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질 듯 맑은 저녁 하늘이었다. 내일의 촬영 준비를 마치고 돌아오는 도로는 퇴근 시간이 겹쳐서 제법 붐볐다. 강남대로를 지나 한남대교를 건널 무렵, 해는 서쪽하늘 끄트머리에 어렴풋이 걸려있었다. 오늘과 내일의 경계선이 붉게 빛났다. 기온은 어제와 정 반대인 영하권으로 뚝 떨어졌고, 공기는 다시 맑고 차가워졌다. 호흡을 하면 하얀 입김이 번졌고, 지면을 구르는 네 바퀴의 소리는 고요했다.
먼 곳의 풍경까지 선명했다. 남산 위의 전파탑은 어제보다 날카로웠고, 낮 하늘에 걸려있던 창백한 달은 빛나기 시작했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 둘 켜졌다. 지난밤 내렸던 눈이 그늘 아래 반짝였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는 건 슬픈 일이었다. 정적만이 가득한 세계의 차원 너머에 혼자만이 살아 있는 기분이었다. 벗어날 수 없는 공간에 고립되어, 먼 곳을 향해 소리치는 말도, 손짓도, 표정도, 어느 곳에도 닿을 수 없었다.
화력 발전소의 굴뚝에선 끊임없이 거대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구름보다도, 옆에 흐르는 강물보다도 큰,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같았다. 나는 이 풍경을 바라보는 일을 좋아했다. 불가항력적인 순간을 바로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압도적인 광경은 어딘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이 거대한 흐름은 마치 죽음처럼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마지막과 닮아 있었다.
슬퍼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더욱 큰 슬픔에 모든 단어들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