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있었다. 외투를 입지 않고 걸어도 춥다고 느끼지 않을 만큼 햇살은 포근했다. 오랜만에 생활 반경을 벗어나 외출을 했다. 처음 보는 풍광이 반가웠고, 한적한 거리의 모습은 왠지 소곤소곤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따금 바람이 불어 모든 소리를 삼켰다.
며칠 전 짧은 촬영을 마치고 스튜디오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러 동료, 어시스턴트와 함께 양재천 주변을 걸었다. 스튜디오 식구가 다 같이 저녁을 먹는 건 드문 일이다. 공과 사의 경계가 선명한 나는 일을 마치면 되도록 빠른 귀가를 지향하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고서야 식사 권유하는 일은 없다. 과거의 소속에서 그랬던 문화가 싫었고, 그래서 하지 않을 뿐이다. 이날은 촬영 후에 다른 촬영팀을 기다렸다 정리해야 할 일이 남았었고, 그래서 함께 하게 됐다.
동료 피셜 유명한 라멘집이 있다고 해서 그쪽을 향했다. 닭고기를 베이스로 한 라멘집이었다. 생각해보니 닭으로 만든 라멘을 일본에서도 먹은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런 맛이 날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괜찮았다. 또 가자고 한다면 나는 돈코츠 라멘을 먹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잔뜩 쌓인 커피 쿠폰을 사용해서 다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시 양재천 주변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이럴 때가 아니면 혼자서는 쿠폰을 사용해서 음료를 마시는 일도 없었다. 동료는 더 비싼 걸 얻어먹었어야 한다고 성화였다. 우리의 관계는 대체로 이런 형태다.
스튜디오로 돌아오는 작은 다리를 건너면서 신학기 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이제 막 해가 저문 하늘은 물빛으로 아련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언젠가의 지나왔던 봄에서도 이런 냄새가 났었던 것 같았다. 나는 어느새 나이가 든 사람이 되고 말았지만, 계절이 그 자리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여전히 그걸 감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발걸음이었다. 아마도 함께 걸어준 동료들이 있었던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