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소질은 없지만 집요함과 꾸준함은 있습니다.
2018년 특별한 기대 없이 호기롭게 브런치를 시작한 지 이제 4년 차가 되었다. 스타트업 신사업기획부에서 근무할 당시 국내외 사례를 조사하고 정리하며 어렵게 뽑아낸 최종 산출물들이 너무 쉽게 컴퓨터 C드라이브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렇게 잊혔던 결과물들이 PC 내 저장공간이 부족해지면 가장 먼저 정리되어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을 볼 때면 허탈감으로 괴롭곤 했다. 그래서 이럴 바엔 기록이라도 남기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자고 했던 것이 브런치의 시작이었다.
초반에 쓴 글들을 보면 당시의 업무로 인한 피로감과 노곤함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온전하게 전해진다. 발행일이 대부분 주말인 것 봐도 탈고는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쫓기듯 내 머릿속 복잡하게 엉키고 설킨 생각의 뭉치들을 글로써 배출했다. 그렇게 브런치는 나에게 해우소(解憂所)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해우소는 사찰에 딸린 화장실을 의미하지만 근심을 푸는 곳이자 번뇌가 사라지는 곳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렇게 4년을 쓰다 보니 그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기고 요청을 받았다. 그중 모비인사이드와는 가장 오랜 기간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외 퍼블리와 아웃스탠딩에서도 기고 요청을 받아 실제로 콘텐츠 기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지면 인쇄를 하지 않는 디지털 매거진이다. 덕분에 발행까지 무척 빠른 호흡으로 진행되고 발행된 이후에는 링크 공유를 통해 콘텐츠를 빠르게 전파할 수 있다.
지난해 말 창업진흥원 외부기고 목적으로 한 스타트업의 창업가를 취재하게 되었다. 그의 우여곡절 창업스토리를 듣던 도중 우연히 동아비즈니스리뷰(DBR)에 자신의 스타트업 기사가 실리는 게 그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를 놀라게 해 줄 심산으로 DBR에 기고할 수 있는 경로를 백방으로 찾았다. 그렇게 여기저기 노크를 한 덕분일까 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의 소개로 DBR의 소속 기자에게 초고를 보낼 수 있었다. 며칠 후 담당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해당 스타트업이 무척 건실하고 창업가가 가진 창업가적 기질에 대해 피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걸까. DBR에서도 초고에 대한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물론 수정이 필요한 부분과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아주 친절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요청을 하였다.
창업가가 왜 이 사업을 꼭 해야 했던 걸까요?
경쟁사 대비 차별화 전략 및 시장에서의 포지셔닝은 어떻게 되나요?
온라인 대세를 거슬러 오프라인 매장을 꼭 운영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요?
해당 카테고리에서 가장 각광받는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요?
내 입장에서는 추가로 공수가 들어가는 부분이지만 DBR에 기고하게 되어 해당 스타트업의 창업가가 좋아할 상상을 해보니 그 정도 수고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콘텐츠를 보완하여 수정본을 보내자 곧 추가 요청사항이 왔다. 그간 다양한 매체와 협업을 하면서 편집 과정을 한 번에 통과되기 어렵다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전체적인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아닌 이상 충분히 해볼 만했다. 그런데 정작 DBR이 요청한 것은 단순한 내용 수정이 아니었다. 이번의 요청사항은 나의 고유한 경험과 인사이트를 빌어 시사점을 담아달라는 요청이었다.
그간 나의 시각은 최소화하고 창업가 혹은 인터뷰 대상자의 관점을 최대한 담으려고 했는데 막상 온전히 나의 시각을 요청을 받으니 어색했다. 브런치 입문기 시절 열심히 내 나름의 분석과 통찰을 글로 풀었던 블랭크코퍼레이션과 더핑크퐁컴퍼니 케이스를 생각하며 브랜드 매니저 경험에 빗대어 글을 써 내려갔다. 혹여라도 지나치게 나의 시선이 담겨 자칫 전체적인 균형이 무너질까 봐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DBR의 회신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튿날 기다리던 회신이 왔다.
"작가님 너무 충실하게 수정사항 반영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편집장님이 작가님께서 직접 취재까지 해주시고 좋은 기업 케이스 발굴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앞으로 기회 닿으면 또 글을 의뢰하자고 하셔서 조만간 다시 연락드리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며칠 뒤 DBR로부터 내가 쓴 콘텐츠가 실린 인쇄본을 받아볼 수 있었다. 몇 년 전 내가 쓴 콘텐츠들은 깊이도 없고 전문성도 없다고 무시당했던 때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하얀 스크린에 글자들을 채우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복수의 매체에 글을 싣게 되었다. 이제 외국계 기업 과장도 아닌 국내 기업 팀장도 아닌 '작가'라는 타이틀이 내 이름 옆에 쓰이는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도록 앞으로 꾸준하게 콘텐츠를 써 내려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