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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Jul 12. 2023

“그 회사가 망할 줄 알았다고요?”

"No, I did not see that coming.”

영어에는 ‘See something coming’이라는 흥미로운 표현이 있다. '보다'라는 뜻의 동사 'see'가 '예견하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리 알고 있었냐고 묻고 싶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Did you see that coming?”


최근 한 스타트업이 파산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은 예견되었고 모두 알고 있었다는 듯한 전지전능한 태도를 보였다. 어떤 사람은 기업의 사업모델이 문제라며, 애초부터 성공할 수 없는 사업모델이었는데 운 좋게 투자를 유치하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이미 일어난 일인데, 창업자를 비방하고 기업의 구성원들을 조롱하는 것은 과연 현명한 행동일까? 우리 모두가 실패하지 않고 성공만을 거듭한 연쇄창업가인가? 이 기업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를 하고 교훈을 얻는 것은 좋지만, 이럴 줄 알았다고 하거나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결과론적인 말을 하는 것은 과연 자신을 지적이고 돋보이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이 기업의 창업자나 경영진들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겪은 일련의 과정은 상당히 힘들고 괴로웠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이 이 사업을 시작할 때, 우리 7년 정도 버티다가 망할 스타트업을 만들어 보자고 하면서 사업자 등록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작은 기회라도 포착해서 성장의 가능성으로 바꾸려는 것이 창업가들의 속성이자 역량이 아닐까? 사실 사업모델이야 사업을 진행하면서 신속하게 혹은 점진적으로 계속 진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꿈꾸며 자신들의 젊음과 열정을 사업에 쏟아부었다. 그렇게 애정과 정성을 들여 키웠던 사업이 한순간에 과거가 되었다. 그들이 유쾌하게 사무실을 정리하고 짐을 챙겨 나올 수 있었을까? 그들이 악의를 가지고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왜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걸까? 나는 그들을 비웃고 어차피 망할 사업이었다고 훈계할 자격이 없다. 그들만큼 이 사업에 진심으로 몰입하고 노력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팀원이 몇 주를 고민해서 신사업 기획안을 가져온 적이 있다. 빠르게 읽어보고 바로 결정했다.


“좋아요, 해보죠.”


너무나도 빠른 결론에 팀원이 놀라서 물었다.


“팀장님, 이렇게 바로 결정해도 돼요?”


그래서 답했다.


“제가 당신만큼 이 문제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한 적이 없어요.”

“여기서 제가 한마디 더 하고 장표 한 장 더 추가한다고 해서 사업의 성패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당시 나를 멍하게 쳐다보던 팀원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그 친구가 누구보다 성실하게 준비한 것을 옆에서 봤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실 그렇다. 아무리 분석하고 철저하게 준비해도, 실전은 머릿속 상상과 다르다.


누군가는 이 기업의 쇠락을 보며 투자자들의 소중한 돈을 날렸다고 원망하더라.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은 모험의 일종이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원금 보장과 함께 막대한 이익을 기대했던 걸까? 그런데 왜 모험하면 안 되는 것일까? 무조건 이기는 베팅을 하고 싶었다면 은행 정기예금을 찾았을 것이다. 실제로 투자한 투자자들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정작 투자하지 않은 사람들이 투자금의 기회비용에 대해 언급하고 아쉬워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마치 재벌기업의 2세 혹은 3세의 상속세 뉴스를 보며 재벌 후계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투자자들 나름대로 투자 전 내부심의와 절차를 거쳐 검토했을 것이고 각 벤처캐피탈의 기준과 펀드의 성격과 목적에 부합하니 투자를 집행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높은 성장과 수익을 바라면서도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모순이다.



난 이 사태를 보며 여기에서 가장 크게 피해를 본 사람은 기업의 임직원이라고 생각한다. 한순간에 다니던 직장이, 같이 일하던 동료가, 공유했던 비전이 사라진 것이다. 이 얼마나 한탄스럽고 허탈하겠는가. 굳이 누군가 그들에게 돌을 던진다면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당신은 그들보다 얼마나 더 잘할 수 있었냐고.


우리 사회와 어른들은 실패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져야 한다. 모범답안만을 요구하지 말고, 엉뚱하더라도 다른 답안을 내는 이유와 배경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실패할 수 없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될 줄 알았냐고 묻는다면 난 담담히 대답하겠다.


"No, I did not see it 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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