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사진 생활

by 노엘

사실 브런치 계정을 처음 개설할 때만 해도, 사진에 관한 출발점이나 사진가에 관한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쓰다 보니 습관처럼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 일이 많아졌고, 그게 한편으로 마음에 걸렸는지 언젠가는 이라고 늘 미뤄오다가 새벽에 잠이 깬 오늘은 (5AM)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좀 오랜 이야기지만 나는 사진에 관한 관심이나 바람이나 동경 같은 것 없이 시작을 했고, 우연한 계기들이 겹쳐서 결국은 사진가가 되었다. (몇 번인가 이야기해서 자세한 건 옛날 포스트에)


그리고 이 모든 선택과, 우연과 행운은 아마도 생에 마지막 눈을 감기 전에 돌아보아도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잭팟 같은 순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진가로서의 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 직업이 아니었더라면, 만일 사진과 만나지 못했었더라면, 하고 가끔 생각을 하는데 소름이 끼치도록 두렵고 막막한 기분에 휩싸인다. 남들보다 특별할 것도 없고 재주도 없고 그렇다고 사교성이 좋은 것도 아니고,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계속하는 일이었다.


사진을 통해서 가장 순수한 칭찬을 듣는 일을 경험했고, 그 일을 20년째 반복해오고 있다. 햇수로 말하면 벌써? 하고 놀랍지만, 시간은 그런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분야가 그렇지만 한 가지 일을 계속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바람대로 좋은 결과를 불러올 때도 있지만, 정말 잘하고 싶었고,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일이 순조롭게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스스로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에서 생기는 트러블들이 있기도 하고, 성인이 되고 혼자 살면서부터는 생활에 대한 책임 같은 것도 함께 짊어지게 되니, 어느 한 가지만 기울더라도 사실 지속해오기 쉽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상당히 간단한데, 사진 말고는 딱히 더 잘한다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즐거운 일 또한 없었다. 전공을 했던 건축 설계는 너무 재미있었지만, 인턴 경험을 해보고 나서는 한 달 만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생을 여기에 쓸 수 없다는 강력한 신호가 왔고 미련 없이 그만뒀다.


나는 전공자도 아니었고, 지금처럼 SNS를 통해 스스로를 홍보할 수 있는 채널도 없을 때였다. 아날로그 필름의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화가 본격화되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작업들이 디지털로 이루어질 무렵이었다. 이 일은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나에게는 무엇보다 큰 행운이었다. 필름은 매력적이지만, 디지털에 비해서는 수십 배는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병역과 대학을 마친 20대 중반을 넘긴 나에겐 시간도 비용도 아슬아슬했다. 그래서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사진은 돈 없으면 시작도 할 수 없다는 말이 보편화돼 있었다.


어떻게 어디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던 나는 처음에 사진학과에 편입을 시도했다. 한 명인가 두 명의 자리밖에 없었는데 백 명도 넘어 보이는 학생들이 모여있었고, 을씨년스러운 늦겨울의 캠퍼스는 검은 옷차림의 학생들로 음울하기만 했다. 그 와중에 비싼 현상소의 봉투나, 고급 포트폴리오 케이스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거기에서부터 주눅이 들었다. 준비해 갔던 포트폴리오는 기억도 나지 않는 짧은 질문을 받았고, 고작 1분도 채 되지 않아 나의 차례는 끝이 났다. 겨우 이 정도 평가를 받으려고 여기까지 와있다는 것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서글펐다. 결과는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떨어졌다.


포기하지 않았고, 사진을 하기 위해 다른 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국내에 어떤 유명 사진작가가 있는지부터 전부 찾아봤고, 모든 사진들과 신문 기사, 글들을 하나하나 체크했다. 그중에 두 명 정도가 눈에 들어왔고, 건방지게도 이름에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이 사람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꼭 배우고 싶었던 사진작가의 어시스턴트가 되어 독립하였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어시스턴트를 시작하면서 느꼈던 첫 번째는, '편입에 시험에 떨어져서 정말 다행이다.'였다. 필드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절대 학교 내에선 알 수 없었다. 짐작도 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이는 현장이 아니고서는 배울 수도 없고, 커리어의 시작점을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아마 전공자가 되었더라면 불필요한 우쭐함만이 늘어서 변변찮은 사람이 되고 말았을 수도 있다.


자세히 다루진 않았지만 사실 무엇보다 어시스턴트의 과정과 마무리가 엄청나게 큰 분량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 복잡하고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인 내용이라 우선은 건너뛴다.


여담이지만 취미로서의 사진과 일로서의 사진은 또 확연히 다르다. 취미도 일도 사진이지만, 긴장감과 상황을 대하는 나의 자세 자체가 무척이나 다를 수밖에 없다. 프로 레이싱 드라이버가 서킷에서 전용 머신을 운전하는 것과, 일과를 마치고 마트에 식료품을 사러 편안한 세단을 몰고 가는 것과 같은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비교하기 편할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역시 더 좋은 건 프로로서 일을 하는 나의 모습이 좋다. 실시간으로 확인되는 모니터에 반응해주는 사람들이 좋고, 그 순간을 만들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도 크고 작은 칭찬 하나에 하늘을 날듯 기뻐져서, 그것만으로도 살아있어서 행복하다고 느낀다. 텐션을 올리기 위해 때때로 크게 소리치기도 하고, 신나는 음악을 틀고, 촬영 현장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즐겁다.


상상하던 조명을 하나 둘 세팅하고, 테스트를 보고, 희미한 긴장감이 감도는 무대에 모델이 입장한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에 다시 한번 테스트를 본다. 말이 테스트지 사실상 이 단계에서 오늘 촬영의 성공 유무가 결정 난다. 주변을 한 번 둘러서 반응을 살피고 수정의 여부를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간다. 음악의 볼륨을 높이고, 셔터를 끊는다.


일을 마치고 서로 감사해하며 인사를 나누는 그 순간도 좋다. 모두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일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날아가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짜릿한 일이다. 무언가 만들어 낸다는 것은 이런 일이다.


우연이든 행운이든 이런 일들을 하고, 사진가가 된 나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때때로 힘들기도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사람과 아직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나는 여전히 이 직업이 너무 좋다. 가끔 언제까지 사진이 하고 싶냐고 물어오는데,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카메라를 들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진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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