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누군가에겐 감내하기 어려운 대상일 수 있다'
"쟤랑 어울리지 마."
이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어린 시절 친구 관계를 좌우하던 이 말은, 놀랍게도 성인이 된 지금도 우리 주변을 맴돈다. 다만 그 모습이 더욱 세련되고 교묘해졌을 뿐이다.
누군가의 평가에 반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부정적인 의견을 서슴없이 내뱉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종종 침묵을 선택한다.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이 갈등을 피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안전한'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이쯤에서 우리는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나는 모든 이에게 호감을 주는 완벽한 인격체인가? 어떤 이에겐 천사 같은 존재일지 모르지만, 다른 이에겐 악마로 비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평가할 자격이 있을까? 이 질문들은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는 것은 일상이다. 대부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지만, 가끔은 예상치 못한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의 경험은 인간 심리의 복잡성과 편견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모든 것은 한 업계의 저명한 전문가와의 인터뷰 섭외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 그는 바쁜 일정을 핑계로 거절했다. 하지만 끈질긴 설득 끝에 드러난 진짜 이유는 충격 그 자체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에 인터뷰했던 그 사람과 동급으로 취급받고 싶지 않아서요."
그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전문성과 개인적 호불호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런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사람이 당신에겐 비호감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윤리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편견의 덫에 빠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 모두가 이런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뼈아픈 교훈을 준다.
당신은 어떠한가? 혹시 무의식 중에 누군가를 '같은 부류'라는 이유로 평가 절하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항상 자신의 판단을 되돌아보고, 타인을 평가할 때 더욱 신중해야 한다.
편견 없는 세상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 편견을 인식하고 극복하려 노력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를 한 걸음 더 발전시키는 길이 아닐까?
윤리성과 호감도를 구분하는 능력은 성숙한 사회의 핵심이다. 누군가가 개인적으로 비호감일 수 있지만,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윤리성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취향과 도덕적 가치를 혼동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다양성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소통하는 것은 건강한 담론 형성의 토대가 된다. 이는 단순히 '다름'을 인정하는 차원을 넘어, 그 '다름'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는 우리 사회를 더욱 포용적이고 진보적으로 이끄는 핵심 요소가 된다.
이 모든 것의 근간에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겐 감내하기 어려운 대상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그의 입장이라면 어떨까?'라는 질문은 우리를 더 너그럽고 이해심 있는 존재로 만든다. 이러한 자기 성찰은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결론적으로,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특성을 지닌다. 단순히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여 관계를 맺거나 끊는 것은 우리 사회를 더욱 폐쇄적이고 편협하게 만들 뿐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대신 우리는 각자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단순한 관용을 넘어, 적극적인 이해와 소통을 의미한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더 풍요롭고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런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다양성과 포용성이 실현되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