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연구소] 자기 메아리를 지식으로 착각하는 일

by 한경수

산에서 외치는 사람

산에 올라 한쪽 절벽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잠시 후 소리가 돌아온다.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가슴이 뛴다. 산이 자기에게 답한 것 같기 때문이다. 한 번 더 외친다. 또 돌아온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향으로, 같은 모양으로. 그는 그것이 좋아서 같은 자리에 자주 가게 된다.


동쪽 절벽이 제일 잘 답하는 절벽이라고 그는 믿는다.

같은 산의 반대편에는 서쪽 절벽이 있다. 북쪽에도 있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도 절벽이 있다. 그는 거기 가본 적이 없다. 가볼 생각도 들지 않는다. 동쪽이 제일 잘 답하는데 굳이 다른 데 갈 이유가 없다.


메아리는 귀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한 가지를 짚고 가야 한다. 메아리는 자기가 외쳤기 때문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들으려 했기 때문에 들리는 것이다.


같은 산의 같은 시간에 백 가지 소리가 난다. 새가 울고, 바람이 불고, 멀리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어디선가 나뭇가지가 부러진다. 그런데 사람은 그중 한 가지만 듣는다. 자기가 방금 외친 소리가 돌아오는 것. 그 한 가지를 듣고 "산이 내 말에 답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산은 백 가지로 말하고 있었다. 그의 귀가 한 가지만 받아들였을 뿐이다.


확증편향(確證偏向)이라는 말의 무서움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무지(無知)가 아니다. 자기 메아리를 지식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일이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쓴 사람일수록 더 잘 빠진다. 자료가 많을수록 자기 입장을 보강할 재료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많이 안다"고 느낀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기가 낸 소리가 돌아온 것을 여러 번 들었을 뿐이다. 백 번 외치면 백 번 돌아온다. 그것을 백 가지 지식으로 착각하는 일.


백 개의 절벽 중 한 곳

이 자리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야 한다. 메아리는 입에서 시작되는 일이 아니라 *주의(注意)*에서 시작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산에는 백 개의 절벽이 있다. 어느 절벽 앞에 가서 설 것인가. 그것은 이미 자기가 결정한 일이다. 같은 산에서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그 순간, 그는 동쪽 절벽의 답을 듣기로 한 것이다. 거기서 돌아오는 소리는 누구의 소리인가를 떠나서, 그 소리를 듣겠다고 자기가 자리 잡은 결과다. 그래서 그것은 메아리다. 물리적으로 자기 목소리가 아니어도, 주의의 차원에서 이미 자기 목소리다.


세상의 책과 글과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렇다. 어떤 책을 펼 것인가. 어떤 기사를 클릭할 것인가.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것인가. 이 선택들 자체가 이미 자기 격자의 모양을 보여준다. 어제 어떤 생각을 한 사람은 오늘 그 생각과 비슷한 글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 그런 생각을 안 한 사람은 같은 글이 같은 화면에 떠 있어도 그냥 지나간다. 글이 그를 부르지 않는다. 같은 산에 같이 서 있어도, 둘은 다른 절벽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듣지 않으려던 자리에서

그렇다면 메아리에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답이 안 오는 방향으로도 한번 외쳐보는 것이다. 자기 입장과 어긋나는 자리에 가서, 거기서도 무언가가 돌아오는지 들어보는 일이다. 만약 거기서도 답이 온다면, 그건 메아리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다. 자기가 미리 정해두지 않은 자리에서 들려온 소리다.


그게 걸림이다. 걸림은 어려운 것 앞에서 멈추는 일이 아니다. 자기가 들으려 하지 않았던 자리에서 무언가가 들려오는 일이다. 듣지 않으려던 자리에서 들려왔기 때문에 그것은 진짜다. 자기 메아리일 수가 없다. 자기는 거기로 외친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걸림을 찾아다니는 일은 결국 낯선 절벽 앞에 가 서는 일이다. 답이 잘 돌아오는 자리를 떠나, 답이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자리에 가서 외쳐보는 일. 거기서 무언가가 돌아온다면 그것은 산의 다른 면이 자기에게 말을 건 것이다. 평생 동쪽 절벽만 들어온 사람에게는 그것이 처음 듣는 산의 목소리다.


메아리만 있는 산은 죽어 있다

매끄러운 산이 있다고 해보자. 어느 자리에 가도 자기 목소리가 잘 돌아오는 산. 한쪽으로만 외쳐도 답이 잘 오는 산. 그런 산에 오래 머문 사람은 산을 다 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가 아는 것은 산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의 메아리 모양일 뿐이다. 산은 그에게 한 번도 자기를 보여준 적이 없다. 그가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아리만 있는 산은 조용한 산이 아니다. 죽어 있는 산이다. 산이 죽은 게 아니라 그의 귀가 죽어 있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산에는 자기 목소리가 아닌 것이 섞여 있다. 새 울음, 바람, 멀리서 누군가의 발자국. 거슬리는 소리,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 어디서 왔는지 모를 소리. 그것이 들리기 시작하면 산이 비로소 살아난다.


그리고 산이 살아나는 그 순간, 자기도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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