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대기업 프로젝트를 하며 생산, 영업, 기획, 구매, 인사 분야 임원들을 한 분씩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중 한 분이었던 박 전무님은 인터뷰 말미에 다음과 같이 <자기 객관화>를 강조했다.
"끝으로 자기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입이 아닌 직원들도 이 부분은 상당히 부족한 것 같다. 내가 흔한 말로 직원들한테 지금 밖에서 본인의 스펙으로 본인을 원하는 곳이 있는지, 그리고 그곳이 지금 있는 자리보다 훌륭한 자리인지 고민해보라고 말한다.
스스로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니까 창의성이 발휘되지 못하고 무조건 선배들을 따라 하면서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다. 특히 생산직의 경우에는 평생 한자리에서 같은 일을 한다. 그래서 회사에서 다른 업무를 권하면 거절하게 된다. 이런 것이 결국에 본인을 발전시킬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물론 생산직이 회사가 권하는 업무를 거절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인력 운영의 유연성 및 시장 수요에 대한 대응력 향상을 위해 생산직의 다기능화가 필요하지만, 생산직 입장에서는 '내가 없어도 이 라인이 돌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의 고용안정성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기능화를 원하지 않는다.
이 부분만 제외하고는 박 전무님의 말씀은 자기 주관이 강해 착각에 빠진 많은 직장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자기 객관화>가 직장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살펴보는 방식은 인터뷰한다는 느낌으로 다른 분들이 <자기 객관화>에 대해 쓴 것을 인용하고, 그 아래에 간단히 첨언하는 식으로 하겠다.
퇴고는 그 작품을 쓴 사람의 눈으로 작품을 읽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그 작품을 읽지 않았던 고급독자의 눈으로 읽어야 합니다. 즉 자기 작품의 객관화가 퇴고 과정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한 객관화를 위해서 퇴고는 초고가 끝난 뒤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빠르게는 이삼일 뒤, 길 때는 몇 달 뒤에 퇴고를 할 수도 있습니다. 더 오래 처박아두었다가 꺼내 읽게 되면 그 작품의 지지리 못난 얼굴이 더 확실하게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의 객관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객관화가 바로 자신의 안에 최상의 독자를 키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만든 글, 노래, 사진, 강의, 영상, 웹툰, 광고 등의 콘텐츠를 <자기 객관화>라는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기란 참 쉽지 않다.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콘텐츠로 구현하기 때문에, 주관을 걷어내고 완전히 객관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나의 노력, 시간, 생각이 집약된 결과물을 제삼자 입장에서 봤더니 너무 엉망이어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정도의 냉정함이 필요하다. 애써 빚은 도자기라도 마음에 안 들면 가차 없이 깨는 장인처럼 말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죽으라고 만든 보고서, 기획서, 제안서가 내 눈에 안 차 완전히 버린 적이 몇 번인가?
들인 노력이 아깝다고, 바꿀 시간이 없다고 적당히 넘어가지는 않았나?
상사 혹은 고객이 모르면 그만이라고, 나 자신과 타협하지는 않았나?
Q. 회의 등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낮은 사람을 보면 지엽적인 것에만 신경 쓰고 중요한 논점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A. 네, 맞습니다. 사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낮은 사람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당사자는 진지하게 논의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소한 것에 대해서만 열렬히 이야기합니다. (중략)
무엇이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객관화가 안 되면 매사를 자기중심적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이나 자기 형편, 자신의 자만심을 위해 회의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자기 형편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 그 사람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낮은 사람입니다.
회의에서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은 무척 많다.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지는 회의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부서 및 개인의 KPI가 서로 달라 이해관계가 다르고, 괜히 책임질 일을 떠안으면 득 될 게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회사에 속해 있지만 부서 이기주의와 개인 이기주의로 회사 전체를 위한 일이 시작되기 어렵다. 회사 전체 관점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호구가 되기 십상이다.
구조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이득을 취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궂은일을 떠안을수록, 협업에 열심일수록 많은 보상을 줘야 한다.
건강한 사람은 "너 자신을 알라"를 어느 정도 실천할 수 있고,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건강한 사람은 신경증에 걸린 사람보다 더 높은 자기 이해 수준에 도달할 수 있고, 높은 수준의 자기 객관화와 자기 통찰 수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나 타인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특질을 쉽게 투사시키지 않는다. 투사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불만이나 불안의 원인을 해소시키기 위해 그 원인을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심리적 방어기제의 일종이다. 가령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쁜 부정적인 생각을 남들도 다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만큼 직장 내 뒷담화가 많은 나라가 있을까? 물론 뒷담화가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는 하다. 상하관계가 지나치게 엄격해 일방적 지시가 많고, 의사결정은 비합리적이고,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에 집중하는 등 일하기 답답한 환경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뒷담화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투사로 불안감을 해소하기도 하고, 남을 깎아내려 나를 돋보이게 하기도 한다.
'너 자신을 알라 Know thyself'가 되는 사람은 자기 객관화 수준이 높고, 타인에게 부정적 특질을 쉽게 투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투사하는 내 모습을 남들이 어떻게 볼 지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말하면, 부끄러운 줄 알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우리말로 <주리팅이>라고 한다. 주리팅이의 경지에 못 미친다면 내 에너지 관리 관점에서 생각해도 좋다. 집중력, 체력, 가용시간 등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무한하지도 않은 이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다른 사람 씹는 데 쓴다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나 자신을 위해 에너지를 써도 모자랄 판에 왜 뒷담화에 에너지를 낭비하는가?
사회적 존재가 어떤 구성요소와 결합구조를 가진 존재인가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존재인 동물과 사회적 존재인 인간 사이의 질적 차이를 명백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물을 자기의 생활력을 자기 몸에만 체현시켜 자기 혼자만 이용하지만 인간은 사회생활 과정에서 획득한 생활력을 객관 대상에 체현시켜 그것을 사회가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즉 자기 생활력을 객관화하고 사회화한다. 객관화와 사회화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객관화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집단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가 없다.
인간은 정신적 힘과 물질적 힘, 사회적 협조의 힘의 세 가지 생활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세 가지 생활력을 다 객관 대상에 체현시켜 사회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예컨대 인간의 정신적 힘은 처음에 언어와 문자의 형태로 객관화되고 사회화되며 인간의 물질적 힘은 노동 수단(노동 도구)으로 객관화되고 사회화된다. 또 사회적 협조의 힘은 사회관계(사회적 질서)의 형태로 객관화되고 사회화된다.
황장엽 씨는 주체사상 이론가이자 노동당 비서, 최고 인민회의 의장 등을 지낸 북한 최고위층 인사로,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하였다. 이분은 자기 생활력의 객관화가 사회화의 필수 조건이라 말한다.
신입은 스펙이 좋아야 입사를 잘 하고 (스펙 Specification은 제품이나 건물에 주로 쓰이는 말인데 우리는 사람에게 스펙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쓴다) 경력직은 경력관리, 평판관리를 잘 해야 이직을 잘 한다고 하는데, 이를 자기 생활력의 객관화로 볼 수 있겠다.
객관화를 해야 사회적 집단이 나의 생활력을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다. 즉 직장인이 <자기 객관화>를 할 때 핵심은 '내 생활력(역량)을 회사가 연봉을 주고 이용할 가치가 있느냐'라는 점이다. 내 역량의 총합이 다른 사람/기계로 대체하기 쉬우면 이용 가치가 낮아지고, 반대로 대체하기 어려우면 이용 가치가 높아진다. 우리는 대체 불가를 목표로 꾸준히 역량을 키워가야만 한다.
시나리오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선 우선 세상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 즉 산 경험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체험의 핵심과 진실을 읽고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물론 체험이 다는 아니다. 체험주의는 자칫하면 객관성을 상실하고 주관, 도는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때론 수년이 지나야만 비로소 직접적인 체험을 제대로 객관화하여 핵심을 묘사할 수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월남전 참전 경험이 있던 올리버 스톤이 1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플래툰 Platoon이라는 영화를 통해 젊은 날의 체험을 그릴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당장의 일을 차분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는 쉽지 않다. 내가 그 일에 관련된 당사자라면 느낌과 감정이 뒤섞여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몇 년 뒤에 그 일을 다시 떠올려보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시간이 흘러 감정이 증발하고, 자잘한 것들은 망각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자기 객관화에 활용하면 좋다. 내가 주관적인 판단으로 후회할 것 같으면 잠시 멈추자. 그리고 내일, 다음 주, 다음 달의 내가 이 상황을 바라보면 어떨까 상상해보자. 그럼 좀 더 현명한 판단을 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김어준은 진화론자다. 그의 상담은 대체로 진화론적인 가설에 입각해 있다. 이를테면 좌파, 우파의 발생을 설명할 때도 진화론을 가져오는 식이다. 그는 좌파와 우파가 원시시대의 거친 자연 속에 내던져진 인간이 불확실성을 어떻게 극복할까 하는 물음에 대한 각자 다른 답으로 갈렸다고 본다. 한쪽은 약육강식의 경쟁 논리를, 한쪽은 연대를 통한 리스크 분산을 택했다는 것. 그에게 진화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물었다.
“내가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자기 객관화’인데, 자기만 중요하단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는 거야. 내가 다른 사람과 얼마나 다르고 각별한가. 별로 그렇지 않다 이거지. 진화론은 이걸 생물, 자연 전체로 확장한 거야. 인간 역시 다른 생물에 비해 각별하지 않단 거야. 이렇게 자기 객관화의 범주가 확장되다 보니 동물의 한 종으로서의 나를 보게 된 거지.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가 있기 전에 나를 만든 존재들은 누구인가. 이런 관심이 자연히 생기더라고.”
'나는 아주 특별하다', '내가 남보다 낫다', '나는 잘못이 없는데 남/상황 탓이다'라는 생각들은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노력하게 만드는 동기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주위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피해를 끼친다. 처음에는 호의적으로 다가왔던 사람들도 결국 절레절레하며 떠나게 된다.
2005년, MIT의 16대 총장으로 Susan Hockfield가 취임하면서 내세운 표어가 <평범 속의 비범 Uncommon in Common>이다. 표어로만 그친 게 아니라 학회에 지역 주민을 초대하고, 그들의 쓴소리도 들으려 애썼다. 진정한 비범함은 평범함 속에서 빛난다. 내가 잘났다고 착각하고 뽐내야 내가 빛나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인정해줘야 빛을 낼 수 있다. 스스로 빛나는 해가 아니라 그 빛을 받아 반사하는 달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다. 부분적인 객관화는 가능할지언정 총체적이고 평균적인 객관화는 매우 힘들다.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완전무결한 객관화는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은 불완전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확대 해석하고 쉽게 일반화하며 한번 형성된 가치관을 고집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범인들은 타인의 관점보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짙고 그 맛에 살아간다. 범인이 아닌 성인이나 현자들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지적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스스로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가 쉽게 ‘객관’이란 말을 남용하지만 특정한 사실관계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모든 판단과 견해는 철저히 ‘주관적’ 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의 자기 객관화가 생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서 이를 이루려는 노력을 쉽게 포기하거나 폄훼해선 안 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자연인으로서의 자기 객관화를 향한 노력은 당위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의 주관이 완벽히 객관으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그것을 이루려는 노력을 통해 자기성찰을 가능케 하고 주변을 둘러보게 하며 반성과 개선을 도모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 글 내내 <자기 객관화>가 직장인에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을 보면 그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반복하는 정치인도 많고, 끝도 없이 안하무인으로 갑질 하는 재벌도 많고, 주관적으로 사실을 왜곡 보도하면서도 객관적인 척하는 언론사도 많고, 판결을 거래에 이용하는 법관도 있고, 실수로 사람을 죽이거나 몸을 망가뜨리고도 의료행위를 이어가는 의사도 있고, 실무자의 피를 빨아 승승장구하는 임원도 있다.
그 자리에 있어 자기 주관대로 살아도 되는 건지, 자기 주관대로 살다 보니 그 자리까지 올라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존재는 <자기 객관화>의 소중함을 깎아내린다.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는 말자. 우리의 안목이 올라갈수록 그들을 거를 수 있는 힘도 강해진다. 묵묵히 내 자리에서 <자기 객관화>에 힘쓴 우리를 알아주는 세상이 오고 있다.
Q. 시사IN: "리더의 덕목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나?"
A. 정재승 교수: "사람은 자기 객관화가 힘들다. 특히 한국의 리더들은 늘 자신이 유리하게 상황을 해석하곤 한다. 자기 객관화는 인간의 최고 덕목이다. 사랑을 하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냐고 물으면 나는 자기 객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성숙해야 자기 객관화 능력이 생긴다. 보통 사람들이 쉽게 얻지 못하는 정말 고등한 능력이다."
리더 자리에 있으면 1.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쉽게 쓴소리를 하기 어려워서, 2. 상황을 다각도로 해석할 여력이 없을 만큼 바빠서, 3. 아랫사람들 배려해봤자 남는 게 없어서, 4. 내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으니까 리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해석한다.
리더십의 종류는 수십 가지가 있는데 예전 리더십은 리더가 폼 잡고 멋진 척하는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리더는 구성원들에게 "저기까지 우리가 가야 한다"며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 먼 곳까지 가다가 구성원들이 지치면 "우리는 해낼 수 있다"며 동기부여를 하는 식이다.
리더가 비전을 제시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게 구성원들에게는 '가짜 리더십'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반성에서 나온 리더십이 <진성/진정성 리더십 Authentic Leadership>이다. 리더가 자기 자신에게 진실된지, 리더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행동하는지 등에 초점을 두고 있어 '진짜 리더십'을 지향한다. 하버드대학에서 진성 리더십 교육과정을 적극적으로 운영 중에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Q. 씨네21: "복잡한 인간을 선의의 결정으로 이끌 수 있게 하는 방편은 무엇이라고 보나."
A. 정재승 교수: "가장 중요한 건 자기 객관화다.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고등한 사고의 방식이다. 자신의 관점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이 어떨지를 생각하고 상대에게 공감한다. 나아가서는 자신과 상대 모두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종의 전지적 작가 시점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
뇌과학자인 정재승 교수의 "자기 객관화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고등한 사고의 방식이다."라는 말 한마디는 우리가 <자기 객관화>에 힘쓸 가치가 있음을 알려준다.
김옥희(국민대학교 교육대학교) 교수는 저서 『인간관계론』에서 자기 객관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자기 객관화란 자신을 객체로 알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자기가 바라는 자신, 남들이 보는 자신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 개방적이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니게 된다”라고 정의한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바른 자기 확신이 생긴다. 뭐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거짓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 하지 않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효율적으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
결국 <자기 객관화>는 내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다. 자기 주관대로 사는 게 훨씬 편하고 쉽지만, 다른 이들과 좀 더 잘 어우러지고 그 속에서 인정받으려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설령 있는 그대로의 내가 작고 초라해도 상관없다. 앞으로의 나는 훨씬 커질 테니까.
/ 직장인 업무 기본서, 업무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