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바람을 거스르고 이륙한다, 바람과 함께가 아니다.
지난해부터 스타트업들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는 분들을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Q&A 형식의 콘텐츠로 제작해 왔다. 사실 해당 콘텐츠를 기획한 것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이 소수의 창업자 혹은 대표이사에게만 쏠려있다는 사실이 언젠가부터 조금씩 불편했다.
1969년에 창립된 국내 최고의 기업 삼성전자조차도 지난 50여 년의 세월 동안 이룬 업적을 보면 오너 한 명이 홀로 달성한 것은 아니다.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조력자들이 있었고 그들을 지탱하고 잡아준 구성원들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보일 듯 말 듯한 단 한 명의 의사결정권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걸까?
나는 공감하기 어려운 창업가나 대표이사보다는 우리 주위에 실제로 존재하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그들 역시 창업가나 대표이사만큼 노력하고 일분일초를 아끼며 삶의 외줄 위에 위태롭게 서서 발끝에서 전해오는 인생의 고통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간다.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그들이 우리가 오늘 당장 따라 해 보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가장 근접하고 현실적인 사례이지 않을까?
이런 고민들이 겹겹이 쌓여 창업가들과 대표이사를 제외하고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열심히 발로 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답을 받아 콘텐츠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5개의 인터뷰 콘텐츠가 완성되자 시장을 잘 아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어졌다. 앞으로 인터뷰 예정인 분들의 명단과 함께 앞서 제작된 인터뷰 콘텐츠를 출판사에 보냈다. 일주일을 기다려 그들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내부에서 논의한 결과 코로나 이후 스타트업 시장의 책이 많이 죽은 상태라는 점, 국내 독자들은 엄청 성공한 회사에 대한 로망이나 관심이 크다는 점에서 시장이 적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다소 실망스러운 답변이었다. 정말 꼼꼼하게 검토를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코로나 이후 스타트업 시장의 책이 죽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사실 나는 단순히 스타트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만 담지 않았다.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에서 유리천장을 뚫고 10년간 근무했던 재미교포의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넷플릭스 해외 채용담당자와 헬스케어 기업 해외영업에서 헤드헌터로 커리어를 전환한 젊은 임원의 이야기도 담을 예정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조금 더 양보해서 시리즈의 주제를 스타트업으로 한정해보자. 중소벤처기업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투자조합 결성액이 9조 2171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17일 밝혔다. 벤처투자조합 결성액이 9조 원을 넘어선 건 처음이다. 심지어 민간출자는 2조 원 가까이 늘어나 전체 벤처펀드 결성증가액(2.3조 원) 대부분을 민간자금이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출자의 증가를 단순히 스타트업계에 대한 시장의 과열된 반응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기업 정보 플랫폼 잡플래닛은 최근 ‘2022 주목할 기업’ 20개사를 선정해 발표했다. 해당 기업은 현재 근무 중이거나, 과거 근무했던 직원들이 잡플래닛에 올린 평점에 근거해 선정되었다. 기업별 평가는 총만족도 점수에 복지·급여, 승진 기회·가능성, 워라밸(업무와 삶의 균형), 사내문화, 경영진 평가 등 5개 항목을 더해 10점 만점으로 표시했다.
평가 결과 전체 종합 부문 1위는 루닛(9.12점)이었고, 2위 살다(9.07점), 3위가 한국중부발전(9점)이었다. 수십만 개의 기업들 중 유수의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들을 제치고 1위와 2위 모두 IT 스타트업이 차지했다. 흥미롭게도 내 첫 인터뷰 대상자가 12년을 네이버에서 근무하다가 루닛에 합류한 여성 임원의 이야기이다.
우리 주위에서 찾을 수 있는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출판사를 설득시킬 수 있을 정도로 나의 기회력이 충분히 매력적이지 못했다. 출판사가 보기에는 미국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가던트헬스(Guardant Health)'로부터 300억 원 유치하고 720억 원 규모의 상장 전 투자를 유치한 루닛과 소프트뱅크그룹의 비전펀드로부터 2,0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기업가지 1조 원에 육박한 뤼이드가 '엄청 성공한' 기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공한 기업은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스타트업계를 포함한 다양한 업계에서 활동하는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사회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계속해서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그리고 오늘의 거절을 내일을 시작하는 새로운 동력으로 삼아 앞으로 더욱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모든 상황이 당신에게 불리한 것처럼 보일 때 기억하라. 비행기는 바람을 거스르고 이륙한다, 바람과 함께가 아니다. - 헨리 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