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과 상상력이 만든 기업 혁신의 역사
2004년 말, 덴마크 빌룬드의 레고 본사. 새로 취임한 CEO 요르겐 비 크누드스토프의 책상 위에는 회사의 처참한 실적 보고서가 놓여있었다.
"손실액 7억 3천만 달러, 총 부채 10억 달러. 레고 72년 역사상 최대 위기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마음을 잃은 걸까?"
"우리는 테마파크도, 의류 사업도, 비디오 게임도 모두 매각했습니다. 대신 브릭이 주는 창의적 경험에 모든 것을 걸었죠."
레고의 변화는 숫자로 명확히 드러났다. 2005년, 영업이익 2억 크로네를 기록하며 첫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어 2006년에는 매출이 전년 대비 19% 증가했고, 순이익은 40% 급증했다. 2010년에 이르러서는 매출 55억 달러를 달성하며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그러나 레고의 진정한 혁신은 2011년에 시작됐다. 일본의 한 팬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CUUSOO'(일본어로 '소원'이란 뜻) 시스템을 전 세계로 확대한 것이다. CUUSOO는 레고 팬들이 직접 제품을 제안하고, 1만 명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공식 제품화를 검토하는 혁신적인 플랫폼이었다. 이는 후에 'LEGO Ideas'로 발전하여 레고의 제품 혁신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이 플랫폼의 첫 글로벌 프로젝트였던 'Minecraft Micro World'는 레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출시 전 예약 판매만으로 전체 생산 물량이 완판된 것이다. 뒤이어 출시된 'NASA Apollo Saturn V'는 레고의 성인 타겟 제품 중 가장 성공적인 베스트셀러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레고가 더 이상 장난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상상력을 실현하는 도구였죠."
크누드스토프의 이 말은 단순한 완구 회사에서 글로벌 창의력 플랫폼으로 진화한 레고의 새로운 정체성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한 소비자 참여가 아닙니다. 집단 창의성의 힘입니다."
레고의 성공은 '사용자 주도 혁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의료기기 회사 콜로플라스트(Coloplast)는 이를 자사의 혁신 모델로 발전시켰다.
콜로플라스트는 'User-Led Innovation' 프로그램을 통해 장루와 실금 환자들이 직접 제품 개발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된 'SenSura Mio' 제품은 회사의 주력 제품으로 자리잡았다.
"의료진도, 엔지니어도 아닌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게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사용자만이 알 수 있는 문제점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레고의 혁신 방식은 여러 기업들로 확산되었다. 특히 IKEA와 테슬라의 사례는 호기심 기반 혁신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잘 보여준다.
IKEA는 'Democratic Design' 철학을 바탕으로 고객 참여형 제품 개발을 실천하고 있다. 2017년 출시된 'DELAKTIG' 소파는 이 철학을 실현한 대표적 사례다. Tom Dixon과의 협업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고객들이 제품 개발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살아있는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가구 컨셉을 만들어냈다.
Tesla는 'Early Access Program'과 'FSD Beta' 프로그램을 통해 자율주행 기술 발전에 고객 참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선별된 테슬라 오너들이 베타 테스터로 참여하여 실제 도로 상황에서의 데이터와 피드백을 제공한다. 이러한 고객 참여형 개발 방식은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 발전을 가속화하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의 2021년 혁신기업 연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끈 기업들은 구성원들의 호기심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세 가지 핵심 시스템을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
새로운 아이디어가 제안되면 얼마나 빨리 검토하고 피드백을 주는가가 핵심이다. 애플은 'Rapid Prototype Review'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를 평균 2주 내에 검토하고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는 기존 기업들의 평균 검토 기간인 8주의 1/4 수준이다. 신속한 피드백은 제안자의 열정과 몰입도를 높이는 핵심 요인이었다.
실패를 통한 학습:
시스템 실패를 두려워하면 혁신은 불가능하다. 구글의 'Postmortem' 문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실패한 프로젝트의 핵심 교훈을 체계적으로 문서화하고 전사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구글은 2020년 한 해 동안 무려 120개의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었다. 실패는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두가 배우는 소중한 자산이 된 것이다.
명확한 인센티브 구조:
아이디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지속적인 혁신의 동력이 된다. P&G의 'Connect + Develop' 프로그램이 좋은 예시다. 이 프로그램은 외부에서 제안된 아이디어가 제품화되면 매출의 3%를 로열티로 지급한다. 투명하고 명확한 보상 체계 덕분에 2020년 기준으로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된 제품들이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BCG의 분석 결과는 이러한 시스템의 효과를 명확히 보여준다. 위 세 가지 시스템을 모두 갖춘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신제품 출시 기간을 35% 단축하고
연구개발 비용을 25% 절감했으며
신제품의 시장 성공률을 40% 향상시켰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호기심과 상상력을 존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업만이 지속적인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1년, 레고의 연구실에서 새로운 질문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하면 플라스틱 블록을 환경친화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는 2004년 크누드스토프가 던진 질문만큼이나 도전적이었다. 레고 브릭의 견고성과 정교함을 유지하면서 친환경적 소재를 사용한다는 것은 모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호기심은 혁신을 만들어냈다. 연구팀은 재활용 페트병으로 레고 브릭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한 개의 1리터 페트병으로 열 개의 2x4 레고 브릭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품질은 기존 제품과 동일하면서도, 환경 부담은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지속가능성은 우리의 다음 도전입니다."
2021년 연차 보고서에서 니엘스 크리스티안센 CEO는 말했다. 553억 크로네(약 87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세계 최대 완구 기업이 된 레고는 이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장난감으로 어떻게 더 나은 지구를 만들 수 있을까?"
2032년까지 모든 제품을 지속 가능한 소재로 전환한다는 레고의 새로운 도전은 또 다른 혁신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한 때 파산 위기에 놓였던 기업이 환경을 생각하는 글로벌 리더로 성장한 것이다. 이 도전적인 목표 역시 하나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당신의 기업은 오늘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그 호기심이 열어줄 상상의 문은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