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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Aug 10. 2022

대기업 임원 대신 성장을 위해 스타트업을 선택하다

안정 대신 성장의 기회를 찾아 스타트업으로 향하는 서권석의 이야기

올해 초 브라운백의 손종수 대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이후 같이 식사도 하며 인연을 이어갔는데 알수록 언행에 빈틈이라곤 찾기 힘들 정도로 매사에 진중한 분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물었다.


"잘 지내시죠? 너무 좋은 분이 있어서 연결해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곧 링크를 보내왔다. 피싱일지 모른다는 우려보다 다른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혹시 나를 싱글로 알고 계시는 걸까?'


적잖은 기대감과 피싱의 위험마저도 감수하겠다는 용기로 링크를 눌렀다. 모니터에 마이크를 든 한 남성분의 사진이 나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으라고 배웠기에 바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다행이다. 내 가정을 지킬 수 있어서.'


운영하는 사업과 직원들 외엔 전혀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손종수 대표가 무척 소중한 지인이라고 소개한 덕에 더욱 궁금해졌다. 곧 그의 지인과 통화할 수 있었는데 경쾌하면서도 배려가 넘치는 그의 신사적인 화법이 돋보였다. 나는 인터뷰를 제안하였고 그 역시 흔쾌히 수락하였다. 비가 아주 억세게 내리던 어느 여름날 우리는 아주 깊은 대화를 이어갔다.




Q. 본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4문장 이내) 부탁드립니다.

우선 최근 MBTI로 개인의 성향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으니 저의 MBTI를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사람을 가장 최고의 우선 순위로 둔다고 알려진 ENFJ가 나왔어요. 25년 전 대학시절에도 역시 ENFJ였는데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더라고요. 실제로도 주위의 관계를 맺은 네트워크나 모임에서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고 사람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사람과 사람 연결을 많이 해주고 있어요.



마케팅을 업으로 삼은 지 18년째인데 사실 예전부터 본업과 관계없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걸 워낙 좋아했어요. 그래서 소개팅 주선이나 구인 구직도 많이 연결하고 심지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것부터 연애편지 등 연결의 표현까지 대신 써주곤 했죠. 지금은 업무를 하며 알게 된 분들중 서로 시너지가 날 것 같은 조합이 보이면 적극적으로 연결을 해드리고 있어요. 제가 평소 관계지향적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그 사람들을 더욱 깊게 알아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워요. 그런 면에서 제 삶의 지향점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이음새’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누구나 연결은 할 수 있지만 괜찮은 ‘이음새’를 만들고자 항상 진심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Q. 중고등학교 시절은 어땠나요? 주위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었나요?

당시 친구들은 마치 제 MBTI처럼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똑같다고 이야기 하고는 해요.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무대를 즐기는 등 외향적이고 강인한 면이 있지만 글과 그림을 가까이하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의외의 면모도 있다고 해요. 그런 저의 양면성(兩面性)이 세월이 많이 지나고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음에도 변함이 없다는 말을 지금도 많이 들어요.


아무래도 이런 저의 양면적인 성향이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과 교감을 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덕분에 다양한 모임과 단체에서 활동하며 끊임없이 소통하고 새로운 관계를 계속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Q. 국문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 같이 무언가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리고 제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한 타인이 반응을 보일 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희열감을 느껴요. 그래서 대학에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더 전문적으로 배울 생각으로 국문과를 지원하였어요. 그런데 국문과는 제가 상상했던 것처럼 실제로 글쓰기를 집중적으로 하는 학문은 아니었어요. 언어학이나 고전문학에 대해 깊게 파고들 뿐 작문력을 집중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수업은 제한적이었죠.


그리고 취업을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송 프로듀서 혹은 광고업계에서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은 생각에 신문방송학을 복수전공을 하게 되었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연결되어 휴먼다큐 프로듀서에 가장 관심이 컸어요. 그런데 우연히 현업에서 근무하시는 분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제작사 근무 환경이 녹록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NAVER 오디오클립 ‘윤정은 작가의 독서 위로’ 녹음 중


시청자들은 최종결과물만 접하니 제작과정을 알 수 없는데 실제로 현장에서는 준비기간이 꽤 길다고 해요. 카메라에 잡히는 분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모두가 편해지면 그제야 카메라 전원을 키고 촬영을 시작한다고 해요. 저는 그 과정마저도 고결하고 의미 있게 느껴져 더욱 관심이 커지게 되었죠. 그렇게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을 촬영하면 출연하신 분들과 인간적인 정이 생겨 촬영이 끝나고도 연을 이어간다고 하시더라고요. 단순히 콘텐츠 제작에서 그치지 않고 관계 형성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졸업 후 진로 결정은 어떻게 하셨나요?

프로듀서를 생각하고 일 년 정도 준비하였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프로듀서를 계속 준비할지 아니면 새로운 도전에 임할지 고민하던 중 마케팅이라는 분야가 우연히 시야에 들어왔어요. 제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들의 공통 분모라고 할 수 있어요. 신문과 광고, 고객과의 소통 그리고 콘텐츠까지 모두 접할 수 있는 분야였어요.


하지만 당시 경력직이 아니고서야 마케팅 업무를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어요. 자칫 대고객 메시지의 완성도를 회사와 제품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직원들에게 맡기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었죠. 그리고 유관부서와 소통이 잦은 업무 특성상 원활한 협업을 끌어낼 수 있는 경력직을 더 선호했던 것 같아요. 운이 좋게도 마케팅 업무를 사회 초년생으로서 담당할 기회가 열려있는 곳을 알게 되었죠. 바로 지금은 콘덴싱 만드는 경동나비엔으로 잘 알려진 ‘경동보일러’였어요.


Q. 경동나비엔에서 첫 직장생활을 하였는데 어땠나요?

최근 만나는  분들이 저의 지난 커리어를 보시고 경동나비엔은 상당히 의외의 경력이라고 말씀을 많이 하세요. 하지만 경력이 부족한 저에게 마케팅업에 진입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는 친정과도 같은 곳이죠. 물론 입사 초기에는 무척 넓은 범위의 업무를 경험하였어요. 이후 보일러를 만드는 제조사란 틀에서 벗어나 환경기기를 만드는 기업, 에너지기기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업이란 이미지로 거듭나기 위해 리브랜딩에 힘을 쏟게 되며 저도 본격적으로 마케팅 업무를 할 수 있었어요. 


ⓒ경동


많은 분들이 모르실 수 있는데 경동나비엔의 나비엔(NAVIEN)은 Navigator(항해자)와 Environment(환경) 그리고 energy(에너지)의 합성어로 ‘환경과 에너지의 길잡이’란 뜻이에요. 단순히 보일러 전문 기업을 넘고자 B2C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였고, 덕분에 신입 마케터가 경험하기 쉽지 않은 다양한 채널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었죠. 수차례의 시행착오가 있었고 경영진과의 잦은 미팅으로 매일 점심식사도 못할 만큼 스트레스도 심했지만, 저에게는 업무적인 측면에서 무척 성장했던 시기였어요. 더불어 경영진의 장기적인 계획을 이해하고 직접 세부적인 실행을 온전히 책임지고 담당할 수 있었는데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이후의 커리어로 쉽게 이어지지 못했을 거예요.


Q. 5년 가까이 근무하였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무엇인가요?

경동나비엔은 새로운 사명과 함께 소비자에게 친숙한 브랜드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생겼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십수 년이 지나도 회자되고 있는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캠페인을 새롭게 선보이기로 했어요.


대한민국 광고대상 우수상 경동보일러 광고 효심 캠페인, ⓒ경동


지난 90년대 광고가 ‘효심’에 초점을 두어 공감대를 얻어냈다면 이후에는 ‘마음’에 더 무게를 두어 훈훈한 기업브랜드의 이미지를 전달했어요. 딸의 떨어진 성적, 막 출가한 막내의 빈자리, 아내의 생일을 챙기지 못해 싸늘해진 집안 분위기 등 썰렁하거나 가라앉은 가족들의 일상생활 속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로고를 돌출시켰죠. 보일러가 시골 아버님 댁에 놓여 집을 따뜻하게 해드리는 유형의 제품만이 아닌, 가족들에게 따뜻한 감성적 위안까지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소소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더욱 대중에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보일러 놔드려야 겠어요’ 리뉴얼 캠페인 부부편 중, ⓒ경동


그러던 중 겨울 시즌을 앞두고 미리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온라인 광고를 기획한 시기가 있었어요. 이전에는 단순히 바이럴 혹은 검색 아니면 유료 배너광고 중심의 온라인 광고 집행이 대세였다면 온라인 광고로도 브랜딩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보고 싶었죠. 그래서 Daum의 ‘디지털 브랜딩 퍼포먼스 애드(DBPA)'를 통해 PC 웹, 모바일과 같은 온라인 채널에서 TV 광고에서 시도할 수 없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시도하며 경동나비엔의 브랜드를 널리 알릴 수 있었어요.


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사이클과 한정적인 제품군으로 인해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갈증이 점점 커졌어요. 5년 정도 시간이 지나니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단순히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마케터의 역할에서 벗어나 조금 더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어떻게 보면 실제 광고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광고 대행사)에서 제작하고 대고객 메시지는 경영진이 직접 결정을 하다 보니 제가 과연 얼마나 기여를 하며 성장하고 있는지 스스로의 전문성에 대해 불안해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그마저도 저에게는 값진 경험이었는데 어린 마음에 전문성이 결여된 마케터로 정체되어버릴까 봐 두려웠던 거죠.


Q. 당시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어떻게 하셨나요?

주위 사람들에게 들어보면 저는 고민이 있을 때 가만히 앉아서 골똘히 고민하는 성향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저 스스로 온전한 답을 찾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것을 알기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며 그 속에서 해답을 찾는 편이에요. 다행히 주위 사람들과 관계가 늘 좋았던 편이다 보니 해결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그 문제를 잘 알고 같이 논의할 수 있는 분들이 주위에 항상 존재했어요.


다음커뮤니케이션 제주 본사 버스 정류장


그러던 어느 날 포털 사이트 ‘Daum’ 초청으로 본사가 있는 제주로 워크숍을 가게 되었어요. 저는 당시 아무래도 방송 광고 중심의 레거시 미디어에 익숙하다 보니 온라인 광고가 낯설고 궁금해서 정말 이것저것 많이 물었어요. 그런데 이 미지의 분야를 알수록 더욱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그래, 나의 미래를 온라인에 걸어보자!'


얼마나 관심이 높았던지 아예 술자리에서 당시 Daum의 임직원분들에게 직접적으로 물었어요.


“Daum에서 하는 일이 너무 흥미로워 보이는데 혹시 저같이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감사하게도 저의 적극적인 면을 긍정적으로 봐주셔서 내부 추천으로 이어졌고 Daum으로 이직하게 되었죠. 생각해 보니 회사를 옮길 때 헤드헌터나 리크루터를 통한 일반적인 채용 절차를 거치기보다 일하며 알게 된 관계를 통해 이직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저의 역량을 조금 더 잘 발휘하고 한 단계 더 성장할 기회가 있으면 주위에서 추천을 포함한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고민이 있거나 풀어야 하는 문제가 있으면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주위의 다양한 경험이 있는 분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더 나은 선택지를 결정하거나 새로운 답을 찾고 있어요.


Q. 직접 경험한 Daum의 기업문화는 어땠나요?

초반에는 무척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개인적으로는 신혼이었고 아내가 첫째 혜원이를 뱃속에 가졌을 때였거든요. 다들 일반적으로 더욱 안정을 추구할 때인데 제가 조금 무모했던 것 같기도 해요. 가정을 형성하는 격동의 시기에 제가 새로운 도전에 임하다 보니 저도 제 아내도 무척 고되었죠.


Daum이라는 곳은 정말 대한민국에서 처음 경험하는 문화 그 자체였어요. 국내에서 ‘님 문화’를 앞서 도입한 곳이 바로 Daum일 정도로 이곳만의 문화가 뚜렸했어요.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명확한 직급체계가 있는 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완전히 새로운 기업문화에 적응하려니 힘들었죠. 그뿐만 아니라 새로 입사한 사람들의 적응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포함한 온보딩 과정이 크게 없었어요. 그래서 첫 회의에 참석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OO님, 차주 DA의 예상 CPM과 CTR이 각각 얼마나 돼요? 고객사에서 생각하는 ROAS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일 자체가 달라도 너무 달랐어요. 처음 몇 달은 적응하느라 진땀을 뺐던 것 같아요. 하지만 묵묵히 일하다 보니 오프라인 경험이 있는 제가 기여할 기회가 생겼어요. 그 과정에서 저만의 경쟁력으로 공통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자 동료들과 더욱 가까워지고 회사가 조금 더 편하게 느껴졌어요.


Q. Daum에서는 주로 어떤 업무를 하였나요?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관심 분야였던 마케팅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당시 업무 담당자가 공석이 되면서 내부에서 적임자를 찾았고 마침 당시 본부장님이 저를 추천해주셔서 해당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어쩌면 이번에도 역시 회사 내에서 많은 분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은 덕분에 제가 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실제 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죠. 이직 후 적응과정에서 제가 동료들을 기피하고 그저 고민만 했다면 주위에서 제가 가진 역량을 파악하지 못했을 거예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테니까요.


Mnet 음악의신 마케팅 촬영 현장


마케팅을 담당하며 제가 집중하였던 것은 Daum의 다양한 서비스와 기존 콘텐츠 시장(방송, 엔터, 뮤직, 영화, 게임 등)의 니즈를 계속 적절하게 이어주는 것이었어요. 예를 들어, CJ ENM과 회의를 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한 회의실을 예약해줄 것을 요청하고서 당시 CJ ENM의 다양한 채널(Mnet, 온스타일 등) 담당자들과 개별 미팅을 하며 각 담당 채널의 니즈를 파악하고 시너지를 만들어 콘텐츠 이슈성으로 트래픽 활성화를 견인할 수 있는 Daum의 서비스를 연결했죠. 영화 채널은 영화 실시간 검색 순위를 포털에 띄워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고, 슈퍼스타K나 K팝스타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해서 투표를 진행하거나 미디어 연예 섹션에서 이용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어요.


SBS K팝스타 시즌2 마이피플 마케팅 배너 디자인


한창 아이돌 육성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화제였던 시기가 있었는데 포털을 통해 시청자와 조금 더 인터랙션을 풍부하게 만들어보자는 논의가 있었어요. 그 결과물이 바로 YG엔터테인먼트(YG)가 빅뱅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남자 그룹의 데뷔 과정을 담은 WIN(Who is Next?)이라고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에요. 모바일 다음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생중계하고, PC와 모바일 기기에서 방송 하이라이트, 미공개 영상을 독점 제공했어요.

그리고 인터넷방송이 세간의 주목을 받자 기존의 TV 스타들과 사회 각층에서 전문가들이 자신만의 콘텐츠로 직접 인터넷 생방송을 하는 1인 방송 대결 프로그램인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있었어요. 그때 Daum이 플랫폼 파트너로서 참여하며 Daum이 가진 tv팟(현재 카카오TV)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생중계를 내보냈어요. 그래서 TV에서 방영되는 편집본 대신 생중계를 보고 싶은 많은 분들이 Daum tv팟을 이용했어요. Daum tv팟이 앱스토어 1위를 달성한 것은 물론 포털 내 검색순위에 출연자들이 꾸준히 상위를 차지할 정도로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죠.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다음 tv팟 생방송


이외 영화, 게임, 뮤직, 미디어사 등 다양한 분야의 생태계와 연결하는 파트너십을 통해  Daum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서비스로서의 브랜딩과 트래픽 향상을 모두 잡을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어 볼 수 있었어요.


Q. 2014년 카카오가 Daum을 인수하였는데 당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우선 표면적으로는 사무실 위치가 바뀌었어요. Daum 시절의 사무실은 한남동이었는데 판교로 대이동을 해야 했죠. 또 다른 변화는 호칭이었어요. 아무래도 카카오는 구성원들이 영어 이름으로 불리다 보니 Daum의 상징과도 같은 ‘님 문화’가 사라지고 전부 영어 이름을 만들게 되었죠. 저는 ‘Kay’라는 영어 이름을 쓰게 되었는데 제 의지와 관계없이 영어 이름으로 불리고 동료들을 영어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 게 처음에는 낯설고 다소 불편했죠.


Daum & Kakao 합병 이후 비즈니스 컨퍼런스 현장


‘Daum’으로 이직 후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큰 애정을 갖게 된 기업의 문화와 서비스가 합병 이후 조금씩 사라지는 과정을 목격하는 과정은 심적으로 고통스러웠어요. 특히 가깝게 지냈던 동료들이 퇴사 혹은 사내 이동으로 인해 떨어지게 될 때는 더욱 쓰라렸죠. 카카오의 인수는 분명 누군가에게는 실망과 시련을 안겼을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모바일 기반의 전국민 트래픽을 보유한 플랫폼을 활용하여 새로운 시도를 해볼 기회가 생겼으니까요.


저 역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제 몫을 해내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Daum이 모바일 친화적인 서비스로 거듭나기 위해 ‘마이피플’과 같은 앱 서비스를 론칭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면 카카오는 어쩌면 태생부터 모바일 기업이었죠. 덕분에 이전에는 주로 PC 혹은 웹 기반 서비스에 협업 방식을 고민하고 제안하였다면 이제는 고객사들과 모바일을 포함한 다양한 디지털 채널을 활용하고 논의할 수 있어서 훨씬 운신의 폭이 커졌어요. 아마 ‘주식회사 칠십이초’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카카오에 조금 더 길게 근무하며 모바일 시대의 새로운 시도에 동참하고 다양한 시도를 함께 했을 것 같아요.


Q.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주식회사 칠십이초'(이하 72초TV)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느 날 카카오의 한 경영진이 참고하라며 웹드라마나 디지털 콘텐츠로 불리우던 생태계 안에서 모바일 콘텐츠로서의 우수한 포맷 레퍼런스로 72초TV의 콘텐츠를 보여주었어요. 사실 72초TV 대표와 평소 일면식이 있던 사이였어요. 원래 공연 쪽 사업을 하시던 분이었는데 이후 모바일 콘텐츠 쪽으로 사업을 피봇팅 하셨죠.

 

72초TV 바나나액츄얼리 시즌2 제작발표회 현장


그래서 제가 투자 혹은 협업의 목적으로 미팅을 요청했어요. 저는 카카오 소속으로 양질의 콘텐츠 수급이 고민거리였다면 그분은 콘텐츠 기획자이자 제작사로서 고민이 있었어요. 협업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지만 아쉽게도 72초TV와 카카오의 인연은 실현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결과를 떠나 길고 치열한 논의과정을 통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긴 계기가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72초TV 대표가 저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했어요.


“아예 같이해보는 게 어때?”


사실 당시에는 이분이 평소 자주 쓰는 표현으로 이해하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반년 넘게 이런 얘기를 수시로 듣자 저도 이분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답했죠.


“형이 진심이면 나도 진지하게 고민해볼게.”


홍콩 해외 마켓 FILMRT 72초TV 부스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에서 근무하며 콘텐츠만큼 이용자들의 호응과 유입을 끌어내는 효과적인 소재는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방송국 프로듀서가 아니어도 방송사 채널에 편성되지 않더라도 누구나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할 수 있는 시장이 열린 거죠. 그런 의미에서 72초TV는 무척 진보적이었고 혁신적인데다가 공감은 물론 재미까지 보장했죠.


‘어쩌면 이거야말로 국내뿐만이 아닌 글로벌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서로에 대한 믿음과 함께 확장성이 무척 큰 사업이라는 확신이 들자 합류를 결심하게 되었죠.


Q. '주식회사 칠십이초’에서 처음에는 CMO(마케팅 총괄)를 담당하시다가 나중에는 CBO(사업 총괄)을 맡으셨는데 직무를 변경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72초TV라는 기업보다는 콘텐츠 IP 자체를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였어요. 콘텐츠 자체가 흥행이 되면 자연스럽게 콘텐츠의 제작사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라고 봤죠. 72초TV 콘텐츠를 유독 좋아하는 팬들이 형성되는 등 인지도가 높아지자 이제는 수익성도 챙겨야 하는 시기에 이르렀어요.


미국 뉴욕 에미어워드 노미네이트 레드카펫


콘텐츠로 단순히 이슈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수익을 창출해야 했기에 72초TV에서도 수익성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게 되었죠. 마침 제가 Daum에서 여러 기업들과 협업을 진행하며 수익모델을 구축한 적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저의 역할과 책임이 확장되었어요. 이후 프랑스, 미국,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 해외마켓에서도 72초TV 콘텐츠를 꾸준하게 소개하였고 덕분에 TV 산업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고 불리며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에미어워드에서 수상 후보로 오를 수 있었어요.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해외에서도 통하는 콘텐츠라는 것을 증명한 계기가 되었죠.


Q. '72초’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을 것 같은데 퇴사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한테 72초TV는 단순히 직장의 개념이 아니었어요. 그 누구보다 색깔 있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제작할 줄 아는 분들과 함께여서 주말에도 월요일 출근이 기다려질 정도였어요. 회사와 회사의 콘텐츠에 대한 애정이 정말 컸죠.


구글 서울캠퍼스 이달의 스타트업상 수상


하지만 회사에 대한 저의 애정과는 별개로 제가 콘텐츠 제작에 직접적으로 참여를 하지 않다 보니 회사가 성장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늘 고민이 되었어요. 기업이 성숙해짐에 따라 수익성을 배제할 수 없었어요. 결국 콘텐츠의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애초에 흥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작가와 감독 그리고 출연진을 확보하여 플랫폼과 오리지널 계약을 체결하거나 사전 PPL 계약을 수주해야 했어요. 단순히 화제성 혹은 조회수로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무작정 앞만 보며 달리던 이전과 달리 제 삶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런 고민이 겹겹이 쌓인 결과, 갈림길에 서게 되었어요. 그렇게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지 않고 나와 약 5개월 동안 공백기를 가졌어요. 쉬면서 재충전도 하고 생각도 정리할 마음이었죠. 그런데 뜻밖에도 100개가 훌쩍 넘는 기업에서 미팅 요청과 영입 제안을 주셨어요. 비록 계획했던 온전한 쉼은 어려워졌지만, 스스로 되돌아본 의미 깊은 시간이었죠.


Q. LF에 합류하신 계기는 무엇이고 이전에 근무하였던 기업들과는 어떻게 달랐나요?

LF에 합류하기 전 무신사에서 미디어 디렉터로 근무하고 있었어요. 무신사가 영상 콘텐츠의 활용도를 높이고 미디어 부문을 확장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서 합류하게 되었죠. 성장하는 기업에서 만족하며 근무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기업에서 제안받게 되었어요. 한때 LG패션으로 불렸던 LF였죠. 사실 무신사는 이미 상당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유니콘이었던 반면 LF는 다소 전통적인 산업을 전개하며 새로운 시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새로운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면 나 자신에게는 더욱 값지고 유의미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고민 끝에 LF 합류를 결정하였죠. LF에서의 문화적 이질감은 사실 크지 않았어요. 이전에 경동나비엔에서 근무한 경험이 LF에서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다만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대면 근무가 줄어들어 동료분들과 친해지고 교류하는 데 조금 애를 먹었어요. 아무래도 경영진이 저에게 기대하는 것은 신선하고 기발한 시도인데 기존 조직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예상보다 다소 버거웠어요. 그분들도 마음은 열려있지만, 막상 콘텐츠를 새롭게 해석한 시도들이 아직은 어색하게 느껴지셨던 것 같아요.


LF ‘내일부터 나도 유튜버 프로젝트’ 관련 기사 (매일경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MCN사업자 비디오빌리지와 함께 국내 최초의 패션 유튜버 선발 오디션 ‘내일부터 나도 유튜버’를 개최할 수 있었어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MZ세대가 즐길 수 있는 흥미로운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폭넓은 고객층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통하며 라이브커머스를 연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죠. 지속적인 시도를 해보고 싶었는데 단발성으로 마무리되어 아쉬움은 남지만 분명 업계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고, 이후 LF의 새로운 사업 모델의 시작점이 되었던 것 같아요. 올해 하반기 LF에서 새로운 콘텐츠 커머스 사업을 론칭 할 예정인데 개인적으로 기대가 무척 커요.


Q. 마케팅 혹은 미디어 전문가를 꿈꾸는 분들이 꼭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최근 들어 외부 강연을 줄이고 있지만 대학 강의처럼 젊고 어린 학생분들과 소통하는 자리는 가급적 꼭 진행하려고 해요. 그분들과 만나 소통하면 저 역시도 배우는 부분이 크거든요. 소통하려는 노력이 마케터들이 꼭 갖춰야 하는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미디어 시장은 끊임없이 변하고 진화하기 때문에 계속 배우고 경험해야만 마케터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어요. 또한 각자의 다른 언어를 연결하는 통·번역이 마케터로서 굉장히 중요한 역량이라고도 생각하는데 실질적인 경험만큼 효과적인 학습법은 없어요.


퍼블리시스원 오피스에서 콘텐츠 비즈니스 강연 중


소속된 회사의 규모나 업종과 관계없이 마케팅 혹은 미디어 전문가를 꿈꾸신다면 무엇이든 만들어 보고 무엇이든 경험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셨으면 해요. 그러면 그 자체가 마케터로서 성장하는데 좋은 기반이 될 거라고 봐요. 그렇게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과 교류하다 보면 온전한 나로서 세상에 어떤 쓰임새가 있을지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일 거예요. 저도 여전히 헤매이고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마케터가 규정된 역할이 아닌 시대에 자기다움이 살아있는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 갈 수 있다면 분명 더 유의미한 기회와 보상을 함께 얻어가실 수 있을 거라고 감히 확신해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LF에서의 시간을 갈음하고 곧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어요. 실은 더 이상 적지 않은 나이와 현실적인 책임감 등을 고려하여 최근 다양한 포지션 제안 중에서도 주로 대기업 임원으로 검토를 진행하던 중이었어요. 마케터로서 정점을 찍을 좋은 기회들이 있었지만 이전처럼 설레지 않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아직은 여전히 새롭고 다양하게 시도하며 성취하고 뜨겁게 만들어 가고 싶은데 그곳에서 이런 바람을 실현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어쩌면 타고난 팔자나 제 천성이지 않을까도 생각해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진짜를 고민하는 진짜들이 모인다면 무엇이든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Live Together 챌린지 @스페이스애드 오피스


그래서 다시 스타트업에 도전합니다. 현재 서비스 ‘라이브클래스’를 운영하는 ‘퓨쳐스콜레’라는 스타트업에 부대표로 합류하여 콘텐츠와 마케팅을 포함한 커넥트 영역을 주도할 예정이에요. 콘텐츠는 특정한 형태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무척 다양해요. 꼭 대규모 투자가 동반된 OTT 오리지널과 같은 콘텐츠만이 콘텐츠는 아니니까요. 이제는 네트워크화된 미디어 환경 안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수익을 벌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어요.


저는 날로 구체적이고 다양해지는 소비자의 수요에 부합하는 콘텐츠들을 소비자와 연결하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라이브를 포함하여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라이브클래스’는 제 삶의 지향점과 닿아있는 서비스예요. 그래서 마치 운명처럼 결정하게 되었고, 앞으로 더욱 진심으로 연결하는 이음새로 살아가 보려고 합니다. 이제 ‘퓨쳐스콜레’가 운영하는 서비스 ‘라이브클래스'를 통해 현재 주로 만나볼 수 있는 지식 콘텐츠를 넘어 누구나 쉽게 퍼스널 브랜드를 기반으로 자신의 콘텐츠를 비즈니스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한 걸음 더 다가설 것이니 앞으로 많은 기대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부족하나마 세상에 진심으로 괜찮은 이음새가 되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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