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들의 출처] 에필로그: 알면 뭐가 달라지는가

by 한경수

15편을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래서?

출처를 몰라도 잘 살고 있지 않나. 물을 8잔 마셔도 탈 안 난다. 만 보를 걸으면 건강에 좋다. 다이아몬드 반지로 프러포즈해도 사랑은 사랑이다. 모차르트를 틀어놓아도 해로울 건 없다. 출처를 안다고 아침밥이 갑자기 맛없어지지 않는다.

맞다. 대부분의 경우 출처를 몰라도 큰 탈은 없다.

그러면 왜 추적했는가. 알면 뭐가 달라지는가.


솔직히 말하면, 달라지는 게 거의 없다.

행동은 같을 수 있다. 아침을 먹을 수도 있고, 다이아몬드를 살 수도 있고, 만 보를 걸을 수도 있다. 이 시리즈를 읽기 전과 후에 식탁 위의 반찬이 바뀌지는 않는다. 스마트워치의 목표를 7,500보로 바꿀 수도 있지만, 안 바꿔도 상관없다.

하나만 달라진다.

"따르는 것"이 "선택하는 것"이 된다.


출처를 모르면, 따르는 것이다. 출처를 알면, 선택하는 것이다.

바깥에서 보면 구별이 안 된다. 둘 다 아침을 먹고 있고, 둘 다 물을 마시고 있고, 둘 다 만 보를 걷고 있다. 그런데 안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하나는 "그래야 하니까"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기로 했으니까"이다.

"그래야 하니까"에는 질문이 없다. "그러기로 했으니까"에는 질문이 있었다. 질문을 거친 행동과 질문 없이 반복된 행동은 같은 모양이지만 다른 구조다.


이것은 통계학에서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별하는 것과 같은 구조다.

아침을 먹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관찰연구를 보고 아침을 먹어도, 건강에 해롭지 않다. 구별을 못 해도 당장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상관과 인과를 구별하는 사람은 같은 데이터를 보면서 다른 질문을 한다. "아침이 건강을 만든 건가, 건강한 사람이 아침을 먹은 건가?" 이 질문 하나가 세계를 다르게 보게 만든다. 데이터는 그대로인데, 보는 사람이 달라진 것이다.

출처를 묻는 것도 마찬가지다. 실용적 이득이 핵심이 아니다. 보는 방식이 바뀌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한 가지 실용적인 효과가 있다.

항상 출처를 확인할 필요는 없다. 매번 그랬다가는 하루가 모자란다. 그러나 가끔이라도 "이거 출처가 뭐지?"라고 묻는 습관이 있으면, 거짓 믿음이 조용히 쌓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거짓 믿음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 확인 없이 넘긴 것들이 하나씩 쌓여서, 어느 순간 그 사람의 판단 전체를 기울인다. 시금치의 소수점 하나는 사소하지만, 확인 없이 받아들이는 습관은 사소하지 않다.

가끔 묻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열 개 중 하나만 확인해도, 나머지 아홉 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15편에서 이렇게 썼다. "당연한 것은 없다. 출처가 있을 뿐이다."

에필로그에서 한 문장을 더 붙인다.


출처를 알아도 세계는 바뀌지 않는다. 다만 그 세계 안에서 당신의 위치가 바뀐다. 따르는 자리에서, 선택하는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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