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설, 어느 것도 정설이 아니다
설렁탕집에 앉는다. 뽀얀 국물, 밥 한 공기, 소금, 파. 이 음식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그런데 "설렁탕의 '설렁'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머뭇거린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선농단에서 유래한 거 아니에요?"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틀릴 수도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조선시대, 임금이 경칩(驚蟄) 뒤 길한 날을 골라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제사를 올렸다.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풍년을 빌고, 직접 밭을 가는 친경(親耕) 의식을 행했다. 행사가 끝나면 제사에 쓴 소를 잡아 큰 가마솥에 넣고 끓여, 신하와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국밥을 선농단에서 내린 탕이라 하여 "선농탕(先農湯)"이라 불렀고, 발음이 바뀌어 설농탕, 설넝탕을 거쳐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음운 변화의 경로도 그럴듯하고,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에는 지금도 선농단 유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설에는 약점이 있다. 조선시대 기록 어디에도 선농단에서 끓인 탕을 "선농탕"이라 불렀다는 직접적인 문헌이 없다. 성종실록에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나눈 기록은 있지만, 그 음식의 이름이 "선농탕"이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1940년 홍선표의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에 세종이 선농단에서 비를 만나 소를 잡아 끓여 먹었다는 일화가 나오지만, 이것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검증하기 어렵다.
학계에서는 이 설을 정설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야기로서는 완결되어 있지만, 증거로서는 미완이다.
육당 최남선(崔南善)이 제기한 설이다. 몽골에서 맹물에 소를 삶아 먹은 음식을 "슐루" 또는 "술루"라 불렀고, 이것이 고려시대에 몽골군과 함께 한반도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1768년 편찬된 몽골어 학습서 몽어유해(蒙語類解)에는 고기 삶은 물인 공탕(空湯)을 몽골어로 "슈루"라 한다고 나온다. 방언집석(方言輯釋)에서도 공탕을 한나라에서는 "콩탕", 청나라에서는 "실러", 몽골에서는 "슐루"라 기록했다.
몽골 기마병이 전장에서 커다란 솥에 물과 뼈, 고기를 넣고 끓인 것이 원형이라는 설명이다. 유목민족이 장시간 고아 먹는 조리법을 선호했다는 것과도 맞아떨어진다. 여기서 "곰탕"의 어원도 같은 "공탕"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붙는다. 설렁탕과 곰탕이 원래 같은 음식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 국어학자가 선농단설을 반박하면서 이 몽골어설을 지지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 설 역시 검증된 것은 아니다. "슐루"에서 "설렁"으로의 음운 변화 경로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소박한 설이다. 오랫동안 "설렁설렁" 끓인다는 뜻에서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느릿느릿, 천천히, 대충이라는 뜻의 부사 "설렁"에 탕(湯)을 붙인 이름이라는 주장이다.
설렁탕은 사골과 잡뼈를 넣고 밤새 끓여야 뽀얀 국물이 나온다. 강한 불이 아니라 약한 불에서 느긋하게, 말 그대로 설렁설렁 고아야 한다. 조리법 자체가 이름이 된 셈이다.
이 설에 대한 학술적 근거는 약하지만, 직관적으로는 가장 쉽게 납득이 간다. 다만 "설렁"이라는 부사가 조선시대에 탕의 이름으로 쓰인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여기에 한 가지 설이 더 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설렁탕집으로 알려진 이문설농탕에서 주장하는 것으로, 설농탕(雪濃湯)이라는 한자에서 왔다는 것이다. 눈(雪)처럼 희고 진한(濃) 국물(湯). 모음동화로 설농이 설넝이 되고, 자음동화로 설렁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선농단설은 이야기가 완결되지만 문헌 증거가 없다. 몽골어설은 언어적 단서가 있지만 음운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 의성어설은 직관적이지만 학술적 근거가 없다. 한자어설은 한자가 있지만 그 한자가 원래 이름인지 나중에 붙인 것인지 알 수 없다.
네 개의 설. 어느 것도 정설이 아니다.
우리는 이 음식을 수백 년 동안 먹어왔다. 1924년 동아일보에 따르면 서울에만 설렁탕집이 100여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배달 음식의 원조였고,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김 첨지가 아픈 아내를 위해 사온 음식이었다. 그만큼 오래되고, 그만큼 친숙한 음식인데, 이름의 출처를 아무도 모른다.
떡볶이는 이름이 그대로인데 내용이 바뀌었다. 설렁탕은 내용이 그대로인데 이름의 유래가 사라졌다. 당연한 것들의 출처는, 때로 존재하지 않는다.
1편의 MSG는 출처가 편지 한 통이었다. 2편의 떡볶이는 출처가 중국집의 한 순간이었다. 3편의 소금은 출처가 쥐에게 먹인 147배의 용량이었다. 설렁탕은 다르다. 출처 후보는 넷이나 되는데, 어느 것도 확정할 수 없다. 출처가 너무 많으면, 출처가 없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