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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May 27. 2020

"반가워, 난 한국에서 왔어."

신입사원, 유럽 본사를 방문하다.

생전 처음 비즈니스석을 탄 나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180도 누울 수 있는 좌석과 각종 편의시설에 놀라 들떠 있을 때 옆 자리에 계신 중년의 남자분이 물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비즈니스석


"비즈니스석으로 가시는 거 보니 좋은 회사 다니시네요."


나의 후줄근한 복장과 비즈니스석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나의 관찰자 기질에서 '어쩌다 보니 비즈니스석' 탑승객임을 알아차렸나 보다.


"네, 회사 규정이어서 5시간 이상 비행기 타면 직급에 관련 없이 비즈니스석에 타야 해서요. 어디에 가세요?"


비즈니스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분이 난 사실 더 궁금했다.


"전 교수인데 외부 연구원으로 삼성의 지원을 받아 학회에 참여하러 가는 길입니다."


'대기업은 역시 뭔가 다르군.' 그렇게 우리의 짧은 대화는 끝이 났고 항공사에서 무제한 제공하는 와인에 나는 점점 취기가 올라왔다. 스위스 제네바로 향하는 직항기가 없어 핀란드 항공사를 통해 헬싱키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핀에어 탑승 중


인천에서 헬싱키까지 약 9시간이 걸렸고 그곳에서 다시 3시간 정도 걸려 제네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제네바에서 1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제네바 호수를 돌아 본사가 있는 브붸로 향했다. 10시간 정도 말을 하지 않으니 입이 근질거렸다. 지루하면 사람이 거침없어진다고 옆자리에 탑승한 분과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아재, 이 기차 브붸 가는 거 맞아?(서울 지하철은 이보다 훨씬 복잡해. 그냥 당신의 말동무가 되고 싶을 뿐)"


옆자리에 앉은 이유로 그와의 밑도 끝도 없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응 맞아. 너 어디서 왔니?"


"한국에서 왔어. 북한인지 남한인지 물을 거 아니지? 근데 아재 인상이 낯설지 않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


"그래? 난 한국에 간 적이 없는데?"


브붸가는 기차에서


초면이지만 우리의 인연은 유통기한이 짧아 대화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거침없이 물었다.


"잡스 닮았어. 스티브 잡스. 아이폰 쓰는 거 아니지?"


"어?!?"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협의 하 신상정보를 주고받았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밥이었다. 밥 할아버지는 자기가 한 때 한국인 여성과 교제한 사연부터 현재 자기가 무직이며 파트너의 집에서 파트너의 수익으로 살고 있다는 TMI까지 아낌없이 제공해주었다. '누가 서양인은 개인사 잘 말하지 않는다고 했지?' 와이프 혹은 배우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으로 보아 동거하는 사이인가 보다. 그의 눈빛에서 불안함과 초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이래서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돈을 벌어야 하나?' 밥 아재는 나보다 몇 정거장 앞서 내려야 했다.


"아재, 이것도 기념이니 우리 기념사진이나 찍죠. 사진은 이메일로 내가 보내줄게요.(아재, 쫄지마. 돈 안 벌어도 그대는 이미 멋짐이 충만한 사람이야)"


스티브 잡스 닯은 밥 아저씨와 나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파트너와도 잘 안 찍는 초밀첩 셀피를 찍고 서로 건투를 빌어주며 헤어졌다.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다시 택시를 타고 본사 옆 본사가 운영하는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전 세계에 약 29만 1천 명의 직원이 있는데 본사에서 교육 또는 콘퍼런스 참석 시 이 곳을 이용했다. 호텔 앞에 보이는 경치는 정말 상상 그 이상이었다. 내 발 밑에는 잡풀 없이 탐스럽게 자란 잔디가 가득했고 내 앞에는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 역할을 하는 제네바 호수 그리고 그 뒤엔 동쪽은 오스트리아에서, 서쪽은 프랑스 동남부까지 1,000㎞ 이상에 걸쳐 동서 방향으로 뻗은 알프스 산맥이 병풍처럼 둘렀다. 한 폭의 그림 같은 경치는 나로 하여금 입은 벌어지고 발은 떨어지지 않게 했다.


본사에서 보이는 제네바 호수와 알프스(프랑스)


다음 날 이른 아침 우리는 교육담당자로부터 안내받은 대로 로비에서 만났다. 다양한 국가에서 참여하다 보니 영어가 아닌 외국어가 종종 들렸다. 그렇게 이방인의 무리는 본사의 배정된 교육실에 앉아 교육의 목적 및 주의사항에 대해 안내받았다.


7년 전 그 회의실에서 있었던 일 중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은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전 세계의 다양한 해외법인 프로젝트 담당자가 참석하다 보니 서로 안면이 없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국가, 담당업무 그리고 경력 등 자기소개를 하였다. 이 공간이 익숙하고 자신감이 가득 차 보이는 한 명이 먼저 시작하였다.


"안녕, 난 Vinay야. 인도에서 왔고 회사의 자금기획과 비용통제를 담당해. 본사에는 이 전에도 강사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교육을 받기 위해 방문했어. 그리고 입사한 지는 약 15년 정도야. 마지막으로 난 아들이 둘이야"


'본사에 강사로 온 적이 있다고? 거기다가 15년 경력이라고?' 그 친구의 소개 후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냐, 저 친구만 독특한 케이스 일 거야. 쫄지말자' 이윽고 그다음 참가자가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안녕, 난 Shani이고 이스라엘에서 왔고 관리회계를 담당하고 있어. 경력은 네슬레에서만 7-8년 되는 것 같고 다른 회사 경력도 합치면 10년 이상 되는 것 같아."


그 후 다들 짧게는 7-8년 길게는 20년 가까운 경력을 보유한 나와 같은 사원들을 데리고 팀을 운영하는 팀장 혹은 부서장이 대부분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반가워, 모두. 난 한국에서 왔어. 회사에 입사한 지 1년 조금 넘었어."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one year'라는 표현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 '정말 1년밖에 안되었다고?' '한국법인은 무슨 생각이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내 소개에서만 유독 술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자기소개 중 알게 되었는데 나를 제외하곤 모두 기혼이었고 대부분 아이를 둔 부모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정말 스위스고 만년설이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랜 경력직들이 대부분인 이 커리큘럼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그들의 대화는 마치 유년시절 미국 중학교에 처음 등교한 날을 상기시켰다. 분명 문장은 들리는데 해석이 되지 않았다.


"PFME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지?"


"현금흐름을 높이기 위해 NWC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지?"


"DPO와 DSO는 어떻게 최적화할 수 있지?"


당시 조 발표 내용 중 일부


지금은 모두 이해하는 표현이지만 당시 1년이 막 지났을 때는 저렇게 acronym(단어의  글자들로 하나의 말을 형성하는 줄임말)으로 대화를 할 때 정말 죽을 맛이었다. 점점 동공이 풀리고 회의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 강사가 물었다.


"OO, 너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은 거지?"


"익숙하지 않은 줄임말들이 많아서 이해하고 따라가기 조금 벅차네."


"오~ 걱정하지마. 회사에서 사용하는 줄임말을 모아둔 사전이 있어."


정말이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줄임말을 대부분 기술한 문서가 있었다. '처음부터 풀어쓰면 되는데 왜 다들 줄임말을 쓰고 다시 사전을 쓰는 거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150년이 넘은 회사라 그런지 쉽게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교육은 힘들었지만 교육에서 만난 해외법인 친구들은 금새 친해졌다. 내가 경력이 짧고 어렸지만 결코 가르치려 들지 않고 나를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존중해줬다. 교육 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Vinay의 참견 같은 첨언이었다. 강사가 한 마디 하면 Vinay가 꼭 한 마디를 더 붙였다. 예시를 들면 아래와 같다.


열심히 교육 중인 아시아 태평양 지역 담당자


교육 강사: "현금흐름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 중 운전자본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있어."

Vinay: (손을 들며)"이 부분은 우리 법인에서도 무척 신경을 쓰는 부분이야. 하지만 운전자본을 너무 타이트하게 줄이다 보면 다른 부작용들이 발생할 수 있지. 현업에서는 ~."


무엇이 이상한지 느꼈다면 당신은 겸손과 예를 중시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맞을 것이다. Vinay는  강사의 교육 중 손을 들고 질문이 아닌 평문에 평문을 더했다. 초기에는 강사가 교육에 참여하고 본인의 경험을 더해주어서 무척 고마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사가 불안해했다. Vinay 덕분에 진도율이 50% 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른 해외법인 담당자들도 Vinay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강사가 이론과 방법론에는 능했지만 Vinay처럼 실제 사례를 가지고 일목정연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누가 봐도 그 강의실에서 에이스였다. 강사들 대신 그가 진행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Vinay를 경험한 나로선 Google, Microsoft, Pepsi, Adobe 등 세계적인 기업의 대표들이 인도 출신인 것이 십분 납득이 되었다.


묵직한 조언을 준비하는 Vinay(자주색)와 이해는 못하지만 일단 경청하는 나(한국인)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나였지만 열심히 교육에 참여했다. 물론, 타 법인 담당자들과 네트워킹하는 것도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는 모든 일정을 함께했다. 종종 몇몇이 교육을 빠지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본사에 근무하는 전 동료, 전 보스를 만나고 왔다. 본사에 오기 전부터 미리 미팅 약속을 잡아둔 것이었다. 나중에 싱가포르 법인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인데 그곳 직원들은 본사 방문 시 그곳에 근무하는 자신의 보스의 보스와 약속을 꼭 한다고 한다. 심지어 아프리카 대륙에서 온 담당자도 자리를 비웠다.


국내 법인에서는 묵묵히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했다. 결코, 네트워킹의 중요성에 대하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치열하게 일하고 네트워킹에 적극적인 해외법인 담당자들과 내가 발을 맞출 수 있을까?' 정말 국내 법인에서 15개월 간 근무하는 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자극을 일주일 동안 경험했다.


호텔 체크아웃 당시 남아있던 동료들과 함께


그렇게 일주일 동안의 본사에서의 교육이 끝났다. 경력과 관력 지식이 가장 부족한 나는 최대한 자세하게 필기하고 녹음하고 촬영하며 조금이라도 놓치는 부분이 없도록 주의했다. 왜냐하면 돌아가면 내가 틀린 부분 혹은 누락된 부분을 정정해줄 사람이 없었다. 본사 교육은 컴퓨터 배경화면과 같은 곳을 배경으로 편하게 임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입시처럼 치열하게 보낼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제네바 호수를 국경선으로 둔 프랑스와 스위스


그리고 6개월 후 Vinay가 예고도 없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OO, 데니스(아시아 오세아니아 담당자)한테 들었어.


너희 법인이 지금 진행이 가장 빠르다며?!"






이후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재미없는 직장 얘기지만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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