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을 두 사람이 다 읽고 덮는다. 한 사람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역시 좋은 책이었다. 내 생각이 다 맞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한 사람은 책을 옆에 두고 한참을 가만히 있는다. 누가 어땠냐고 물으면 그는 천천히 답한다. "어딘가 불편한 자리가 있었다. 어디였는지 다시 찾아봐야겠다."
같은 책이었다. 같은 문장들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책을 닫으면서 자기 안의 무언가를 닫았고, 한 사람은 자기 안의 무언가를 연 채로 책을 덮었다.
책에는 두 가지 쓰임이 있다. 하나는 거울이고 하나는 창이다.
거울로 쓰는 사람에게 책은 자기를 비추는 도구다. 책에서 자기 생각과 같은 자리를 발견하면 기쁘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자기 입장을 보강해주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자기와 다른 자리는 가볍게 지나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자기 얼굴이 더 또렷해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책을 읽었다고 부른다.
창으로 쓰는 사람에게 책은 바깥을 보는 도구다. 책이라는 창을 통해 자기 안에 없던 풍경이 들어온다. 자기 생각과 다른 자리에서 그는 멈춘다. 자기 입장을 흔드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자기와 같은 자리는 가볍게 지나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자기 얼굴이 한 뼘쯤 흐려진 것 같다. 흐려진 자리에 무언가가 들어와 앉을 자리가 생긴다.
같은 책이 누구에게는 거울이 되고 누구에게는 창이 된다. 책의 차이가 아니다. 읽는 사람의 차이다.
거울로 책을 읽으면 책은 매끄럽게 읽힌다. 어디서도 걸리지 않는다. 모든 문장이 자기 생각과 어긋나지 않거나, 어긋나는 자리는 자동으로 건너뛰어지기 때문이다. 다 읽고 나면 마음이 편안하다. 그리고 그 편안함을 좋은 책의 증거로 삼는다.
그런데 가끔 어떤 책은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 어떤 문장에서 가슴이 살짝 답답해진다. 어떤 단락은 두 번 읽어야 하고, 두 번 읽어도 동의가 되지 않는다. 책을 덮고 싶어진다. 이 책은 나와 안 맞는 책이라고 결론짓고 싶어진다.
여기가 갈림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불편함을 그 책이 틀렸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반박할 거리를 찾고, 못 찾으면 책을 덮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 불편함의 정체는 정반대일 수도 있다. 그 책에 자기 안에 없는 것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자기 메아리가 아닌 소리가 거기서 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매끄러움은 만남이 없다는 신호다. 불편함은 만남이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야 한다.
진짜 만남에는 놀람이 있다. 자기가 거기에 없는 것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거울에는 놀람이 없다. 자기 얼굴이 자기 얼굴 그대로 비치기 때문이다. 창에는 놀람이 있다. 자기가 모르는 풍경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책을 거울로 읽은 사람은 사실 책을 만난 것이 아니다. 책의 표면에 자기 얼굴을 비춘 것이다. 백 권을 그렇게 읽으면 자기 얼굴을 백 번 본 것과 같다. 그것을 독서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정확하지 않다. 자기 확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자기 확인이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자기를 확인하는 일도 필요하다. 외로운 자리에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일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그러나 그것을 읽기의 전부로 삼으면, 사람은 평생 자기 안에서만 살게 된다. 백 권을 읽어도 자기 안의 한 평을 벗어나지 못한다.
읽기에는 자기를 한 뼘 흐리게 하는 일이 포함되어야 한다. 자기 얼굴이 또렷해지는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자기 얼굴이 흐려지는 자리까지 가야 한다. 흐려진 자리에 비로소 다른 것이 들어와 앉을 수 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무엇이 남는가를 묻는다면, 답은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른다. 매끄럽게 읽힌 자리는 거의 남지 않는다. 걸렸던 자리만 남는다.
자기 생각과 똑같았던 문장은 며칠 뒤면 잊힌다. 잊혀도 상관없다. 어차피 자기 안에 이미 있던 것이니까. 그런데 자기 생각과 어긋나서 한참을 멈춰 있게 했던 문장은 오래간다. 며칠 뒤 설거지를 하다가, 산책길에서, 잠들기 직전에 그것이 다시 올라온다. 그때마다 자기 안에서 그 문장은 한 번씩 더 자란다. 책을 덮은 지 한참 뒤에도 자란다.
읽기의 결과는 페이지 수가 아니다. 몇 자리에서 멈췄는가다. 매끄럽게 천 페이지를 읽은 사람보다 한 문장 앞에서 사흘 멈춘 사람이 더 많이 읽은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책을 거울로 읽은 사람은 책을 읽은 것이 아니다. 책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본 것이다. 책을 창으로 읽은 사람만이 책을 읽은 것이다.
창 너머의 무엇이 자기 안으로 한 뼘 들어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