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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Nov 03. 2022

글내림 받기 좋은 계절

 “타다다다닥, 탁탁, 타다닥”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가 경쾌하다. 글내림 받은 날의 글쓰기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높고 파란 가을 하늘, 알록달록 단풍나무,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심지어 쌓여있는 설거지조차 눈에 거스름이 없다.

      

글을 써 내려갈수록 2가지 패턴이 뫼비우스 띠처럼 반복됨을 감지한다. 글감에서 글로 이어지는 순간 ‘글내림 받은 글’과 ‘숙성시켜야 하는 글’로 구분이 되더라. 글내림 받은 글은 말 그대로 보살님 신내림 받듯 쓰기의 진도가 시원하게 쭉쭉 빠지는 글이다. 사람 얼굴만 보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보살님처럼 글감 하나로 기승전결이 막힘없이 그려진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손이 먼저 쓰고 있다. 물론 모든 글은 수정을 여러 번 해야 하는 숭고한 퇴고 과정이 있지만 나중에 수정하더라도 일단 전개가 막힘이 없으면 쓰면서도 산뜻하다.       


그에 반해 쓸수록 막힘이 잦고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글이 있다. 그 글은 숙성을 해야 마땅한 글이다. 쥐고 있어 봐야 성질만 더러워진다. 정신 건강에 해롭다. 정신 건강뿐 아니라 눈 건강, 허리 건강에도 좋지 않다.    


글 쓰는 게 좋아 글을 쓰는 건데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미련 떨 건 없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나 역시 글에 대한 미련, 두려움, 집착, 질척거림, 분노 등의 다채로운 정신적 경험을 해본 사람이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20년 다 되어간다. 아, 눈물 나려 해. 다 해보고 나서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관망하듯 숙성과 발효시키는 걸로.

      

인터넷 또는 주간지의 기사는 당일 바로바로 올리거나 며칠 안에 내야 하기 때문에 글내림을 받아야 하는 글이다. 묵혀둘 시간이 없다. 쓰면서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도 뒤 안 보고 써내야 한다. 월간지 기사만 쓰다 주간지로 옮겼을 때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월간지의 기사 쓰기 패턴은 주로 숙성이다. 오늘 취재하고 인터뷰했다고 결코 오늘, 내일 기사로 써낼 수 없다. (1년에 1번 정도 있기도 합니다) 그 대신 깊이가 있다. 단어와 문장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깊을수록 예쁜 글로 발현된다. 숙성이라고 해서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두는 건 아니다. 인터뷰나 취재 후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뼈대를 만들어 놓고 1-2주 정도 숙성 기간을 거친다. 여러 개의 꼭지를 동시다발적으로 숙성해야 하기 때문에 이거 쓰다 막히면 바로 저거 꺼내 들고 쓰는 거다.


에세이는 두 가지 패턴 모두 적용해볼 수 있다. 운 좋게 글내림을 받은 날은 신명나게 써 내려가면 된다. 다 쓰고 난 후 고칠 게 많더라도 괜찮다. 일단 한번 뼈대를 만들어놓은 글은 마무리에 대한 압박이 덜하다.  


한데 시작은 찬란했으나 진도가 영 안 빠진다면 숙성을 고려해보자. 장기간 숙성하는 글도 존재한다. 브런치 북으로 펴낸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같은 경우 1년간 숙성과 발효 과정을 거친 글이다. 코로나 시국에 떠나지 못한 마음을 글로 달래 보려다 마무리가 되지 않아 손을 놓고 있었다. 지난달, 1년 만에 매듭을 지었다. (인트로는 코로나 전에 써두었으니 엄밀히 따지면 3년 정도 됩니다. 허허)


글을 썼던 당시는 여행에서 느낀 감성을 오롯이 녹여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가득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단어보다 마음으로 느낀 감정들이 더 앞서 나갔다. 그럴 때 자주 애용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은 이미 많이 써먹었다. 매번 그렇게 표현하기도 옹색해 보인다.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면 글로 표현하면 되고 형용할 수 없으면 부사 사용하면 된다. 그 과정이 숙성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며칠, 몇 주 뒤에 다시 꺼내 보면 그런대로 써지는 게 또 글이다.

     

1년 만에 다시 펼쳐본 글은 오히려 내 감성이 저리 충만했나, 싶을 정도로 넘치기 일보 직전이다. 거기서 더 나가면 감성 과잉증 걸린 사람이 쓴 글이다. 수정 과정은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괜히 고민했나 싶을 정도로. 글을 마무리 지으면서 깨달았다. 글내림을 못 받았다면 나의 소중한 몸과 정신을 괴롭히지 말고 숙성과 발효 단계로 과감히 ‘쿨 거래’ 하는 걸로 합의 보는 거다.


파란 하늘과 형형색색 어여쁜 단풍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글쓰기 딱 좋은 계절이다. 사실 사계절 모두 글쓰기 좋은 계절이긴 하다. 봄은 봄꽃이 눈부시게 예뻐서, 여름은 시원한 물놀이의 여흥으로, 가을은 단풍과 하늘이 기가 막혀서, 겨울은 연말연시 새로운 출발을 위해 쓰기의 욕망이 불타오른다. 글내림을 받던 숙성을 해야 하던 일단 부지런히 키보드 자판을 두드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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