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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Oct 28. 2024

스탠포드 졸업한 억만장자가 '대학 가지 마라'고 한다

진정성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솔직함: 혁신과 성장의 역설적 동력

"우리는 지금 버블 속에 있습니다. 2000년의 닷컴 버블이 아닌, 고등교육의 버블입니다."


2011년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컨퍼런스. 페이팔 공동창업자이자 페이스북 첫 외부 투자자인 피터 틸의 발언에 청중들이 숨죽였다. 스탠포드 법대를 졸업한 실리콘밸리의 거물이 기존 교육 시스템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순간이었다. 틸은 냉철한 데이터를 제시하며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실리콘밸리의 이단아, 혹은 선지자


피터 틸의 도발적인 발언은 면밀한 관찰에 기반했다. 2011년 당시 미국의 학자금 대출 규모는 1조 달러를 돌파했고, 대학 졸업생의 평균 부채는 2만 5천 달러에 달했다. 연방준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대졸자의 45%가 전공과 무관한 직종에서 일하고 있었다.


피터 틸, ⓒTechCrunch


전미대학교육협의회(National Review)와의 인터뷰에서 틸은 자신의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혔다.


"고등교육은 전형적인 의미의 버블입니다. 모두가 그것이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비용을 지불하고,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죠. 역사적으로 모든 혁신은 기존 체제의 바깥에서 시작됐습니다."


틸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단순한 비판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실천에 나섰다. 23세 이하의 젊은이들이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에 도전하면 2년간 10만 달러를 지원하는 '틸 펠로우십'을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장학금 프로그램이 아닌, 기존 교육 시스템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장이었다.



논란 속에서 시작된 실험 그리고 10년 후


틸 펠로우십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MIT 교육학과의 제인 매닝 교수는 "엘리트의 무책임한 실험"이라고 비판했고, 뉴욕타임스는 "위험한 도박"이라는 사설을 게재했다. 심지어 실리콘밸리의 동료들조차 "교육의 가치를 너무 폄하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틸은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교육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교육의 형태를 찾고 있을 뿐"이라며 프로그램을 계속 이어갔다.


틸 펠로우십


2021년, 틸 펠로우십 10주년을 맞아 발표된 성과는 주목할 만했다. 225명의 펠로우들이 창업한 기업들의 총가치는 71억 달러를 넘어섰다. 주요 성공 사례는 다음과 같다:


비탈릭 부테린(2014년 선정): 이더리움 창시자. 현재 시가총액 약 2000억 달러

에반 슈피겔(2012년 선정): 오픈스토리 창업. 현재 기업가치 20억 달러

루시 굿(2016년 선정): 크립토커런시 거래소 설립. 기업가치 15억 달러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만든 사회적 파급력이다. 틸 펠로우들이 설립한 기업들은 인공지능, 청정에너지, 바이오테크놀로지 등 혁신이 필요한 분야에 집중되어 있었다.


틸의 과감한 문제 제기는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화시켰다. 갤럽이 실시한 연간 교육 가치 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 학위가 좋은 일자리를 위해 필수적이지 않다"라고 답한 미국인의 비율이 2013년 36%에서 2020년 51%로 증가했다.


실제로 구글, 애플, 테슬라 등 주요 테크 기업들은 2020년부터 채용 시 4년제 대학 학위 요건을 폐지하기 시작했다. 대신 실무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또 다른 솔직함의 승리: CVS의 결단


2014년 2월, 미국 최대 약국체인 CVS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건강관리 기업이 담배를 파는 것은 근본적인 모순"이라며 전격적인 담배 판매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CVS의 결정은 업계에 지진급 충격을 안겼다. 담배 판매는 CVS 연간 매출의 20억 달러를 차지했고, 담배를 사러 온 고객들의 추가 구매로 발생하는 연관 매출까지 고려하면 실제 손실은 4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은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무모한 결정"이라며 비판했고, 실제로 발표 직후 CVS의 주가는 8% 하락했다.


경쟁사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Walgreens와 Rite Aid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존중한다"며 담배 판매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업계 전문가들은 CVS가 시장 점유율을 경쟁사에 빼앗길 것이라 예측했다.


CVS, ⓒCNBC


그러나 이 솔직한 결단은 2년 후 더 큰 보상으로 돌아왔다. CVS의 주가는 54% 상승했고, 새롭게 시작한 헬스케어 서비스 부문은 연 매출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대형 의료기관과 보험사들의 반응이었다. 존스홉킨스 병원, 클리블랜드 클리닉 등 미국의 주요 의료기관들이 CVS를 '선호 파트너'로 선정했고, 여러 보험사들도 CVS와의 협력을 확대했다.


더욱 의미 있는 변화는 기업 내부에서 일어났다. 건강관리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이 명확해지면서 직원들의 자부심도 높아졌다. 내부 설문조사에서 직원 만족도는 23% 상승했고, 신규 채용 지원자 수는 2배 이상 증가했다.


2016년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래리 멀로 CVS 전 CEO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매출을 포기했지만, 그 대신 신뢰를 얻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신뢰가 더 큰 사업 기회를 만들어냈죠."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용기


진정성의 첫 단계는 솔직함이다.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라 해도, 단기적 손실이 예상되더라도,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낸다.


나 역시 때로는 불편한 주제를 먼저 꺼내야 할 때가 있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더라도 말이다. 문제를 덮어두는 것이 평화로워 보일 순 있다. 하지만 암묵적 동의 속에 묻어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적은 없었다. 고름을 짜내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치유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다.



미국에서의 학업 경험은 이러한 깨달음을 더욱 단단하게 해 주었다. 만장일치란 현실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이상향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치열한 토론과 협의를 거쳐 대다수가 합리적이라고 믿는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현재의 상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피터 틸과 CVS의 사례는 이러한 원칙을 실천으로 옮긴 대표적 예시다. 그들은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것'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그 솔직함으로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2014년 피터 틸이 그의 저서 'Zero to One'에 남긴 말을 되새겨본다.


"가장 큰 거짓말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혁신은 그 거짓말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교육도,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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