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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Oct 18. 2022

발레 세계로 인도한 S 여배우

여배우 S가 발레 스트레칭하는 단 한 컷의 사진이 나를 발레의 길로 인도했다. 곧게 쭉 뻗은 팔다리, 잘록한 허리, 무엇보다 우아한 자태가 눈을 뗄 수 없었다. 내 마음을 뺏은 그녀의 발레 사진은 나뿐만 아니라 당시 꽤 많은 여성들을 취미 발레 세계로 발 들여놓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S가 여배우로 활동하기 전 연극영화과 입학을 앞두고 있을 때 함께 잡지 촬영을 진행한 적이 있다. 촬영 내용은 11월 수능을 마친 수험생을 위한 이미지 메이킹이었는데 학생 독자 모델을 구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그녀를 만났다. 메일로 먼저 받아 본 프로필 사진은 전문 잡지 모델을 하기에도 충분히 예쁘고 귀여웠다. 며칠 뒤 촬영 약속을 잡은 후 지하철역에서 그녀를 픽업해 미용실로 이동했다.  

      

“친구한테 빌려왔는데 이 옷 괜찮아요?”       


만나자마자 가방에서 아이보리색 시폰 소재 원피스를 주섬주섬 꺼내 든다. 메이크업과 헤어는 전문가들의 손을 거치니 그들에게 맡기면 되는 거고 가지고 있는 의상 중 본인에게 어울리는 예쁜 옷을 준비해오라고 주문했었다.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 씩 하고 웃는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간다.      


“대학생이 되면 고등학생 때 못해봤던걸 해 보려고요. 여러 가지 댄스도 배워보고 싶고 무엇보다 한껏 차려입고 캠퍼스를 마음껏 누비고 싶어요. 연기자가 꿈이긴 한데 먼저 학교생활에 충실하고 여러 경험들을 쌓아나갈 생각이에요. 학원에 다니는 친구도 있지만 그전에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직접 경험해보고 체험해봐야 진정한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S는 지금 생각해도 참 야무진 학생이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긴 준비 시간과 촬영에 성실하게 임하는 자세를 보고 언젠가 훌륭한 배우로 거듭나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보다 더 빠른 시간 안에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사실 잡지 촬영은 이번에 처음 해봤는데 촬영 내내 너무 즐거웠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마구, 마구 업됐어요. 헤어랑 메이크업을 다 마친 후 거울을 보고 헉, 했어요.”     


그녀는 전문가의 손길을 받으며 단계 단계 변신해가는 모습에 잔뜩 신이 났다. 메이크업과 헤어를 마친 후 친구가 빌려 준 옷으로 갈아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말괄량이 여고생 같던 첫인상은 온 데 간데없고 몇 시간 만에 분위기 있는 여대생으로 완벽하게 변신해 본인 스스로는 물론 나와 헤어숍 원장도 꽤 만족스러웠다. 헤어숍 원장은 얼굴이 작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웨이브가 부각되는 강한 컬 보다 전체적인 이미지에 맞게 부드럽고 굵은 컬로 선택했다고 귀띔해줬다.      


헤어숍 한쪽 벽면에 있는 우드톤 계단 위에서 전신 컷 촬영이 들어갔다. 시종일관 해맑은 모습을 보여주던 그녀의 표정이 카메라 앞에서 사뭇 진지해진다. 중간중간 호통 치는 사진 기자의 포스에 기죽지 않고 왼손을 허리에 척 올리고 자신 있게 포즈를 취했다.      


S야, 언니 기억하니? 기억 못 해도 서운하지 않아~ 그날 보여준 어리고 순수한 열정에서 많은 걸 배웠단다. 과거 내 모습을 반성하기도 했었지. 언니도 대학생 때 독자모델을 아주 잠깐 했었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 속으로 엄청 투덜거린 적이 있었어. 그에 반해 그대는 준비도 많이 해오고 긴 촬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었지. 단 하루 촬영이었지만 그 성실함에 반했나 봐. 우연히 보게 되는 연예 뉴스를 통해 그대의 인생 중 어디 즘 와있구나, 가늠해보기도 하고 응원하고 있단다. 요즘은 한창 육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 같아. 아이도 야무지게 잘 키우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드네. 특히 한창 회자되던 발레 사진은 나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어.


그녀 사진 한 장으로 어린 시절 발레를 향한 짝사랑 마음이 뭉근하게 피어오르면서 호시탐탐 발레를 시작할만한 시간적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아, 엄밀히 따지면 두 컷이다. 범접할 수 없는 다리 찢기 컷과 양손을 뒤로 깍지 낀 채 근육 늘리는 스트레칭 컷. 연보라색 레오타드를 입은 그녀의 발레 핏은 꽤 오랜 시간 잔상으로 남아있었다. 나도 한번 해봐?라는 선한 영향력을 심어준 여배우 S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S야, 얼마만큼 해야 다리 찢기가 가능한 거니. 언제 한번 그 과정 좀 공개해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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