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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Oct 07. 2022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전망 좋은 호텔 방에 앉아 유유자적 망중한을 즐긴다. 뽀송한 침구와 은은한 조명, 창밖으로 보이는 티 없이 맑고 푸르른 바다, 바다에 조각처럼 반사되는 눈부신 햇살까지. 내 손길이 필요 없는 공간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한국에서의 일상은 까마득하게 오래전 일 같고 원래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처럼 자연과 동화되는 느낌이다.      


남이 만들어준 호텔 조식은 평화로운 아침을 선사한다. 신선한 샐러드와 양송이 수프, 스크램블과  구워낸 와플  먹고 싶은 것만 쏙쏙 골라 ,  접시에 담아내고 천천히 음미하며 먹기만 하면 된다. 얌전한 아침 바다를 바라보며 담아온 음식을 여유롭게 꼭꼭 씹어 넘긴   접시를 뒤로한  포만감 가득한 고운 자태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안락하고 쾌적한 호텔 방으로 다시 돌아간다.

            

다음날 아침, 모닝 요가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자연을 벗 삼아 요가할 생각에 마음이 들떠 눈이 절로 떠진다. 잔잔하게 철썩거리는 파도와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은은한 공기가 맨살에 와닿으며 깊숙하게 온몸으로 자연을 만끽한다. 외국인 요가 강사의 구호에 몸을 맡긴다.     


“raise your hand, turn left, turn right”     


그의 구호와 몸짓을 따라가다 가끔 힘든 동작을 만나긴 하지만 기분 좋은 육체적 고통이다. 50분 정도 요가를 마치고 나면 개운한 몸과 정신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다. 투몬 비치를 바라보며 하는 요가는 더할 나위 없는 하루의 시작을 선물한다. 괌 여행 올 때마다 모닝 요가를 신청하기로 다짐했다.      


첫날보다 몸이 상쾌하고 가뿐해서인지 둘째 날은 좀 돌아다녀도 될 것 같은 컨디션이다. 쇼핑보다는 자연을 벗 삼는 여행 루틴을 즐기지만 하루 정도는 쇼핑에 할애해도 괜찮을 것 같다. 아웃렛에서 진주 목걸이와 디톡스 허브티 몇 개를 구매했다. 한국 백화점보다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득템해 흐뭇하다.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며 구경했더니 다리가 좀 아프다. 카페가 있는 작은 서점으로 들어갔다. 차 한잔을 시키고 잡지 코너로 가서 잡지를 집어 들었다. 한국 서점에서 외국 잡지를 읽으려면 무조건 구매해야 하는데 이곳은 자유롭게 무료로 읽어볼 수 있어 신이 난다. 조심스레 책장을 넘겨본다. 여행 잡지, 음식 잡지, 리빙 잡지, 패션 잡지 등 눈이 즐겁고 마음이 행복하다.    


한참 동안 잡지에 코를 박고 있다 테이블로 돌아와 적당하게 따뜻해진 루이보스 티 한 모금을 홀짝인다. 쇼핑몰 안 충실하게 차가운  에어컨 공기 때문에 으스스해진 몸에 금세 온기가 돈다. 호텔에서 가져온 신문을 꺼내 읽는다. 현지인 틈에서 차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끝없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살며시 부는 살랑거리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무언가를 읽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끔 쇼핑하고 그냥 이렇게 고민 없이 무념무상으로 채운 평온한  날들.   


저녁 메뉴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설거지 거리와 집안일 거리가 보이지 않는 이곳이 천국이구나. 무엇보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 없어 그거 하나로도 이곳은 제 몫을 충분히 하고 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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