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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Dec 06. 2024

77일간의 저항으로 고객들이 되살린 100년 브랜드

의도치 않은 위기가 전략이 된 순간: 브랜드 위기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

1975년, 펩시는 게임체인저가 될 마케팅 전략을 시작했다. '펩시 챌린지(Pepsi Challenge)'였다. 쇼핑몰과 공공장소에서 눈가리개를 한 소비자들에게 코카콜라와 펩시를 맛보게 하고, 어떤 맛이 더 좋은지 선택하게 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57%의 사람들이 펩시를 선택한 것이다.


펩시의 성공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 펩시는 코카콜라보다 설탕 함량이 높았고, 한 모금 맛보기 테스트에서는 더 달콤한 맛이 선호되는 경향이 있었다. 더구나 당시는 미국의 식문화가 더 달콤한 맛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던 시기였다. 특히 10대와 20대 초반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1985년 4월 23일,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코카콜라 본사. CEO 로베르토 고이수에타(Roberto Goizueta)는 중대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1980년 38%였던 콜라 시장 점유율이 1985년 초반 33%까지 하락했고, 펩시와의 격차는 4.9%까지 좁혀졌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젊은 소비자층의 이탈이 심각했다.


"우리는 1981년부터 4년간 총 20만 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고이수에타의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렸다. 


"새로운 포뮬러는 기존 코카콜라와 펩시를 모두 압도했습니다. 오늘 저는 99년 동안 이어온 코카콜라의 비밀 제조법을 변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뉴코크, ⓒ코카콜라


회의실은 숨 막히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새로운 제품명은 '뉴코크(New Coke)'였다. 새로운 포뮬러는 기존보다 당도를 높이고 시트러스 향을 강화한 것이었다. 코카콜라는 이 변화를 위해 당시 기준으로 400만 달러(현재 가치 약 1,060만 달러)를 투자했다.



예상치 못한 소비자 반응


뉴코크 출시 직후, 코카콜라 본사의 소비자 핫라인은 마비되다시피 했다. 하루 평균 1,500통의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애틀랜타에 있는 코카콜라 본사의 교환원들은 쉴 틈 없이 전화를 받아야 했다.


"당신들은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빼앗아갔어요!"


"이건 마치 링컨 기념관을 페인트로 칠하는 것과 같아요!"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조직적인 반발이었다. 시애틀의 주부 게이 멀린스(Gay Mullins)는 '기존 코카콜라를 되찾기 위한 시민모임(Old Cola Drinkers of America)'을 결성했다. 이 단체는 단 2주 만에 회원 수가 100,000명을 돌파했다.


ⓒ코카콜라


마케팅 책임자 세르지오 자이먼(Sergio Zyman)은 후에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철저한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200만 달러를 들여 TV 광고를 제작했고, 150만 캔의 샘플을 준비했죠. 하지만 우리는 결정적인 것을 간과했습니다. 코카콜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미국인들의 삶의 일부였다는 것을... 그들에게 코카콜라는 성조기만큼이나 미국적인 것이었습니다."



위기가 기회로: 77일간의 드라마


1985년 7월 11일, 코카콜라는 극적인 발표를 했다. 기존 코카콜라를 '코카콜라 클래식(Coca-Cola Classic)'이란 이름으로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뉴코크 출시 후 정확히 77일 만이었다.


피터 제닝스(Peter Jennings)는 ABC 저녁 뉴스를 중단하고 이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코카콜라가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패배가 아닌, 놀라운 반전의 시작이었다.


코카콜라 클래식이 출시된 첫 주, 코카콜라의 주가는 6포인트 상승했다. 더 놀라운 것은 판매량이었다. 1985년 말까지 코카콜라 클래식의 판매량은 뉴코크 출시 이전보다 8% 증가했고, 펩시와의 시장점유율 격차는 15.6%로 벌어졌다.


당시 코카콜라 북미 마케팅 책임자 돈 키오(Donald Keough)는 이렇게 회상했다. 


"매일 아침 판매 보고서를 받아 들고 우리는 눈을 의심했습니다. 소비자들은 마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연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코카콜라 클래식을 반겼습니다."


코카콜라 클래식, ⓒ코카콜라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젊은 소비자층의 반응이었다. 코카콜라를 한 번도 마셔보지 않았던 10대들이 '클래식'이라는 이름에 끌려 제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1985년 8월 한 달간 18-24세 소비자층의 구매량은 전년 대비 38% 증가했다.


The Wall Street Journal은 이를 "마케팅 실패가 만든 최고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코카콜라는 이 사건으로 약 1억 달러 상당의 무료 홍보 효과를 얻었다고 추산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도널드 킨(Donald Keene)은 이렇게 분석했다. 


"코카콜라는 의도치 않게 '부족의 법칙(Scarcity Principle)'을 완벽하게 활용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잃을 때,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생각하지 못한 교훈


뉴코크 사건은 브랜드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남겼다. 무엇보다 제품이 단순한 물리적 속성을 넘어 소비자의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코카콜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미국인들의 추억과 정서가 깃든 문화적 상징이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발견은 소비자들의 감정적 유대감이 제품의 맛이나 품질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뉴코크가 더 높은 선호도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기억 속 코카콜라를 선택했다.


또한 이 사건은 위기 상황에서 보인 신속하고 진정성 있는 대응이 오히려 브랜드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코카콜라의 신속한 결정과 겸허한 태도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대 마케팅의 진화: 의도된 위기의 전략적 활용


2020년,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앤제리스(Ben&Jerry's)는 'Black Lives Matter' 성명을 통해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강력한 입장을 표명했다. 일견 아이스크림 브랜드가 첨예한 사회적 논쟁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천만한 선택으로 보였다. 실제로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고, 보수층 소비자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벤앤제리스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성명 발표 후 24시간 만에 소셜미디어에서의 브랜드 언급량이 850%나 폭증했다. 보이콧 운동에도 불구하고 2020년 매출은 전년 대비 11% 증가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밀레니얼과 Z세대 소비자들의 반응이었다. 이들 연령대에서 브랜드 충성도가 36% 상승한 것이다.


이는 뉴코크 사건의 교훈이 현대적으로 진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위기가 더 이상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닌,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로 변모한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전략의 성공을 위해서는 브랜드의 진정성과 일관성, 그리고 정교한 실행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의도된 위기의 성공 조건


ⓒ파타고니아


2011년 파타고니아(Patagonia)가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 캠페인을 선보였을 때, 많은 이들이 실패를 예측했다. 그러나 이 캠페인은 파타고니아의 브랜드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성공의 핵심은 세 가지 요소에 있었다.


첫째, 브랜드 정체성과의 완벽한 일치였다. 파타고니아는 1973년 설립 이래 지속적으로 환경 보호와 책임 있는 소비를 강조해 왔다. 2002년부터는 매출의 1%를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지구를 위한 1% 캠페인'을 실천해 왔다. 이러한 일관된 행보가 있었기에 과감한 캠페인도 소비자들에게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둘째, 철저한 위기관리 시스템이 작동했다. 파타고니아는 캠페인 전 6개월간 잠재적 리스크를 분석했고, 실시간 소비자 반응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부정적 반응에 대한 상세한 대응 매뉴얼을 준비했는데, 이는 위기 상황에서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셋째, 명확한 타깃 설정이다. 파타고니아는 환경에 관심이 많은 밀레니얼 세대를 주요 타깃으로 설정했다. 이들의 가치관과 소비 패턴을 심층 분석한 결과를 캠페인에 반영했고, 이는 적중했다.



위기를 넘어선 브랜드의 미래


뉴코크(New Coke) 사건 이후 40년, 브랜드 위기관리는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맥킨지(McKinsey)의 2023년 'Brand Risk Management' 보고서에 따르면, AI 기반 위기관리 시스템 도입 기업들의 평균 브랜드 가치는 미도입 기업 대비 18% 높았다. 그러나 기술 도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2023년 칸 광고제(Cannes Lions Festival)에서 프록터앤갬블(P&G)의 마크 프리처드(Marc Pritchard) CMO는 핵심적인 통찰을 제시했다. 


"데이터는 소비자의 행동을 보여주지만, 그들의 마음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진정한 혁신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실제 데이터로도 입증된다. 딜로이트(Deloitte)의 2023년 소비자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브랜드 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진정성 있는 대응이 있었던 경우, 소비자 신뢰 회복률이 평균 63% 더 높았다. 특히 밀레니얼과 Z세대 소비자들의 경우, 브랜드의 진정성을 위기 극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1985년 뉴코크의 사례가 현대 마케팅에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위기는 더 이상 회피하거나 단순히 관리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브랜드가 자신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소비자와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다. 기술은 이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주는 도구일 뿐, 본질은 여전히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신뢰 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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