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1/31

by 노엘

오늘이 어떤 요일인지도 모르고 매일을 보내다 보면 문득 찾아오는 휴일이 있다. 촬영과 후반의 반복이 이어지고, 당장 눈앞에 둔 일들에 집중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을 살고 있는지도 희미해지는 일이 흔하게 된다. 그러다 사고처럼 하루 이틀 휴일이 찾아오고 마는데,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몰라서 대체로 무언가의 준비도 약속도 잡지 못한 채로 아침에 눈을 뜨면 '아- 오늘은 할 일이 없는 날이구나.'라고 그제야 깨닫게 된다. 그간 분주하게 지냈으니 하루 정도 집에서 쉬어야지 싶은 마음도 있지만, 곧이어 이어지는 워킹데이들을 생각하면 집에서만 있는 건 너무 아깝다는 기분이 한쪽으로 기운다. 매번 이런 반복이다. 뒤늦게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SNS를 기웃거려도 딱히 답은 나오지 않는다.


거실로 나와 창문을 여니 시원하고 맑은 바람이 불었다. 햇살은 반짝반짝 눈부셨다. 무기력하게도 공복이 찾아왔고, 간단히 밥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난 것 같았지만 여전히 오후 두 시였다. 집에 가져다 둔 꽃에서, 바람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그간 켜보지도 못한 플스를 켜고 게임이나 해볼까 싶어서 잠깐 패드를 만지작 거리다, 결국은 특전으로 받은 사운드 트랙을 틀어 놓고 테이블에 앉았다. 무엇에도 집중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더 컸다.


이따금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제법 부는 날이다. 교복을 입고 들었던 음악을 줄곧 듣고 있어서 그런지 그리운 기분이 가득해졌다.


그런 멍청한 짓은 그만해야지, 지난 일들 따위 생각 말고 현재를 살아야지. 몇 번이고 다짐해도 자꾸만 멍청한 짓을 하고 지난 일들에 부끄러워하고 그리워하고 돌아본다. 그 과정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다 주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를 형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감정들이라고 생각한다. 멍청함과 부끄러움과 그리움이라니 그다지 좋은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런대로 살아오는 데 있어서, 무언가 만들어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내심 합리화하며 항상 생각의 꼬리를 내린다.


이런저런 감상에 젖어있다가 촬영 시안들을 열어보면 덜컹하고 현실로 돌아간다. 사고의 기어가 후진에서 전진으로 바뀌며 분주하게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이럴 때면 이중인격을 가진 건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사실 종종 듣는다. '촬영을 시작하니 인격이 변하네요.' 하고. 잘 모르겠다. 둘 다 나 같기는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돌아오는 길엔 늘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햇살 좋은 바람 부는 테라스에서 낮 술 마시며 멍청하고 부끄러운 소리들이나 실컷 하고 싶다. 힘을 내,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 지나간 날들의 멍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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