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겨울

by 노엘

사소한 우연들과 고단함이 겹친 시간 뒤엔 무거운 침묵 같은 아침이 찾아왔다. 지독하게 선명한 악몽이 지난 눈부신 오전이었다. 얼굴 없는 누군가를, 혹은 기억하지 못하는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 같고, 어떠한 두려움에 숨 쉴 틈 없이 쫓기다, 물러설 수 없는 절망에 다다를 무렵 눈이 떠졌다. 영 뒷맛이 안 좋은 꿈이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거실에 나와 며칠간 어지럽혀 있던 것들을 치워 나가기 시작했다. 트리를 정리했고, 설거지를 하며, 세탁물을 돌렸다. 쓰레기들을 치우고, 청소기를 돌리며 환기를 시켰다. 창문을 연 채로 늦은 아침을 먹고, 완료된 세탁물들은 건조대에 널었다. 무언가 하기엔 아직 꿈을 꾸는 것 같은 몽롱함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밤 사이의 꿈을 되짚어 보다 다시 잠이 들었다.


전화가 울려 생각했던 것만큼 잠들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얼마간 머리는 맑아져 있었다. 무엇도 하지 않은 채 해가 저물어 가는 창밖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다. 이런저런 것들을 잠깐씩 틀어 놓았지만 집중하지 않아도 될만한 것들 뿐이었다. 러닝타임이 표기된 숫자는 왠지 다른 세계의 시간 같아서 알면서도 모르는 척 인스턴트 같은 시간들을 가볍게 쓰고 버렸다.


나는 홀로 있었다. 세상 밖에 적당히 해롭지 않은 가면을 쓰고, 퍼레이드를 하며 손을 흔들었다. 사람들은 즐거웠고,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가면을 벗고, 오랜 시간 울었다.


겨울은 여전히 처음 잡았던 차가운 네 손끝과 닮아 있었다. 가지지 못한 아름다움은 그 어떤 것보다 사랑스럽고 슬픈 존재였다.


찬 바람이 불었고, 여전히 애달픈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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