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인후 Dec 09. 2024

18분이라는 단순한 규칙이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명료성이 이끄는 동기부여: TED 18분 룰의 인지심리학적 효과

2002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크리스 앤더슨은 자신의 책상 앞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TED를 인수한 직후였다. 당시 TED 강연은 때로 1시간을 넘기기도 했고, 청중들은 종종 강연 중간에 자리를 비웠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앤더슨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인간의 집중력은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아이디어는 무한하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는 커피 잔을 들여다보며 문득 깨달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 바로 그것이었다.


"모든 강연은 18분을 넘기지 않는다."


이렇게 TED의 18분 룰이 탄생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했다.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어떻게 18분 안에 담을 수 있을까? 빌 게이츠도, 제인 구달도, 일론 머스크도 이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야 했다. 불가능해 보였다.



제약이 만든 기적


이 제약은 예상치 못한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강연자들은 자신의 메시지를 더욱 정제하게 되었고, 핵심 아이디어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군더더기 없는 명확한 스토리텔링은 청중들의 몰입도를 크게 높였다.


ⓒTED


2006년, TED는 또 하나의 도전적인 시도를 한다. 'Ideas Worth Spreading'이라는 모토 아래, 양질의 강연들을 무료로 온라인에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18분이라는 시간은 현대인의 일상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출퇴근 시간, 점심시간, 취침 전 짧은 여유 등 언제 어디서나 온전히 한 편의 강연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러한 혁신은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 2016년에는 누적 조회수 10억 회를 돌파했고, 2021년에 이르러서는 하루 평균 400만 명이 TED 강연을 시청하게 되었다.



뇌가 사랑하는 단순함의 비밀


앤더슨은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18분은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이에요. 충분히 깊이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집중력을 잃지 않는 시간이죠."


이러한 그의 통찰은 실제 과학적 연구 결과들과 놀랍게 일치했다. 2010년 워싱턴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학습자들의 집중력은 약 10-20분 주기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분은 이러한 인지적 주기와 잘 부합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시간 제약의 효과성은 다른 연구들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조지 밀러의 "마법의 숫자 7±2" 법칙은 인간의 작업기억이 한 번에 5-9개의 항목만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제한된 시간 내에 핵심 메시지를 압축해서 전달해야 하는 TED 강연 형식의 과학적 근거가 된다.


실제로 이러한 시간 제약은 강연의 질을 높이는 촉매제가 되었다. 강연자들은 복잡한 아이디어를 명확한 스토리와 비유로 재구성했고, 이는 청중의 이해도와 몰입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TED의 내부 데이터에 따르면, 18분 이하 강연의 평균 시청 완료율은 더 긴 영상에 비해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작은 규칙의 큰 영향력


TED의 성공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TEDx라는 새로운 형식이 탄생했고, 작은 동네 커뮤니티에서도 TED스러운 강연이 열리기 시작했다. 2009년 처음 시작된 TEDx는 폭발적으로 성장해 2019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3,700개 이상의 이벤트가 개최되었다.


기업들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TED의 간결함과 명확성에서 영감을 받았다. 구글은 기본 회의 시간을 30분으로 제한했고, 아마존은 한 팀의 규모를 '피자 두 판을 나눠먹을 수 있는 인원'으로 제한하는 '2피자 팀' 원칙을 도입했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TED가 보여준 혁신이었다.



짧은 시간의 마법이 퍼지다


TED의 영향력은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었다. 스포티파이는 "15분 스탠드업" 미팅을 도입했다. 모든 팀 미팅을 15분으로 제한한 이 실험은 회의 효율성을 크게 높였고 팀 생산성도 향상되었다.


디즈니는 새로운 영화 아이디어를 제안할 때 핵심 내용을 간단히 전달하는 "피치 미팅" 문화를 발전시켰다. '겨울왕국'과 '인사이드 아웃' 같은 히트작들도 이런 간결한 피칭에서 시작되었다. 교육심리학자 존 스웰러의 인지 부하 이론이 설명하듯, 제한된 시간은 오히려 더 선명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Y Combinator는 더 과감했다. 창업자들에게 2분 이내의 간결한 피칭을 요구했고, 실제로 Airbnb와 Dropbox 같은 성공적인 기업들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성장했다.



이제 우리는 답해야 한다. 우리의 비즈니스나 일상에서 '18분의 법칙'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이메일은 세 문장으로 줄여보자. 회의는 30분을 넘기지 말자. 하루의 목표는 하나로 정하자. 프레젠테이션은 핵심 메시지 세 가지로 압축하자.


단순함은 부족함이 아니다. 그것은 복잡함을 뚫고 나온 명료함이다. TED의 18분이 그랬듯, 우리도 각자의 분야에서 '마법의 시간'을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시대의 언어


2024년 현재, TED의 18분 룰은 단순한 시간 제약을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매일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이 18분의 마법을 경험하고 있다. 간결하고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의 힘은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새로운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스포티파이의 효율적인 스탠드업 미팅 문화는 많은 기업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Y Combinator의 간결한 피칭 방식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크리스 앤더슨이 떠올린 18분이라는 단순한 규칙은, 어쩌면 정보 과잉 시대가 절실히 필요로 했던 새로운 언어였는지 모른다. 복잡한 세상에서 명료함을 찾는 방법, 그것이 바로 18분의 마법이다.


ⓒTED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당신의 이야기는 어떻게 18분 안에 담을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당신만의 새로운 혁신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