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카

by 노엘

13시부터 한 시간 정도 수영을 하고 데이터 메일을 보내려고 연희동의 스튜디오에 나왔다.


공식 일정은 아무것도 없어서 따뜻한 오후의 햇살과 온화한 공기만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볍게 메일을 보내고, 왠지 아쉬운 마음에 촬영 스튜디오 내에 있는 하늘색 3인 소파에 앉았다.


여기에 앉아서 보면 거의 모든 공간이 보인다. 남쪽 창을 향한 해를 등지고, 길게 뻗은 겨울의 빛줄기를 바라봤다. 그림자가 포개져 만드는 여백은 아주 오래 전과 같은 모양이라, 한참 동안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그림자는 동쪽을 향해 길어져 있다.


지난밤엔 영화를 봤다.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마지막 상영일이라는 소문에 시간을 찾아보니 마침 신촌에서 20시 20분에 상영하는 시간이 있었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언젠가 보려고 생각만 했지 크게 끌리진 않았었다. 토니 타키타니를 제외한 영화화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은 모두 실망스러웠고, 그것도 비슷한 결의 영화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컸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이끌려, 홀리듯 예매를 하고 해가 저문 밤이 되어 상영관을 찾았다.


수십대는 수용 가능해 보이는 영화관의 옥상 주차장은 나를 포함해 3대 정도의 차량 밖에는 없었다. 바람에선 비 냄새가 났고, 제법 쌀쌀했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는 원작에서 큰 틀만을 가지고 왔고, 대부분 각색돼 있었다. 그러다 보니 팬이자 개인적인 의견 내에선 충돌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는 있었지만, 상영이 끝난 뒤에 그대로 집에 돌아올 수 없을 만큼 큰 여운이 남았다.


신촌에서 금화터널을 지나 광화문 방향으로 목적지도 없이 달렸다. 인사동을 지나 창경궁 앞을 통과해 혜화동에서 종로 방향으로 다시 방향을 바꿨다. 종각에 다다를 즈음 남산터널 쪽으로 달렸고, 강변북로를 타고 합정을 통해 집에 돌아왔다.


한 정거장이면 도착할 거리를 빙글빙글 돌아왔다. 자정 무렵의 도로는 한산했고, 창문을 열어도 그다지 춥지 않았다. 어딘가 애달픈 냄새가 가득한 거리는 고요했다.


그렇게 여운과 함께 밤길을 달려 집에 도착해서는 정신을 잃듯 잠이 들었다.


글을 쓰는 동안에 소파에 누웠다. 수영장에 간다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어서 슬슬 발이 조금씩 시려온다. 그 사이 그림자는 한 뼘 정도 길어졌고, 조금 더 따뜻한 색으로 빛나고 있다.


문득 연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내가 살지 못하는 또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은 분명 멋진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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