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연구소] 걸려 있는가, 매여 있는가

by 한경수

닮은 두 멈춤

어떤 문장 하나에 멈춰 선다. 한참 그 자리에 머문다. 며칠이 지나도 그 문장이 떠오른다. 한 달이 지나도 떠오른다. 일 년이 지나도 떠오른다.


이 모습을 멀리서 보면 두 가지 일이 같아 보인다. 걸림과 집착(執着). 둘 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무는 일이다. 둘 다 떠나지 못한다. 둘 다 그것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자기 안에서 이 둘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더 어려운 것은, 한쪽이 어느 순간 다른 쪽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걸림이었던 것이 어느 날 집착이 되어 있다. 그런데 자기는 그 변화를 못 본다.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미묘한 자리를 한 번 들여다보는 일이다.


손이 열려 있는가, 닫혀 있는가

걸림과 집착의 차이를 한 가지로 줄이면 손의 모양이다.


걸림은 손이 열려 있다. 무언가가 자기에게 와서 박혔지만, 손은 그것을 잡고 있지 않다. 그것이 거기 있도록 두고 있다. 그것이 어느 날 변해도 괜찮고, 어느 날 사라져도 괜찮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 있을 뿐이다. 손이 열려 있기 때문에 다른 것도 들어올 자리가 있다. 걸려 있는 동안에도 새로운 걸림이 함께 일어날 수 있다.


집착은 손이 닫혀 있다.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고 잡고 있다. 그것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고,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손이 닫혀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집착은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머무름과 지킴은 다른 일이다.


같은 외형이다. 둘 다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안에서 손이 어느 모양인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글 쓰는 사람의 자리

이 자리는 특히 글 쓰는 사람에게 가깝다. 솔직히 말하면 이 글은 그 이야기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 날 한 비유가 떠오른다. 한 단어가 떠오른다. 한 구절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그것이 걸림이다. 자기 안에 없던 자리가 문득 열린 것이다. 그 자리에서 새로운 글이 한 편 자란다. 또 한 편이 자란다. 사람은 그 비유를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비유를 지키기 시작한다. 다른 비유가 떠올라도 곧바로 그 비유로 되돌린다. 다른 자리에서 다른 사유가 일어나도 그 비유의 언어로 다시 묶는다. 자기가 발견한 자리가 자기가 못 보는 자리가 된다.


처음에는 그 비유가 자기를 열어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비유가 자기를 닫아두는 도구가 되어 있다. 자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고 느낀다. 사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건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은 사람에게 가장 잘 일어난다. 깨달음이 컸을수록 더 잘 일어난다. 큰 깨달음은 큰 손잡이가 되기 때문이다. 큰 손잡이는 잡기 좋다. 잡기 좋으면 손이 닫힌다.


익기를 기다리는 일과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일

다른 각도에서 한 번 더 보겠다.


걸림은 익기를 기다리는 일이다. 무언가가 자기 안에 박혀 있다. 그것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직 모른다. 며칠 뒤 다른 모습으로 떠오를 수도 있고, 몇 달 뒤 전혀 다른 자리와 만날 수도 있고, 어쩌면 영영 익지 않을 수도 있다. 걸림에는 기다림이 있다. 기다림은 그것이 어떻게 될지 모른 채로 두는 일이다. 손이 열려 있어야 기다림이 가능하다. 손이 닫혀 있으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 된다.


집착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이다. 그것이 처음 자기에게 왔던 그 모습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그것을 같은 모습으로 다시 떠올린다. 다시 떠올릴 때마다 한 번씩 더 단단해진다. 단단해지면 더 못 변한다. 그리고 그것이 못 변한다는 사실 자체가 살아 있지 않다는 신호다.


여기서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걸림은 살아 있는 것의 일이고, 집착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의 일이다. 같은 대상이라도 손이 열려 있으면 그것은 익어가고, 손이 닫혀 있으면 그것은 굳어간다. 익어가는 것은 어디로 갈지 모른다. 굳어가는 것은 더 이상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손을 매번 열어두는 일

그렇다면 걸림이 집착으로 변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단순하다. 그러나 단순한 답이 가장 어렵다. 손을 매번 다시 열어두는 일이다.

자기가 발견한 비유, 자기가 좋아하는 문장, 자기가 거듭 떠올리는 자리 — 그것들 앞에서 한 번씩 손을 펴보는 일이다. 이 비유가 변해도 괜찮다고, 이 문장이 사라져도 괜찮다고, 이 자리가 다른 자리에 자리를 내어주어도 괜찮다고, 자기에게 한 번씩 말해두는 일이다. 매일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 한 번이면 된다. 그런데 가끔이라도 그것을 안 하면, 손은 자기도 모르게 닫혀간다. 손은 닫히는 쪽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이것을 다른 말로 했다. 간택하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일. 잡지도 밀지도 않는 일. 그저 그것이 거기 있도록 두는 일. 신심명(信心銘)의 첫 구절이 그 자리다. 이 글에서 그 길은 더 가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만 짚어두고 싶다. 옛사람들이 도(道)에 대해서 한 말이, 글 쓰는 사람의 책상 앞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글은 자기 고백에 가깝다. 나도 매번 손을 다시 열어두는 데 실패한다. 한 번 발견한 자리를 자꾸 지키려 한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글로 한 번 적어두면 그것이 다시 손을 펴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걸림을 살려두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살려두지 않으면 걸림은 굳는다. 굳은 걸림은 더 이상 걸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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