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식민 조선 제일의 자본가, 박흥식을 아십니까 - 역사의 재원쌤>
1920년대 경성의 종로. 일본인들이 장악한 상권 속에서 한 청년이 새로운 꿈을 그리고 있다. 평안남도 용강 출신의 대지주 아들이었던 박흥식. 그는 당시 귀금속을 주력으로 하던 화신상회에 채권자로 참여하면서 유통업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1926년, 제지 산업에서 큰 수익을 올린 박흥식은 경영난에 처한 화신상회에 자금을 지원한다. 이후 화신상회가 주식회사로 전환되자 경영권을 장악하고 1931년 사장이 된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목조 건물이던 화신상회를 콘크리트 3층 건물로 리모델링하며 사업 확장을 꿈꾸던 중, 뜻밖의 화재가 발생한다. 하지만 박흥식은 이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았다. 미리 가입해둔 화재보험으로 손실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우가키 총독을 직접 찾아가 지원을 요청해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유리창을 보유한 최신식 건물을 세우는데 성공한다.
당시 경성에는 이미 일본의 미쓰코시 백화점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박흥식은 독특한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우리 것"을 내세운 민족주의 마케팅이었다. 조선인이 운영하는 백화점임을 강조하고, 조선에서 생산된 물품을 전면에 내세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박흥식은 당시 일본에서도 시도하지 않던 파격적인 마케팅을 선보인다. 상품권을 발행하여 소비를 촉진시켰고, 백화점 내에 다양한 음식점을 입점시켜 쇼핑과 식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화신백화점은 단순한 쇼핑공간을 넘어 조선의 자본 상징이 되었고, 조선인들에게 큰 자부심을 심어주게 된다. 그의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구될 만큼 앞서간 것이었다.
박흥식의 이야기는 비록 친일이라는 역사적 오점이 있지만, 그의 마케팅 전략만큼은 시대를 앞서간 혁신이었다. 민족의 자부심을 상업적 성공으로 연결시킨 그의 마케팅 전략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