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일린 Jun 10. 2024

멜버른 오네짱

이목구비가 닮은 듯한 두 명의 남자가 이원 생방송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그들은 어린 시절 기억을 주고받으며 더듬더듬 퍼즐 끼워 맞추듯 대화를 이어나간다.    

  

동생이 티셔츠를 들추며 옆구리에 남아있는 상처 자국을 보여준다. 형은 그 상처를 보고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찾고 있던 동생이 맞는 것 같다고 말한다. 순간 동생은 수십 년 꾹꾹 눌러 삼켰던 감정을 담아 포효하듯 외친다.     


“형님!”     


형님, 이라는 한마디. 그의 입을 타고 밖으로 나온 그 한마디에 피붙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짙게 묻어난다. 동생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이어간다.

     

“형님, 저는 여태까지 세상에 나는 혼자다, 이렇게 살았었습니다. 나는 세상을 살면서 어머니만 그리면서 살았거든요. 어머니 이름 좀 알려주세요.”     


동생은 마음을 진정시킨 후 누구한테 손 안 벌리고 제 힘으로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덧붙인다. 그의 말에 형은 “사는 건 걱정하지 마라. 내가 그곳으로 갈게"라고 답변한다.


이산가족을 찾는 오래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리움이 만남으로 이어지는 순간, 수십 년 동안 마음 한편에 그리움을 안고 살아야 했을 두 형제와 어머니의 마음은 화면 너머 보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멜버른에 머무를 때 친하게 지낸 일본인 언니가 있었다. 눈 마주치면 항상 부드럽고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주며 눈을 반짝이던 언니.     


“일본어에도 언니,라는 단어가 있어?”

“그럼. 일본어로 언니는 오네짱이라고 해.”

“그래? 오네짱~”

“맞아. 하하. 바로 그거야. “


그녀에게 몇 가지 일본어를 배웠는데 그중 발음이 귀여운 '오네짱'이라는 단어가 원래 즐겨 사용하던 말처럼 입에 착 붙었다. 그녀를 부를 때마다 “언니언니, 오네짱오네짱!"이라 하면서  장난스럽게 두 번 반복해서 부르곤 했다.


“너 어디를 그렇게 매일 혼자 돌아다니는 거야? 내일은 나랑 같이 시티 구경할까?”     


멜버른 여행객이었던 나와 달리 언니는 몇 개월째 워킹 홀리데이를 하고 있었다. 아침이 되면 오네짱은 일을 하러 나갔고 나는 멜버른 시티를 구석구석 돌아다니기 바빴다. 저녁이 되면 백패커스로 돌아와 오네짱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꽉 찬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한데 그녀는 언니의 마음으로 동생을 더 챙겨주고 싶었나 보다. 우리는 멜버른 원데이 투어를 함께 하며 한층 더 가까워졌다.      


한 달 배낭여행 계획으로 브리즈번, 시드니를 거쳐 멜버른에 도착한 첫날. 새로운 도시가 설레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낯선 이곳에서 또 어찌 버티나 막막함이 앞섰었다. 긴 여행 중 외로움이 바닥을 치던 시기 룸메이트로 오네짱을 만났고 그녀 덕분에 멜버른에서의 추억이 마음 따뜻하게 남아있다. 멜버른을 떠가기 전날 밤, 오네짱은 편지 한 통을 건네주었다.


“나에게 많은 한국어를 가르쳐줘서 고마워. 너를 만나 너무 행복했어. 네가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멜버른에 오래오래 머물렀으면 좋겠어. 나와 함께 이곳에 있으면서 한국어를 더 알려주면 난 한국 소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암튼 조심히 돌아가야 해.“


펜으로 꾹꾹 눌러 적어 내려간 손 편지를 캐리어 깊숙이 넣고 오네짱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한 달치 옷과 운동화 등 이것저것 꽉 채운 캐리어를 끙끙거리며 계단 아래까지 내려다 주고 눈물을 글썽거리던 오네짱.  그녀는 나를 꼭 안아주고 내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한동안 주기적으로 그녀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시간이 흘러 오네짱도 일본 오사카로 돌아갔고 멜버른에서 만난 우리는 각자의 나라에서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언제 연락이 끊어진 지도 모르고 있었다.

       



대학교 졸업 후 큰언니가 살고 있는 오사카에 한 달 정도 머무른 적이 있다. 잊고 있던 토시코 오네짱이 떠올랐다. 형부에게 부탁해 그녀가 적어준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다. 아쉽게도 번호가 바뀐 상태였다.

      

비록 연락은 끊겼지만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 그녀의 손 편지는 앨범에 그대로 남아있다. 호주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멜버른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시의 아름다움도 좋았지만 오네짱과의 추억 때문이었지 싶다. 이산가족의 그리움과 비교할 순 없지만 오네짱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보고 싶었고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흔아홉 굽이 청운의 꿈 품은 경북 영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