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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팍 Aug 08. 2018

포스트잇 러브 (하)

박상훈의 INNOSPARK, 2010년 3월호

얼마 전 필자와 친하게 지내는 동생 하나가 팀장으로 승진을 했다. 보통 40대 초반의 나이에 시작하는 팀장에 30대 초반의 대리인 동생이 과장, 차장을 뛰어넘어 단숨에 오르게 되었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할 만큼 변화와 혁신에 힘을 쏟고 있는 그 회사에서는 올해 팀장급 이상의 직원들에게 아이폰과 통화료 일체를 무상으로 제공했는데, 아이폰을 받게 된 동생은 그것 때문에 죽겠다고 울상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 노트북 없이 출장을 가서도, 퇴근 후 집에서도, 그리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서도 이메일 확인과 답장에 대한 요청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회사 직원 모두가 ‘팀장 이상의 리더들에게는 아이폰이 있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실시간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답을 주기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첨단 디지털 기기와 최신 소프트웨어와 같은 ‘도구’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


집에 핸드폰을 두고 회사에 나오면 하루 종일 불안하고, 시시각각 들어오는 메일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느라 다른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MS Word로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만 맞춤법에 어긋나게 타자를 치면 잘못된 부분에 사정없이 빨간 밑줄이 그어진다. 이에 필자는 무의식적으로 논술 선생님의 빨간 펜 첨삭을 조금이라도 덜 받으려는 학생의 자세로 돌아가 올바르게 타자를 치려 노력하게 된다. 빨간 줄을 긋지 않는 '메모장'과 달리 MS Word는 그저 엄격하기만 하다. [1]
 

사냥하는 구석기인 [2]


위 그림을 보며 잠시 우리가 구석기시대의 한 청년이라고 상상해 보자.

마을에서 친하게 지내는 형님 한 분이 함께 사냥을 가자고 한다. 사냥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내가 맨손으로 사냥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냐고 하자, 그 형님은 앉은자리에서 돌칼로 뼈를 다듬어 창 측 두 개를 만들었다. 날카로운 창촉을 막대기 끝에 끼우는 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창을 들고 덤불 뒤에 숨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내게 형님은 이번에 잘 보고 배워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잠시 후 형님은 자신보다 몇 배나 큰 짐승에게 뛰어가 단단한 껍질로 싸여있지 않은 목 부분을 몇 차례 창으로 찔렀다. 그 커다란 짐승은 괴성을 지르며 내달리기 시작했고, 나와 형님은 그 뒤를 열심히 쫓아갔다.
형님은 숨이 찬 목소리로 저 짐승은 피를 많이 흘려 곧 쓰러질 테니 우리가 그것을 마을로 끌고 가면 사냥이 끝나는 것이라고 한다. 한동안 풀만 먹으며 지냈는데 오랜만에 마을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게 될 것 같다.

이처럼 오래전 우리 조상들은 도구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또한 사냥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창이라는 도구를 하루 종일 들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사냥을 하지 않을 때에는 창을 내려놓고 삶의 다른 영역에 집중할 수 있었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주먹도끼와 창 대신에 고상하게 마우스와 핸드폰을 쥐고 일을 하지만, ‘도구의 주인’이라는 관점에서는 어쩌면 구석기인보다 못한 면도 있지 않을까 한다.

일단 우리가 평소 쓰는 도구를 직접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만들어 준 도구를 사용하려고 해도 도구 사용을 위한 상당한 양의 학습이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도구에 얽매여 살아가느라 삶의 다른 영역에 무관심해지게 된다.

도구의 종류는 점점 많아지고 그 기능 또한 강력해지고 있는데, 왜 우리는 날이 갈수록 바빠지고 정신없이 살게 되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래의 책들을 추천하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Mihaly Csikszentmihalyi

관심의 경제학, 토머스 데이븐포트 Thomas H. Davenport, 존 벡 JohnC.Beck

집중력의 탄생, 매기 잭슨 Maggie Jackson

복잡한 디지털 도구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것만큼 간단한 아날로그 도구를 필요할 때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효과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위의 추천 도서들을 고려해 한 가지만 든다면 ‘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 이제부터 역사가 깊은 여러 아날로그 도구들 가운데 비교적 최신 도구인 포스트잇의 활용법을 알아보도록 하자.
 

포스트잇 다이어리

 

이것은 필자가 평소 다이어리를 작성하는 방식 그대로 재현한 예시이다.


이 다이어리는 A4 사이즈보다 약간 작은 크기에 책처럼 제본된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시스템 다이어리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포스트잇을 활용할 수 있다.


예정된 일과 약속을 투명 테이프 재질의 ‘포스트잇 플래그’에 글씨를 적어 붙였는데, 색깔이 있는 부분에는 ‘분류’를 적고 투명한 부분에는 ‘내용’을 적는다. 중요한 일이라면 살짝 비스듬히 붙여두는 것도 좋다. 실행이 된 이후에는 포스트잇을 떼어내고 다이어리에 직접 적으면 된다.


또한 우측 상단에 보이는 것처럼 여분의 포스트잇을 다이어리 한편에 붙여두면 메모할 때마다 사용하기 편리하다. 메모할 양이 많을 경우에는 종이 재질의 일반 포스트잇을 쓰면 된다. 물론 작은 메모도 종이 포스트잇에 쓸 수 있지만 투명 포스트잇에 쓰면 보다 깔끔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추억을 간직하고 싶다면 영화나 콘서트 티켓을 투명 테이프로 붙여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포스트잇 노트

 

포스트잇은 위의 그림처럼 복잡한 개념을 정리할 때에도 활용할 수 있다. 이것은 오래전 ‘창조리더십 과정’을 개발하면서 A4 지를 바인딩한 연습장 형태의 노트에 정리한 실제 사례이다.


상단에 굵은 네임펜으로 적은 Mental model, Identify target, Develop agenda, Align people, Support는 앞 글자를 따 ‘창조의 MIDAS, 창조리더십’을 구성하는 다섯 개의 모듈이고, 그 아래에 붙어있는 많은 포스트잇은 각 모듈과 관련된 핵심 개념과 프로세스를 키워드와 도해로 정리한 내용이다.


특정 개념을 재분류하거나 우선순위를 바꾸고자 할 때에는 떼어서 다시 붙이면 되고, 모듈에서 탈락된 개념들은 재활용될 수 있으니 뒷장에 잘 모아두면 된다.

대개 과정 설계를 하게 되면 파워포인트나 엑셀을 활용해 모듈, 내용, 방법, 시간 등을 표의 형태로 정리하게 되는데 ‘표’라는 틀 자체가 생각을 가두는 기능이 있어 창조적인 작업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처럼 노트에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구상을 하게 되면 최종 결과물의 이미지를 그리며 설계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수집된 방대한 자료를 A4지 두 면에 압축 정리해 한눈에 파악하기에 좋다. 책상에 독서대를 두고 그 위에 포스트잇 노트를 펼쳐 두면 보다 쉽고 빠르게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이 방법은 기존 자료를 기계적으로 정리할 때보다는 새로운 것을 기획하는 분에게 유용하다.

사실 포스트잇을 활용하거나 메모를 하는 방식에는 위의 두 가지 방법 이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있다. 서점에 가보면 이런 류의 책들이 많으니, 디테일에 강한 일본인 저자의 책 가운데 한 두 권을 읽고 소개된 방법들 중 몇 가지를 변형해 체득하면 업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3]

구석기인들이 ‘삶을 위한 도구’로써 창을 이용한 것처럼 포스트잇도 잘 쓰면 단순히 ‘일을 위한 도구’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포스트잇을 ‘사랑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 둘의 이야기에서 ‘포스트잇 러브 Post-It Love’는 포스트잇을 사랑하라는 뜻이 아니라 포스트잇으로 사랑을 이루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 동영상이 수많은 도구들을 사랑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 우리들에게 ‘도구는 사랑하는 게 아닌 사용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리일까?

http://www.youtube.com/watch?v=TsKghhQ41FM

Post-It Love




[1] 빨간 밑줄이 보기 불편한 분은 옵션에서 ‘입력 시 맞춤법 검사’와 ‘입력 시 문법 오류 표시’에 대한 체크 표시를 없애면 된다. 이때에는 문서 작성을 완료한 후에 일괄적으로 맞춤법 검사를 하면 된다.
[2] 그림에 등장하는 글립토돈 Glyptodont은 이빨이 없거나 불완전한 빈치류(貧齒類)에 속하며, 아르마딜로 Armadillo를 닮은 모습에 몸길이가 3m에 달하는 거대한 동물이다.

http://en.wikipedia.org/wiki/Paleolithic

[3] 몇 가지 추천 도서
     ▪ 성공하는 사람들의 메모 습관 & 노트 기술, 혼다 나오야
     ▪ CEO의 다이어리엔 뭔가 비밀이 있다, 니시무라 아키라
     ▪ 탁월함에 이르는 노트의 비밀, 이재영
     ▪ 뇌를 움직이는 메모, 사카토 켄지
     ▪ 한국의 메모 달인들, 최효찬
     ▪ 메모, 요네야마 기미히로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www.post-it.com/3M/en_US/post-it/products/~/Post-it-Super-Sticky-Notes-3-in-x-3-in-Miami-Collection-6-Pads-Pack-65-Sheets-Pad/?N=4327+3292177652+3294529207&rt=r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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