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아주 가끔 생사 확인용 사진을 올린다. 처음 사용 목적은 ‘일’용이었다. 아가 키우고 있어도 나의 감성 여전해요~ (편집장님) 이런 용도 말이다. 그래서 여행 풍경 사진을 주로 올리고 기사 인트로 작성하듯 정제된 단어를 뽑아 굵고 짧은 갬성 문장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녀는 늘 바빠 나의 SNS를 딱히 보지 못 하는 건지, 안 보는 건지,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잘 보이고 싶은 그녀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자 나 역시 그에 발맞춰 이용 횟수는 더욱 시들해져 갔다. 외국인 친구와 소통채널로 이따금씩 이용하는 게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레오타드를 사 입은 어느 날이다. 탈의실 거울에 비친 새 옷 입은 모습에 신이 나 셀카를 찍고 급기야 SNS에 올리는 것으로 그 흥이 이어졌다. 업로드 전 살짝 고민의 시간이 있었지만 이미 발레는 일상에 한 부분으로 스며들었고 랜선 친구들과 생사 확인차 오랜만에 소통하고 싶었던 거다. 마침 그날따라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고 새로 산 레오타드가 용기를 북돋아 주더라.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선배, 사진 잘 봤어요. 근데 발레 진짜 좋아하나 봐. 선배 성격에 발레 옷 입은 사진을 다 올리고”
수화기 너머로 한참을 키득거리며 웃는다. 덩달아 나도 따라 웃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평소 화법과 사뭇 다르게 돌려 말하는 그녀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명이라도 더 보기 전에 얼른 내려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잠깐의 광합성과 새 레오타드로 혼미해졌던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만약 친구라면 “어휴, 야! 무슨 자신감이야? 당장 내려라”라고 대차게 던질 수 있을 만큼 시원한 화법 스타일을 가진 후배. 그래, 네가 무슨 말하고 싶은지 알겠다.
전화를 끊자마자 잽싸게 사진을 내렸다. 순간 불안했던 마음이 이내 가라앉았다. 나 뭐 한 거지, 왜 이러는 걸까요. 발레 하는 날은 평소보다 살짝 텐션이 오르지만 늘 그렇듯 앞으로도 자기만족 발레 모드를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스스로 만족하면 그것으로 된 거다.
발레는 등산, 골프, 수영만큼 대중적이지 않은 운동이다. 마니아적 요소가 다분해서인지 서로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다 내 입에서 “저는 발레 해요”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응? 그거 왜 해?”
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오, 잘 어울린다”라는 말도 가끔은 듣지만 대체적으로 발레로는 운동이 되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다. 저기요, 발레가 얼마나 힘을 쥐어짜야 하는 운동인데요. 나 또한 시작하기 전까지 발레가 이렇게나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운동인지 미처 몰랐다. 그저 예쁜 옷 입고 음악에 맞춰 팔만 까딱까딱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발레를 오래 하다 보면 발레리나들의 전유물인 다리 찢기 정도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눈감고 하게 될 줄 알았다.
대부분의 다른 운동은 할수록 여러 겹의 미간 주름이 잡히고 몸의 부위마다 힘이 잔뜩 들어가는 게 보이는데 발레는 인상을 쓰지 않는다. 아니, 못 쓰게 만든다.
“배에 힘 주도 어깨 내리고 목은 위로 쭉 뽑고, 표정은 이쁘고 우아하게”
“팔다리 최대한 길고 우아하게, 표정은 여유 있게 미소”
“엉덩이 빼지 마세요. 앞 라인, 옆 라인 다 체크하세요. 표정은 밝고 우아하게”
발레 하는 시간 동안 동작 못지않게 많이 듣는 잔소리는 ‘표정 우아하고 예쁘게’다. 매체를 통해 보는 발레리나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승전 표정 우아하게’이지 않은가. 그래서 처음 발레를 시작할 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몸은 몸대로 써보지 않던 근육에 예고 없이 힘이 들어가 부담스러운데 얼굴 표정까지 의식적으로 신경 써야 하니 말이다. 발레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준다.
“여기 잘 보세요. 제가 앙오를 하면서 아~ 하는 거랑 하~ 하는 거랑 느낌 틀리죠? 하~ 이런 느낌으로 우아하게 팔을 뻗으세요.”
내 몸의 모든 근육을 촘촘하게 사용하되 얼굴 근육만은 부드럽게 이완시키고 유지해야 한다. 눈썹을 미세하게 살짝 들어 올리고 적당하게 하~. 너무 과해도 안 된다. 과하면 웃길 수 있다. 적당해야 우아하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발레리나의 표정과 몸짓이 한결 같이 우아한 이유가 엄청난 세뇌 교육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표정만 우아할 뿐 어느 운동 못지않게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운동이 발레라는 것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