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희미한 밤

by 노엘

그때의 나는 매일 밤을 달렸다. 우리가 앞으로 만날 수 있는 날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줄어들어갔고,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네가 있던 곳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가는 것뿐이었다. 심장이 터질듯해도, 온몸이 부서질 듯 지친 고단한 밤일지라도, 일 분 일 초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했다. 여자는 얌전한 고양이 같은 얼굴로 새침하게 왜 힘들게 뛰어오냐면서 나를 놀렸다. 가늘고 긴 손가락 끝엔 당시에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일본어로 된 문고본이 들려있었다. 아마도 1973년의 핀볼이었을 것이다. 책을 펼쳐 손으로 가리키며 쥐가 왜 쥐였는지 물어보거나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을 펼쳐 가리키고는 많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녀의 공식적인 한국 일정은 모두 마무리가 되어있었다. 더는 갈 곳도 특별한 볼 일도 없어서 하루 종일 내가 끝나는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 몇 번 낮잠을 자거나 다시 같은 책을 읽거나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작은 스탠트만 하나 놓여있는 방 안에서 고양이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의 나에겐 누군가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아직은 제대로 된 사진작가도 아니었고, 사진작가가 될 수 있을지 조차 불안한 시기였다. 수입은 적어 가난했고, 서울에 자리를 잡기 시작해 작은 원룸에서 겨우겨우 생활을 이어나가기에도 벅찼다. 수많은 현실의 칼날들이 삶을 파고들었고, 나는 결국 그녀를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그때처럼 큰 슬픔과 분노를 느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일 년 정도를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지냈다. 혼자 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닥치는 대로 사람들과 여자를 만났고, 그런 생활은 다시금 깊은 공허함을 불러왔다. 악순환이었다.


어느샌가 10년 전의 일이 됐다.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이 일들이 생각이 날 줄도 몰랐다. 스스로에게도 놀라운 일이다. 그 사이 몇 번인가 다른 사람을 만났고, 멀어지거나 가까워진 사람도 있다. 몇 어른들은 돌아가셨고, 나도 세상과 똑같은 분량의 나이를 먹었다. 다행인 것이 있다면 더는 그때처럼 슬픈 일은 없었다. 물론 슬픈 일이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내가 가진 쓸 수 있는 슬픔의 총량 대부분을 그때 모두 소진해 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녀가 없는 곳에서도 나는 줄곧 달려왔다. 지금도 달리고 있다. 네가 사는 도시에, 내가 만든 사진들이 곳곳에 걸리게 된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꿈같은 이야기를 그때는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4월이면 여전히 그 여자아이가 생각난다. 이제는 말투와 목소리조차 기억나지 않고, 사진을 꺼내어 보지 않고는 정확한 얼굴을 떠올릴 수도 없다. 여전히 꿈만이 그 자리에 남아서, 나는 내일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많은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