종잇장처럼 가녀린 여고생의 마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꿈꾸던 영화 기자를 포기하는 대신 방향을 틀어 다양한 꿈을 꾸는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그 당시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인 아나운서, 스튜어디스를 꿈꿔보기도 했다. 학교 선배인 아나운서에게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스튜어디스 취업 박람회에 참가해보기도 하던 시기다. 어떤 날은 수녀님을 꿈꿨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늘 평온한 모습을 지닌 수녀님이 막연하게 부러웠다. 속세의 욕망을 무 자르듯 끊어낼 자신이 없어 이틀 정도 굵고 짧게 생각해보다 말았지만.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던 시기에 우연히 접한 잡지사 아르바이트는 꿈을 다시 구체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독자 모델을 하며 알게 된 기자 언니는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보이는 신입 기자였다. 때문에 부담 없이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는 옆집 언니 같았다. 영화 잡지는 아니지만 20대에 들어서면서 즐겨보는 잡지였기에 그 분야의 잡지 기자는 어떨까 궁금증이 생겼다. 그녀는 간간히 독자 모델을 하던 나에게 본격적으로 잡지사에서 아르바이트해보는 건 어떠냐, 는 제안을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영화 잡지가 아니면 좀 어떤가. 글만 쓰면 되는 거지.


“앞으로 네가 할 일은 FD라는 일인데 기자 옆에서 자료 정리하고 컨택하는 걸 도와주는 일이야.”


그녀가 요청한 대로 사진 기자와 함께 압구정 로데오 거리로 나갔다. 막상 해보니 기자 옆에서 일을 도와준다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무작정 모르는 사람을 붙잡아 설문 조사를 하고 패션피플을 어르고 달래 가며 사진 촬영을 진행하는 일은 낯을 가리는 내 성향에 맞지 않았다. 기사로 나올 때는 재미나게 읽었던 꼭지인데 기사화되기까지의 과정을 겪어보니, 물 위에선 우아한데 물속에선 처절하게 발차기를 해야 하는 백조 같았다. 그런 불편한 과정 없이 신나게 글만 쓰고 싶었다. 친구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걷던 거리에서 알 수 없는 타인을 붙잡아다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이 난감하게 느껴졌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오들오들 떨어가며 모아간 자료를 기자 언니에게 전달했다.


“음.. 다시 촬영해야겠다. 애들이 별로 안 예뻐.”


기왕이면 예쁜 사람을 컨택하라고 했고 촬영 나간 그 시간에 눈에 들어오는 사람을 설득해 진행한 사진 촬영이었다. 기자 언니 한마디에 물 먹은 미역처럼 흐물흐물 힘이 쪽 빠졌다. 재촬영은 그녀가 나갔다.


며칠 후 마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잡지를 받아보았다. 내가 나갔을 때 촬영한 내용과 재촬영한 내용이 적절하게 레이아웃 잡혀 단정하게 기사화되었다. 비록 내 이름이 나간 기명기사는 아니지만 성취감이 느껴졌다. 진행뿐만 아니라 직접 기사를 쓰고 내 이름을 단 기명기사가 나간다면 더 뿌듯하고 근사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대학교 휴학기간 즈음부터 잡지사 취재기자에 대한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키워가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가 아닌 취재 기자로 몸담은 첫 잡지사는 CEO 멤버십 잡지다. 입사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취재를 나가야 했는데 가기 전, 취재원에 대한 정보를 듣고는 긴장을 했다. 성격이 불같고 광고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라 조심해서 취재해야 한다는 당부를 받았다. 인터뷰는 긴장한 것이 싱겁게 느껴질 정도로 무리 없이 마무리되었다. 몇 달 뒤 그를 다시 인터뷰할 일이 생겼다. 두 번째 인터뷰 후 잡지를 받아 본 그에게 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이 기자의 글은 따뜻함이 묻어나서 좋아요.”


의외의 인물에게 의외의 칭찬을 받으니 순간 얼떨떨했다. 그 여운은 오래갔고 안팎으로 사람에 치여 멀리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나를 붙잡아두는 마법의 한마디가 되었다. 나를 인정해주는 한마디,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한마디가 나를 나답게 만들어 나가는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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