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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Jun 26. 2020

블루, 블루, 블루베리 스무디

“엄마, 딱 한잔만 더 만들어주면 안 돼?”    


벌써 3잔째다. 6월 중순이 넘어서면서 열 부자인 아들은 블루베리 스무디로 초여름 더위를 다스리고 있다. 미국산 냉동 블루베리(조금 더 저렴한 칠레산도 괜찮다), 바나나, 우유 등 딱 세 가지만 있으면 남녀노소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블루베리 스무디. 여기에 집에서 키우는 페퍼민트나 로즈마리 줄기를 몇 가닥 잘라내 가니쉬로 올리면 카페 메뉴 부럽지 않은 그럴싸한 자태로 스무디가 완성된다.




쉐킷 쉐킷. 믹서기 버튼 몇 번 눌러 순식간에 뚝딱 변신하는 블루베리 스무디는 파스텔톤 고운 보랏빛 매력을 뿜어낸다. 목 넘김이 부드러워 만드는 것만큼 마시는 것 또한 거슬림이 없다. 블루베리를 많이 넣으면 셔벗 같은 텍스쳐가 되고 바나나가 많이 들어가면 물컹물컹한 젤리 직전의 형태로 모양이 나온다. 게 눈 감추듯 후루룩 마시고 싶다면 우유를 조금 더 넣으면 된다.       


“예쁜 아가씨 엄마, 마지막으로 한 잔 더 만들어 주세요.”    


아들은 문법에 맞지도 않은 문장을 써가며 나에게 환심을 사서 블루베리 한잔을 더 먹고자 애를 쓴다. 3잔이 마지막이라고 딱 잘라 말했는데 그의 애교에 또 넘어간다. 아들은 어느 정도 문장으로 완성된 말을 시작할 무렵부터 기분 좋게 해주는 말을 종종 구사하곤 했는데 나보다 먼저 일어나는 날에는 공주님 일어나세요, 라며 아침을 깨웠다. 여전히 블루베리 스무디 만큼 달콤한 아들의 한마디에 몇 날 며칠째 스무디 만드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블루베리 스무디를 사랑했다. 아들이 어린 시절, 물론 지금도 어리지만. 지금보다 더 꼬꼬마 시절에 제집 드나들듯 키즈 카페로 출근 도장을 찍던 날이 있었다. 그 당시 여느 엄마들의 고민처럼 나 또한 ‘아가가 잘 먹지 않아 고민’이었다. 그런데 그 카페에서 선보이는 머핀과 블루베리 스무디는 기가 막히게 잘 먹더라. 키즈 카페 주인장에게 살짝 물어보니 여과 없이 홀라당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이게 웬 떡이여.


카페, 맛집 취재 가서도 100%는 다 공개 안 하는 레시피를 그곳 카페 사장은 친절하고 해맑게 알려준다. 냉동 블루베리, 바나나, 우유에  아가베 시럽을 넣는다고 했다. 집에 가서 그대로 만들어보니 조금 단 거 같아 시럽은 뺐다. 굳이 시럽을 넣지 않아도 검은 점 송송 박힌 잘 익은 바나나가 스무디의 당도를 끌어올린다.


아들은 자기 닉네임을 블루베리 청소기라 지었다고 고백했다. 블루베리 청소기. 블루베리와 청소기. 재미있긴 한데 청소기라는 단어가 좀 그렇다. 차라리 블루베리 흡입기가 낫지 않을까?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중 내 표정이 갸우뚱 하니 날으는 돈까스로 바꾸겠다고 정정한다. 그러다가 이내 본인은 날지 못하므로 못 날으는 돈까스라고 하겠단다.


날지 못하는 돈까스로 닉네임을 바꾸면 블루베리 스무디 주문 요청이 줄어들까 기대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블루베리 스무디를 만들어달라는 초등생. 냉동 블루베리를 미국산에서 칠레산으로 바꿀 시기가 온 것 같다. 아니면 코스트코에 가서 대용량으로 사 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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