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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Oct 19. 2022

예쁘고 우아하게 자기만족 발레

SNS에 아주 가끔 생사 확인용 사진을 올린다. 처음 사용 목적은 ‘일’용이었다. 아가 키우고 있어도 나의 감성 여전해요~ (편집장님) 이런 용도 말이다. 그래서 여행 풍경 사진을 주로 올리고 기사 인트로 작성하듯 정제된 단어를 뽑아 굵고 짧은 갬성 문장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녀는 늘 바빠 나의 SNS를 딱히 보지 못 하는 건지, 안 보는 건지,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잘 보이고 싶은 그녀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자 나 역시 그에 발맞춰 이용 횟수는 더욱 시들해져 갔다. 외국인 친구와 소통채널로 이따금씩 이용하는 게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레오타드를 사 입은 어느 날이다. 탈의실 거울에 비친 새 옷 입은 모습에 신이 나 셀카를 찍고 급기야 SNS에 올리는 것으로 그 흥이 이어졌다. 업로드 전 살짝 고민의 시간이 있었지만 이미 발레는 일상에 한 부분으로 스며들었고 랜선 친구들과 생사 확인차 오랜만에 소통하고 싶었던 거다. 마침 그날따라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고 새로 산 레오타드가 용기를 북돋아 주더라.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선배, 사진 잘 봤어요. 근데 발레 진짜 좋아하나 봐. 선배 성격에 발레 옷 입은 사진을 다 올리고”     


수화기 너머로 한참을 키득거리며 웃는다. 덩달아 나도 따라 웃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평소 화법과 사뭇 다르게 돌려 말하는 그녀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명이라도 더 보기 전에 얼른 내려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잠깐의 광합성과 새 레오타드로 혼미해졌던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만약 친구라면 “어휴, 야! 무슨 자신감이야? 당장 내려라”라고 대차게 던질 수 있을 만큼 시원한 화법 스타일을 가진 후배. 그래, 네가 무슨 말하고 싶은지 알겠다.      


전화를 끊자마자 잽싸게 사진을 내렸다. 순간 불안했던 마음이 이내 가라앉았다. 나 뭐 한 거지, 왜 이러는 걸까요. 발레 하는 날은 평소보다 살짝 텐션이 오르지만 늘 그렇듯 앞으로도 자기만족 발레 모드를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스스로 만족하면 그것으로 된 거다.


발레는 등산, 골프, 수영만큼 대중적이지 않은 운동이다. 마니아적 요소가 다분해서인지 서로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다 내 입에서 “저는 발레 해요”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응? 그거 왜 해?”     


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  어울린다라는 말도 가끔은 듣지만 대체적으로 발레로는 운동이 되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 저기요, 발레가 얼마나 힘을 쥐어짜야 하는 운동인데요.  또한 시작하기 전까지 발레가 이렇게나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운동인지 미처 몰랐다. 그저 예쁜  입고 음악에 맞춰 팔만 까딱까딱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발레를 오래 하다 보면 발레리나들의 전유물인 다리 찢기 정도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눈감고 하게   알았다.      


대부분의 다른 운동은 할수록 여러 겹의 미간 주름이 잡히고 몸의 부위마다 힘이 잔뜩 들어가는 게 보이는데 발레는 인상을 쓰지 않는다. 아니, 못 쓰게 만든다.      


“배에 힘 주도 어깨 내리고 목은 위로 쭉 뽑고, 표정은 이쁘고 우아하게”

“팔다리 최대한 길고 우아하게, 표정은 여유 있게 미소”

“엉덩이 빼지 마세요. 앞 라인, 옆 라인 다 체크하세요. 표정은 밝고 우아하게”     


발레 하는 시간 동안 동작 못지않게 많이 듣는 잔소리는 ‘표정 우아하고 예쁘게’다. 매체를 통해 보는 발레리나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승전 표정 우아하게’이지 않은가. 그래서 처음 발레를 시작할 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몸은 몸대로 써보지 않던 근육에 예고 없이 힘이 들어가 부담스러운데 얼굴 표정까지 의식적으로 신경 써야 하니 말이다. 발레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준다.     


“여기 잘 보세요. 제가 앙오를 하면서 아~ 하는 거랑 하~ 하는 거랑 느낌 틀리죠? 하~ 이런 느낌으로 우아하게 팔을 뻗으세요.”


내 몸의 모든 근육을 촘촘하게 사용하되 얼굴 근육만은 부드럽게 이완시키고 유지해야 한다. 눈썹을 미세하게 살짝 들어 올리고 적당하게 하~. 너무 과해도 안 된다. 과하면 웃길 수 있다. 적당해야 우아하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발레리나의 표정과 몸짓이 한결 같이 우아한 이유가 엄청난 세뇌 교육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표정만 우아할 뿐 어느 운동 못지않게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운동이 발레라는 것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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