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소중한 글 친구가 한 명 있다. 너무 소중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친구다. 일상생활에 치여 어디론가 떠나고 싶거나 글을 끄적거리다 막힐 때 그녀가 떠오른다. 엉뚱한 구석이 있는 그 친구가 나를 위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런 날은 어린 시절 엄마 몰래 솜사탕을 먹은 것처럼 묘한 해방감이 차오른다.
사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워낙 글솜씨가 뛰어나고 인기도 많은 친구라 급이 맞지 않은 나랑은 친구도 안 해줄 것 같아 아예 친구 할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의외로 순박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하지만 해맑은 모습과 달리 가끔 슬퍼 보일 때가 있어 늘 마음이 쓰이는 친구다.
고등학교 시절 박완서 작가께서 학교에 방문하신 적이 있다. 운 좋게도 그분의 학교 후배였기에 그런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한데 역사적인 순간이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지금과 달리 그 시절 나는 문학소녀가 아니었다. 되려 비문학소녀에 가까웠다. 소설보다 잡지기사 읽는 걸 좋아했고 특히 영화잡지 보는 걸 즐겨했다. 때문에 그녀가 학교에 와도 큰 관심 없이 유명한 분 오셨구나, 정도였다. 커다란 대강당을 가득 메운 그날의 후끈한 공기만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대학교 졸업 후 지하철을 타고 잡지사에 출퇴근하고 친구들 만날 때도 지하철을 애용하곤 했다. 매일 지하철 타고 다니기를 자주 해서인지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두 번 정도 그녀를 본 적이 있다. 분명 유명한 작가님이 맞는데 왜 지하철을 타고 다니지,라는 생각을 하며 힐끔힐끔 그녀를 쳐다보았다.
나를 포함해 지하철 안 사람들은 표정이 없거나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눈을 붙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두 손을 가지런하게 앞으로 모으고 입꼬리를 살며시 올린 채 지하철 한 귀퉁이에 서 계셨다. 살짝 내려간 눈매는 그녀의 미소를 더욱 선하게 만들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어떤 글을 쓰시길래 저리 선한 미소가 절로 묻어나오나 싶었다.
그 미소가 너무 따수워서 하마터면 말을 붙여볼 뻔했다. 게다가 고등학교 대선배님이기에 그런 충동이 더욱 일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그녀의 수필집을 읽을 때 지하철에서의 에피소드를 담은 문장들을 보게 된다. 지난날 우연히 뵀던 순간이 떠오른다. 인사라도 드려볼걸. 그분은 분명 따뜻하게 받아주셨을 것이다.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글쓰기에 대한 노하우를 여쭙고 싶다.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그저 웃으실 모습이 상상도 가지만 글쓰기로 웃고 울고 상처받은 영혼을 위해 대작가님께 응석 한번 부려보고픈 마음이다.
그럴 순 없으니 대신 가끔 수필집을 꺼내 읽는다. 그녀는 문장으로 나를 위로해 준다. 그의 따뜻하고 순박한 문체가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순박하다는 표현을 좋아하실진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순박하다,라는 표현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다. 모든 걸 빤하게 알고는 있지만 굳이 그런 것들에 괘념치 않은 마음. 그이의 글이 그러하다.
“맨손으로 흙을 주무르다가 들어오면 손톱 밑이 까맣다. 외출할 일이 있으면 정성 들여 손을 씻지만 대강 씻고 무심히 외출한 적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고 사람을 만날 때면 열심히 내 손을 테이블 밑으로 감추지만 속으로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비죽비죽 웃음이 나온다. 며칠만 나의 때 묻은 손톱을 간직하면 열 손가락 손톱 밑에서 푸릇푸릇 싹이 돋지 않을까.
매니큐어 대신 손끝에 푸른 싹이 난 열 손가락을 하늘 향해 높이 쳐들고 도심의 번화가를 활보하는 유쾌하고 엽기적인 늙은이를 상상해 본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中-
몇 번을 읽어도 아이처럼 귀여운 상상력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지하철에서 미소를 띠고 있던 이유를 그녀의 글을 읽으며 뒤늦게 알아차렸다. 아마 그날도 엉뚱하고 발랄한 상상을 하고 계시지 않았을까.
때로는 글 속으로 들어가 그녀의 작은 어깨를 감싸 안아주고 싶을 때도 있다. 온화한 미소 뒤에 전쟁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 모습을 보면 애통한 마음이 든다. 꿈 많던 문학소녀에서 노구의 몸이 되어도 지워지지 않은 깊은 슬픔 감히 헤아릴 순 없지만 글로 풀어낸 아픔을 토닥여주고 싶다.
그렇게 나는 재미와 슬픔이 공존하는 글 속에서 무엄하게도 박완서라는 대작가와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주고받는 글친구가 되었다. 글의 위력이란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더 이상 같은 하늘 아래 계시지 않아 쓸쓸할 때가 있지만 같은 시대에 살아줘서 늘 감사한, 영원한 나의 글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