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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팍 Jul 23. 2018

쪼개고 쪼개면
못할 일이 없다

일 쪼개기는 업무 고수의 기본기

나에게 일이 주어질 때에는 하나의 큰 덩어리로 온다. 예를 들면 “상훈 씨, 수요일까지 기획안 초안 만들어봐. 목요일 아침에 내가 피드백 줄 테니까” 식의 지시를 상사로부터 받곤 한다. 상사가 상세하게 일의 목적을 알려주고, 산출물의 구체적 형태를 설명해주면 좋으련만 다른 일로 바쁜 상사는 기한만 알려주고 어딘가로 또 사라진다.


전문가와 문외한의 차이는 아주 작은 디테일을 아느냐 모르느냐 이다. 일을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의 차이도 이와 같다. 잘 하는 사람은 남들이 놓치는 작은 것까지 파악하고 잘 챙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출처: dribbble.com, by Bobby Baker


일은 큰 덩어리로 주어지고, 일을 잘 하려면 작은 디테일을 챙기면 된다. 따라서 내가 큰 덩어리의 일을 작은 조각들로 잘게 쪼개면 나도 일을 잘할 수 있게 된다.


컴퓨터 과학에서는 있는 그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작은 문제로 분할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분할 정복 알고리즘 Divide and conquer algorithm'이라고 한다. "일을 쪼개면 (분할), 해결할 수 있다 (정복)"는 의미다.

https://ko.wikipedia.org/wiki/%EB%B6%84%ED%95%A0_%EC%A0%95%EB%B3%B5_%EC%95%8C%EA%B3%A0%EB%A6%AC%EC%A6%98


고대 로마의 시저 Julius Caesar나 프랑스의 나폴레옹 Napoléon Bonaparte이 즐겨 쓰던 전략도 Divide and Conquer (또는 Divide and Rule)이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Divide_and_rule


현대에 들어서는 정치인들이 지역갈등, 성별갈등, 세대갈등 등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이 전략을 사용한다.

2018년 7월 13일, 뉴욕타임스에 Amid the Trumpian Chaos, Europe Sees a Strategy: Divide and Conquer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 제목을 거칠게 해석하면 "트럼프의 깽판이 분할정복전략의 일환임을 유럽이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가끔 우리나라 일부 정치인들도 막말을 하고, 일부 신문들이 그 말을 열심히 실어 나르는데, 이 또한 분할정복전략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https://www.nytimes.com/2018/07/13/world/europe/trump-europe.html


이렇게 '쪼개기'는 컴퓨터 과학에서 거대한 정치 전략에 이르기까지 매우 강력한 방법으로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큰 덩어리의 일을 잘게 쪼개면 어떤 점이 좋을까?



일 쪼개기의 효과


크고 복잡한 일을 단순화

문제 Problem의 원인 파악, 문제의 해결책 Solution 도출, 아이디어 Idea 구상

일의 범위를 확인 → 결과물의 양과 질 가늠

혼자 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과 나눠서 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음

일의 수행 단계를 설정  → 총 소요시간 계산 가능

일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다른 이에게 설명할 수 있음



얼마나 잘게 쪼개야 하나?


잘게 쪼갤수록 좋다. 하지만 하나의 덩어리를 100개로 쪼개려면 쪼개는 것 자체가 일이 되어버린다. 스테이크가 내 앞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콩알만큼씩 썰어 먹으면 분명 소화는 잘 되겠지만, 육즙이나 식감은 포기해야 한다. 스테이크를 써는 규칙은 간단하다.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크기’로 하면 된다.


일도 마찬가지다. ‘한 손에 잡힐 수 있는 크기’로 하면 된다. 즉 내가 한 번에 일할 수 있는 크기로 쪼개면 된다. 이렇게 쪼개면 큰 덩어리의 일은 대략 10개 내외의 작은 조각으로 쪼개지게 된다.



일 쪼개기, 나무 쪼개기


머리 속에 큰 나무를 떠올려 보자. 줄기가 큰 가지로 갈라지고, 다시 잔가지로 갈라지고, 잔가지의 끝에는 잎이 달려 있다. 땅 속에서는 줄기가 수많은 뿌리로 갈라진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갈라진다 by sanghoon

나무를 본떠 만들어서 트리 다이어그램 Tree Diagram, 트리 구조 Tree Structure라고 부른다.  


나무가 가지를 나누고 잎을 하나라도 더 달려고 애쓰는 것은 나무의 생존과 성장에 꼭 필요한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이다. 문제의 답을 찾거나 아이디어를 낼 때에는 해를 향해 가지가 갈라지며 뻗어간다고 상상하면 된다.  


수많은 원인들 중 핵심이 되는 것을 근본 원인 Root Cause이라고 하니, 문제의 원인을 찾을 때에는 땅 속의 뿌리를 갈라지게 한다고 상상하면 된다.  



일 쪼개기 방법 1. 대중소 순서


수많은 책과 강의에서 트리 다이어그램을 알려줄 때 대중소大中小 순서로 하라고 한다. 즉 큰 것을 중간 것으로 나누고, 중간 것을 다시 작은 것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이를 로직 트리 Logic Tree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것에서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을 끌어내니 연역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대중소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by sanghoon

예전에 현대자동차 신입사원 강의를 하며 일 쪼개기 실습을 한 적이 있다. 이때 한 친구가 손을 번쩍 들더니 "강사님, 잘 안 쪼개지는데 거꾸로 하면 안 됩니까?"라고 질문했다. 이에 필자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게 이런 것이라며 그 친구를 크게 칭찬한 바 있다. 이런 신입사원은 업무 센스가 좋아 선배들의 애정을 듬뿍 받을 수밖에 없다. 대중소 순서가 잘 안 된다면 거꾸로 소중대 순서로 하면 된다.


  

일 쪼개기 방법 2. 소중대 순서


대중소 순서가 가장 일반적이고 이상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내가 일 쪼개기에 익숙하지 않거나 처음 하는 일이라 아예 감이 안 올 때 대중소 순서로 하면, 일이 잘 안 쪼개지기도 한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게 소중대小中大 순서이다. 작은 것부터 떠올리고, 비슷한 것들끼리 묶어서 중간 것을 만들고, 중간 것을 묶어서 큰 것을 만드는 방식이다.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에서 일반적인 것을 도출하니 귀납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소중대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by sanghoon

무작위로 작은 것들을 떠올리고, 이를 몇 개의 그룹으로 분류하는 그룹화 Grouping 작업을 통해 중간 것을 만들기에 포스트잇을 사용하면 편리하다. 자세한 방법은 'KJ 법'을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일 쪼개기 방법 3. 마인드맵  


토니 부잔 Tony Buzan이 만든 마인드맵 Mind Map은 그 모양이 신경세포인 뉴런 Neuron을 닮았다고 하여 유명해진 툴이다. 모양은 다르지만 기본 원리는 앞의 ‘대중소 순서’와 비슷하다. 자신이 사용하기 편리한 툴을 골라 사용하면 된다.  

대중소의 변형, 마인드맵 by sanghoon


  

일 쪼개기 방법 4. To do list  


할 일 목록을 To do list라고 한다. 할 일을 단순히 나열하는 식으로 많이 쓰는데, 이를 대중소 순서로 작성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일 쪼개기를 할 수 있다. ‘소’에 체크가 다 되면 해당 그룹의 ‘중’에 체크하고, ‘중’ 전체에 체크가 끝나면 ‘대’에 체크하며 일이 마무리된다.  

대중소 To do list by sanghoon

모바일 앱도 편리하겠지만 B5 혹은 A5 사이즈의 리갈 패드 Legal Pad에 펜으로 작성해 관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매일 한 장 정도면 충분하고, 완료하지 못한 일은 다음 장에 옮겨 적으면 된다.


종이 노트가 좋은 이유는 고객/상사/동료와 함께 보며 일의 범위나 순서를 의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3년 정도 To do list를 작성하다 보면 굳이 일일이 펜으로 쓰지 않아도 머리 속에 할 일이 자동으로 떠오르게 된다.

*출처: www.amazon.com



일 쪼개기 잘 했나 체크, MECE


대기업들이 수십억짜리 컨설팅 프로젝트를 마치고 결과보고서를 받으면 "맥킨지가 했으니까 맞겠지 ('맥킨지'와 '맞겠지'는 라임을 맞춘 것)"라며 완전히 신뢰한다는 명성을 갖고 있는 곳이 맥킨지 컨설팅이다. LG전자에 '피처폰에 집중하라'고 컨설팅한 바람에 스마트폰으로의 전환이 늦어진 일 등으로 명성에 금이 많이 가기는 했으나 여전히 컨설팅 업계에서는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다.   


맥킨지 컨설팅 McKinsey&Company의 방법론 중 MECE (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라는 것이 있다. '항목들이 상호 배타적이면서, 합치면 완전한 전체가 된다'는 뜻이다. 쉬운 말로 하면 '큰 것을 쪼갤 때 작은 것들끼리 서로 안 겹치고, 작은 것들이 합체하면 빠진 부분 없이 온전한 큰 것이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줄임말로 <중복 없이, 누락 없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일 쪼개기를 한 후 ‘하위 항목끼리 중복은 없나?’, ‘하위 항목에서 누락은 없나?’라는 질문을 하며 ‘소’와 ‘중’을 체크하면 된다. 개인적인 프로젝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중복’은 좀 있어도 큰 지장이 없는데, ‘누락’이 있으면 일의 결과가 기대한 만큼 안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엄청나게 큰 일 쪼개기,

WBS와 Gantt chart


혼자 혹은 몇 명이 일할 때에는 ‘간단한 일 쪼개기’로 충분하다. 하지만 대규모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WBS (Work Breakdown Structure, 업무분해구조, 작업분할구조)와 간트 차트 (Gantt chart)로 관리하게 된다. 특히 간트 차트에서는 단순히 큰 덩어리의 일을 쪼개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업무별 예상 소요시간, 실제 소요시간, 담당자, 책임자, 요구되는 자원 등을 적게 된다. 간트 차트를 작성하고 관계자들이 세부사항을 협의하는 데에만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대규모 공사를 진행하는 건설사 현장에선 사무실 한쪽 벽면을 덮을 만큼 큰 간트 차트를 붙여놓고 매일 체크하며 공사를 하기도 한다.

*출처: www.milesecure2050.eu


글 하나에 여러 가지가 담겨 있어 읽는 분들이 '아, 별거 아니네'라고 휘릭 넘어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일 쪼개기 훈련은 하루 이틀 만에 완성되지 않고, 최소 3년 동안 훈련해야 한다. 개념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으니 반드시 매일 훈련하기를 바란다.  


/ 직장인 업무 기본서, 업무전과




*커버 이미지 출처:

http://wallpaperswide.com/tree_roots-wallpaper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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