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연구소] 걸림이라는 한 단어

by 한경수

걸림. 한국어의 한 단어다.

마음에 걸린다. 목에 걸린다. 발에 걸린다. 일이 걸렸다. 같은 동사인데 자리만 다르다. 이 한 단어 안에 — 흐름이 멈춘다, 그 자리에 한 점이 찍힌다, 무엇이 잡혀 있다, 마음에 남는다 — 네 결이 한꺼번에 들어 있다.

이 단어가 가리키는 사건의 자리를 한 번 들여다보고 싶다.


먼저 한 가지를 분명히 두고 시작하자. 걸림은 사람이 무엇을 잡는 사건이 아니다. 무엇이 사람을 잡는 사건이다. 의식이 어딘가로 손을 뻗어 한 점을 잡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한 점이 의식에 도착해서 의식이 한 박자 멈추는 일. 멈춤이 먼저고 의식이 나중이다.


이 순서가 결정적이다.

평소에 사람이 무엇을 처리하는 거의 모든 자리는 의식 위가 아니다. 길을 건너고, 글을 읽고, 사람의 표정을 보고, 메일에 답을 쓰고, 마음이 좋다 싫다 한 박자 안에 결정되는 그 모든 일이 의식 아래에서 일어난다. 의식은 결과만 받아 본다. 사람은 자기가 의식적으로 살고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 의식은 무의식이 다 처리한 결과를 잠시 받아 보는 자리에 가깝다. 자기가 자기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흐름에 한 점이 찍히는 자리가 있다. 무의식이 자기 안에서 무엇과 부딪힐 때, 평소처럼 매끄럽게 흘러가지 못할 때, 의식의 표면에 신호가 한 점 찍힌다. 그 신호가 "어?"라는 한 음절이다.

무의식은 흔들리고, 의식은 걸린다. 두 동사가 한 사건의 두 얼굴이지만, 사람이 손댈 수 있는 자리는 두 번째뿐이다. 흔들림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사람이 만나는 것은 그 흔들림이 의식에 도착한 한 점이다. 그 한 점이 걸림이다.


여기서 한 자락이 분명해진다.

평소에 사람의 의식은 거의 잠들어 있다. 무의식의 자동이 매끄럽게 흐를 때 의식은 그 결과를 수동적으로 받아 보는 자리에 있다. 깨어 있다고 느끼지만, 그 깨어 있음은 자기를 의식하지 않는 깨어 있음이다. 의식이 의식으로 자기 자신을 알아보는 사건은 따로 일어나야 한다.


그 사건이 걸림이다. 걸림이 와야 의식이 의식으로 깨어난다. 매끄러울 때는 의식이 따로 일어나지 않고, 걸림이 와야 비로소 의식이 자기 자리를 잡는다. 걸림은 의식의 한 부분 활동이 아니라 — 의식이 처음으로 의식으로 일어서는 그 자리.


걸림이 없는 의식은, 의식이 아니다.

신심명(信心銘)의 첫 줄,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이 있다. 흔히 분별을 미워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린다. 이 결로 다시 읽으면 — 분별이 일어났을 때 그 일어남을 미워해서 닫지 말라는 말이다. 분별은 무의식의 잣대가 작동한 결과이고, 그 결과가 의식에 도착하는 자리가 걸림이다. 그 걸림을 닫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 지도무난의 동작이다.


깊은 가르침은 걸림을 없애지 않는다. 걸림을 미워하지 않는 자리를 가리킨다.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 그 자리에 한 박자 머문다는 뜻이다. 사람이 의식으로 깨어나는 거의 유일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걸린다. 목에 걸린다. 발에 걸린다. 일이 걸렸다. 한국어가 천 년 동안 한 단어 안에 가라앉혀 둔 무엇이 거기까지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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