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병원에 온 것 치고는 포근한 햇살이 내렸다. 집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잔뜩 흐린 하늘에 며칠 전에 했던 세차가 걱정됐었는데, 기우였다. 9개월 일 수도 있고 12개월 전일 수도 있었던 정기 검진 날 원무과에서 일하는 친구는 내 이름만 보고 긴가민가 하다 한참 후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실제로 만난 건 훨씬 전의 일이라 언제인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다음에 가면 그 자리에 있냐는 말에 로테이션이 있기 때문에 아마 타이밍이 맞기 어려울 거라 했다. 적당한 반가움에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메시지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병원에 올 때면 친구가 떠올랐다. 지금 여기 어딘가에 있겠지? 하고.
건강이 호전되어 다행히도 점점 검진일의 간격이 멀어져서 3개월마다 있었던 진료가 6개월이 되었고, 오늘이 그 첫날이었다. 부서도 바뀌어 가정의학과로 배정이 되었다. 이른 아침의 채혈실은 항상 시장통처럼 북적거려서 지금에 와서도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지나가 언제나처럼 키오스크에서 접수를 하고 결제를 하려 했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에러가 났다. 어쩔 수 없이 원무과 접수를 했고, 그 자리에서 친구를 만났다.
"심규태 님?"
"네?"
"나예요."
잠이 덜 깬 얼굴을 가까스로 마스크로 가렸지만 심통이 가득한 표정이었던 나는 그제야 친구를 알아보고 웃었다.
"차례가 되었는데도 한참을 안 오길래, 찾았잖아."
"원무과에서 안 하던 걸 하라고 해서 뭔가 오류가 있나 싶어서 채혈실을 다녀왔지 뭐야, 미안 미안."
실제로 나는 평소와 다른 접수 순서에 혼동이 와서 등록을 해두고는 잠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친구는 내 이름을 띄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의 대학 병원은 무척이나 혼잡해서 보통 바로 뒷사람을 호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키오스크로 원래 다 했던 거 같은데, 오늘따라 안 되더라고. 이상해."
"원래 오류 날 때가 많아."
"그런 일도 있구나. 처음이라 몰랐어. 그나저나 여기 너무 비싸."
응? 하는 표정으로 서로 웃었다. 업무시간이라 더는 긴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지만, 반가운 손짓을 하며 헤어졌다.
한 시간 반 정도 남은 대기 시간에 근처 카페에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친구에게 반가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름을 보고는 반가워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안 보여서 한참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제 출산, 육아휴직에 들어갈 예정이라 앞으로 2년 정도는 자리를 비운다고 했다. 건강해져서 더는 병원에 다니지 말라는 덕담도 함께 돌아왔다.
흐렸던 구름 사이로 햇살이 번져 나왔다. 창가에는 이른 봄의 빛이 내렸다. 카페에 앉은 사람들 대부분은 놀라울 만큼 노트북을 펼치고 무엇인가에 열심히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노트북을 펼치고 있다. 빛이 닿은 공간 구석구석이 빛났다. 길게 드리워진 나른한 그림자는 아주 오래 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횡단보도에는 서둘러 출근하는 모습들이 끊이지 않았고, 어느새 잠은 완전히 달아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