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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Dec 13. 2024

전염되는 호기심: 절반만 보여주고 두 배로 성장한 기업

호기심 설계의 과학: 공유하고 싶어지는 순간의 비밀

2023년 봄, 샌프란시스코 디스코드 본사. CEO 제이슨 시트론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받았다.


"월간 활성 사용자 1.5억 명까지 성장한 비결이 뭔가요? 다른 소셜 플랫폼들과 달리 대규모 마케팅을 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요."


시트론은 2015년 디스코드 출시 초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Discord


"우리의 첫 번째 큰 전환점은 Twitch 스트리머들의 커뮤니티에서 시작됐어요. 한 인기 스트리머가 자신의 방송 중에 디스코드의 '고품질 음성채팅' 기능을 우연히 발견했죠. 당시 게이머들은 불안정한 음성채팅으로 고통받고 있었는데, 이 스트리머가 라이브로 음질의 차이를 보여준 겁니다."


실제로 이 방송을 본 다른 스트리머들이 즉시 자신의 커뮤니티에 디스코드 서버를 만들기 시작했다. 2016년 1분기에만 디스코드의 사용자 수는 3백만 명에서 1천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우리는 이때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시트론이 계속해서 설명했다. 


"마케팅이 아니라 제품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는 의도적으로 새로운 기능들을 조용히 출시했어요. 사용자들이 이를 발견하고 공유하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게임처럼 만든 거죠."


이 전략은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디스코드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는 전년 대비 2배 증가한 1억 명을 돌파했다. 2023년에는 1.5억 명을 넘어섰고, 기업 가치는 150억 달러에 달했다.


"우리 플랫폼의 진정한 마케터는 바로 사용자들입니다." 시트론은 이렇게 강조했다. 


"그들이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고 공유하는 순간, 그것이 가장 강력한 마케팅이 되죠."


디스코드의 성공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심리인 '호기심'과 '공유 욕구'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이러한 접근은 이후 수많은 스타트업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디스코드의 '호기심 사이클' 전략


서버 부스트: 커뮤니티의 성장을 게임처럼 만들다

2019년, 디스코드는 '서버 부스트'라는 혁신적인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는 마치 게임에서 레벨업을 하듯 커뮤니티를 성장시키는 방식이다. 커뮤니티 멤버들이 서버에 '부스트'를 지원하면, 마치 퍼즐을 맞추듯 새로운 기능들이 하나씩 열린다.


예를 들어, 레벨 1에 도달하면(2개의 부스트) HD 화질의 화면 공유가 가능해진다. 이는 게임 스트리밍을 즐기는 사용자들에게 특히 매력적인 기능이다. 더 많은 부스트가 모이면 레벨 2(7개의 부스트)에서는 서버만의 특별한 배너를 설정할 수 있고, 파일 공유 용량도 커진다.


서버 부스트, ⓒDiscord


가장 높은 단계인 레벨 3(14개의 부스트)에 도달하면 100MB까지의 파일 업로드가 가능해지고, 서버 초대 배경을 커스텀할 수 있다. 이는 마치 게임의 최종 보스를 클리어하고 특별한 보상을 받는 것과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실험적 기능: 호기심을 자극하는 단계적 공개

디스코드는 새로운 기능을 출시할 때 독특한 방식을 택한다. 모든 서버에 한꺼번에 새 기능을 공개하는 대신, 일부 서버에서 먼저 테스트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이는 마치 비밀 클럽처럼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효과가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액티비티' 기능이다. 유튜브 영상을 함께 보거나 간단한 미니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이 기능은, 처음에는 일부 서버에서만 이용할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은 사용자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입소문을 만들어낸다. 마치 "우리 서버에서 새로운 걸 발견했어!"라는 식의 대화가 커뮤니티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사용자 참여형 개발: 함께 만들어가는 플랫폼

디스코드는 사용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한다. 'Discord Feedback'이라는 공식 채널을 통해 누구나 새로운 기능을 제안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제품 개발 과정에 사용자들을 초대하는 것과 같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피드백 시스템이 단순한 의견 수렴을 넘어 하나의 커뮤니티 활동이 된다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서로의 제안에 투표하고 토론하면서, 자연스럽게 플랫폼에 더 깊이 관여하게 된다.


이러한 전략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발견의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능을 직접 찾아내고, 이를 친구들과 공유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경험을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디스코드가 만들어낸 호기심 기반 성장의 핵심이다.



정보 격차가 만드는 호기심의 힘


정보 격차 이론의 발견

1994년 카네기멜론 대학의 조지 로웬스타인 교수는 인간의 호기심을 설명하는 획기적인 이론을 발표했다. '정보 격차 이론(Information Gap Theory)'이라 명명된 이 연구는 호기심의 작동 방식을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로웬스타인 교수, ⓒCarnegie Mellon University's Dietrich College


로웬스타인 교수는 "호기심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한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중요한 발견은 이 간극이 적당할 때 호기심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점이었다. 간극이 너무 크면 포기하게 되고, 너무 작으면 흥미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실험을 통한 검증

로웬스타인 교수팀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일련의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에게 퀴즈 문제를 제시할 때, 문제의 일부 정보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가렸다. 결과는 주목할 만했다. 참가자들은 문제의 약 40-60%의 정보가 제공되었을 때 가장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이는 우리 뇌가 '적당한' 수준의 불확실성을 만났을 때 가장 활발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퍼즐을 맞출 때 남은 조각이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을 때 가장 몰입하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2016년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 발표된 연구는 로웬스타인의 이론을 뇌과학적으로 뒷받침했다. UC버클리의 연구진은 fMRI를 통해 사람들이 적당한 수준의 정보 격차를 마주했을 때, 뇌의 보상 중추가 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 연구는 특히 정보 격차가 적절할 때 다음과 같은 현상이 발생함을 보여줬다:  

 

해마(Hippocampus)의 활성화: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려는 경향 증가

전전두엽의 활성화: 문제 해결을 위한 집중도 상승

도파민 분비: 정보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보상으로 인식


디지털 시대의 호기심 사이클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현대 디지털 플랫폼의 설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성공적인 디지털 제품들은 공통적으로 이 '적절한 정보 격차'의 원리를 활용하고 있다.


최근의 연구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이 원리가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2020년 저널 오브 마케팅 리서치(Journal of Marketing Research)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상에서 부분적으로 공개된 정보는 완전히 공개된 정보보다 평균 60% 더 높은 사용자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과학적 근거들은 왜 현대의 디지털 플랫폼들이 '점진적 공개' 전략을 선호하는지 설명해 준다. 적절한 수준의 정보 격차는 사용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그 호기심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욕구도 함께 자극하기 때문이다.



호기심 기반 성장의 새로운 물결: SaaS 기업들의 혁신


피그마(Figma)의 공유 기반 커뮤니티 전략

피그마는 2022년 말부터 'Community Hub'를 본격적으로 확장했다. 이는 단순한 파일 공유 플랫폼을 넘어, 디자이너들의 창작 과정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든 혁신적인 시도였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라이브 컴포넌트(Live Components)'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작업 과정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면, 다른 사용자들이 이를 자신의 프로젝트에 바로 적용해 볼 수 있다. 마치 요리 유튜버의 레시피를 보면서 직접 따라 하는 것처럼, 디자인 과정을 배우고 실험할 수 있는 것이다.


Dev Mode, ⓒ피그마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피그마의 'Dev Mode' 베타 프로그램이다.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실시간으로 협업할 수 있는 이 기능은, 처음에는 일부 팀에만 제공되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다른 팀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베타 프로그램 참여 신청이 급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노션의 템플릿 생태계 혁신

노션은 2023년 'Template Gallery'를 전면 개편했다. 이전의 일방적인 템플릿 제공 방식에서 벗어나, 사용자들이 직접 템플릿을 만들고 공유하는 쌍방향 플랫폼으로 진화한 것이다.


특히 독특한 점은 '템플릿 진화' 시스템이다. 한 사용자가 공유한 템플릿을 다른 사용자가 수정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마치 오픈소스 프로젝트처럼, 커뮤니티의 집단 지성으로 템플릿이 점점 더 좋아지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노션은 우수 템플릿 제작자들에게 '노션 앰배서더' 자격을 부여한다. 이들에게는 베타 기능 우선 접근권과 같은 특별한 혜택이 주어진다. 이는 양질의 템플릿 제작을 장려하는 동시에, 다른 사용자들의 호기심도 자극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성공 전략의 공통점

두 기업의 사례에서 발견되는 핵심 전략은 세 가지다:


점진적 공개

새로운 기능을 한 번에 모두 공개하지 않음

커뮤니티 참여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접근 권한 부여


커뮤니티 보상

공유와 기여에 대한 명확한 보상 체계

특별한 권한이나 얼리 액세스 기회 제공


발견의 즐거움

사용자들이 새로운 기능과 가능성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유도

발견한 내용을 공유하고 싶어지는 동기 부여


이러한 전략들은 단순한 제품 홍보를 넘어,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유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형태의 성장 모델을 보여준다. 이는 전통적인 마케팅 방식보다 더 지속 가능하고 효과적인 성장을 가능케 한다.



AI가 여는 호기심 마케팅의 새로운 지평


넷플릭스를 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당신을 위한 추천' 섹션. 틱톡의 끝없는 'For You' 피드. 스포티파이가 매주 제공하는 '디스커버 위클리' 플레이리스트. 이러한 개인화된 추천들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진화 방향은 주목할 만하다. 단순한 추천을 넘어 '발견의 즐거움'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티파이의 사례는 특히 흥미롭다. 아침에 통근할 때, 운동할 때, 저녁에 독서할 때 각각 다른 음악을 추천한다. 단순히 좋아할 만한 음악을 추천하는 것을 넘어, 상황에 맞는 새로운 발견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마치 개인 DJ가 자신의 하루를 함께하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유튜브 Shorts나 인스타그램의 '발견하기' 페이지도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인기 있는 콘텐츠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우연히' 관심 있는 콘텐츠를 발견하는 것 같은 경험을 설계한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새로운 콘텐츠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AI 기술이 있다. AI는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가장 적절한 순간에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콘텐츠를 제시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어떻게 활용되느냐다. 가장 성공적인 플랫폼들은 AI를 '추천'이 아닌 '발견'의 도구로 활용한다. 사용자가 스스로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 발견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지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디지털 시대의 성공적인 제품은 단순히 뛰어난 기능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의 호기심과 공유 욕구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제품 경험 자체가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결국 오늘날의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 제품은 사용자들에게 어떤 새로운 발견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경험은 얼마나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바로 AI 시대의 호기심 마케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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