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 시대의 마케팅 전략: 브랜드 가치의 중요성
휴넷이 주최한 '포사이트 코리아 2025' 포럼에서는 기업의 미래 전략과 혁신 방안이 다양하게 논의됐다. 그중에서도 인생네컷의 서기석 CMO가 진행한 "불황기 시대의 마케팅 전략" 강연은 많은 경영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서기석 CMO는 이케아 한국 CMO, GM 전략기획실장, 카카오 모빌리티 브랜드 디렉터 등을 거친 마케팅 전문가다. 현재는 전 세계 700여 개의 매장을 보유한 셀프 포토 스튜디오 브랜드 '인생네컷'에서 CMO로 재직 중이며, K-포토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강연은 브랜드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통찰로 시작됐다. 그는 브랜드를 단순한 로고나 이미지가 아닌, 고객과의 약속이자 자산으로 정의했다. "불황기일수록 결국 남는 것은 브랜드"라며,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특히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현 시점에서 브랜드는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고 설명했다.
성공적인 브랜드 구축을 위해서는 '멘탈 어베일러빌리티(Mental Availability)', '디자이어빌리티(Desirability)', 그리고 '피지컬 어베일러빌리티(Physical Availability)'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멘탈 어베일러빌리티는 브랜드가 소비자의 마음속에 얼마나 쉽게 떠오르는지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콜라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브랜드가 있다면, 해당 브랜드는 높은 멘탈 어베일러빌리티를 확보한 것이다. "어떤 카테고리에서든 소비자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브랜드는 최대 5개를 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요소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둘째, 디자이어빌리티는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와 욕구를 의미한다. 소비자들이 얼마나 그 브랜드를 사랑하고, 신뢰하며, 트렌디하다고 느끼는지를 포함한다. 이는 단순한 인지도를 넘어 감정적 연결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다.
셋째, 피지컬 어베일러빌리티는 실제 구매 가능성을 의미한다. 나이키의 사례는 이 요소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D2C(Direct to Consumer) 전략에 과도하게 집중한 나머지 리테일 매장에서의 제품 가용성이 떨어졌고, 이는 브랜드 성장에 걸림돌이 되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균형 잡힌 발전이 필수적이다. 브랜드 성과를 평가할 때는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특정 카테고리를 떠올렸을 때 우리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가?", "소비자들이 우리 브랜드를 진정으로 선호하는가?", "구매하고 싶을 때 쉽게 접근할 수 있는가?"
마케팅의 존재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단기적 매출 증대를 위한 '세일즈'와 장기적 가치 창출을 위한 '브랜드 성장'이다.
세일즈 관점의 마케팅은 직접적인 매출 증대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기업의 즉각적인 성과 창출에 기여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진정한 마케팅의 가치는 장기적 관점의 브랜드 성장에서 찾을 수 있다.
브랜드 성장을 위한 마케팅은 고객의 마음속 점유율(멘탈 어베일러빌리티)과 선호도(디자이어빌리티)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 "소비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으려면 지속적으로 다가가야 하며, 진정한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뛰어난 콘텐츠와 제품을 꾸준히 선보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인크리멘탈 커스터머(Incremental Customer)' 개념이다. 이는 기존에 우리 브랜드를 고려하지 않던 고객들을 새롭게 유입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효과적인 마케팅은 잠재 고객층을 발굴하고 그들을 실제 고객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더 나아가 "마케팅은 곧 고객이다"라는 혁신적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마케팅이 단순한 기업 내 부서가 아닌, 고객과의 모든 접점을 아우르는 통합적 활동임을 의미한다. 마케팅의 궁극적 목표는 브랜드가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선택받게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고객 중심의 통합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마케팅 투자:
불황기에 기업들이 가장 먼저 삭감하는 것이 마케팅 예산이다. "매출이 떨어지면 마케팅 예산부터 삭감하고, 세일즈 압박을 강화하며, 마지막으로 복지를 줄이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하지만 이는 치명적인 실수가 될 수 있다.
연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불황기에 마케팅 투자를 48% 늘린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이 2배로 증가했으며, 이러한 기업의 60%가 경쟁사 대비 10~17%의 추가 매출 성장을 달성했다. 마케팅 투자 감소는 '셰어 오브 보이스(Share of Voice)' 하락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기업의 영향력과 매출을 약화시킨다.
차별화된 브랜드 포지셔닝:
'리퀴드 데스(Liquid Death)'는 미국 생수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2019년 설립 이후 3년 만에 기업가치 7억 달러를 달성했으며, 2022년 매출은 전년 대비 3배 증가한 1억 3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펑크와 헤비메탈 이미지를 통한 차별화 전략의 성공을 입증한다.
러닝화 브랜드 'On'은 2010년 설립 이후 연평균 성장률 85%를 기록하며, 2022년에는 12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했다. 특히 젠다야를 브랜드 앰버서더로 영입한 2023년 캠페인 이후, Z세대 소비자층에서 브랜드 선호도가 32% 상승했다. 제품 자체의 차별화가 어렵다면,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지각된 독특성(Perceived Distinctiveness)'을 창출할 수 있다.
전략적 가격 정책:
실제로 할인 캠페인의 84%는 수익성 악화를 초래한다. IKEA의 "Our Lowest Price" 전략이 성공적인 이유는 단순한 가격 인하가 아닌, '더 많은 고객에게 좋은 제품을 합리적으로 제공한다'는 브랜드 철학과 연계했기 때문이다. 가격 정책은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을 반영해야 한다.
고객 충성도 전략 수립:
단순한 CRM이나 멤버십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커뮤니티 구축이 필요하다. IKEA 'Family',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Members Week'는 단순한 혜택 제공을 넘어 브랜드만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맥킨지 연구에 따르면, 충성도 높은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단순 가격 할인보다 효과적이다.
브랜드 경험 혁신:
Chipotle와 Taco Bell의 성공적인 브랜드 회복은 본질로의 회귀에서 시작됐다. Marshall의 사례처럼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카테고리로 확장하는 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브랜드의 특별함을 고객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략들은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 브랜드 가치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불황기를 견디고 더 강한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통합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마켓 오리엔티드 마인드셋(Market-oriented Mindset)"은 단순한 구호가 아닌, 기업 생존의 필수 요소다. 마케팅은 화려한 광고나 판촉 활동을 넘어, 고객을 이해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회사에 들어간 순간부터 당신은 더 이상 고객이 아니다."
이 도발적인 문장은 기업 내부자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을 정확히 지적한다. 수년간의 경험을 가진 임직원들도 어느새 내부자적 관점에 매몰되어 진정한 고객의 목소리를 놓치기 쉽다.
Walmart의 전설적인 창업자 샘 월튼은 "There is only one boss. The customer."라는 명언을 남겼다. 고객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기업의 진정한 의사결정자라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든 기업을 '해고'할 수 있으며, 자신의 지갑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존재다.
이러한 고객 중심적 사고의 중요성은 불황기에 더욱 부각된다. Harvard Business Review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고객 중심 전략을 강화한 기업들의 주가는 위기 이후 3년간 S&P 500 지수를 평균 25% 상회했다. 또한 McKinsey의 최근 분석은 고객 만족도 상위 25% 기업들이 하위 기업들보다 불황기에도 평균 3배 높은 주주수익률(TSR)을 기록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Forrester Research의 조사다. 고객경험지수(CX Index) 상위 기업들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하위 기업 대비 5배 빠른 매출 회복세를 보였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고객 중심 전략이 단순한 이상이 아닌, 기업 생존과 성장의 핵심 동력임을 입증한다.
결국 불황을 이기는 비결은 단기적 비용 절감이 아닌, 브랜드 가치의 지속적인 강화에 있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전술의 문제가 아닌, 기업의 근본적인 경영 철학과 직결된다. 고객을 진정한 보스로 인정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만이 불황을 넘어 더 강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