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기록

by 노엘

비가 내리는 계절이다. 바람은 눅눅하고 무심하게 거칠었다. 더 거세게 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범위 밖의 자연현상으로 도시가 고요해지는 풍경은 왠지 안심할 수 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리고 그런 풍경을 좋아한다. 예를 들자면 태풍.


젖은 아스팔트 위로 축축한 흙냄새가 났다. 콘크리트 틈 사이에도 많은 기억들이 녹아있었다. 내가 사는 도시를 좋아한다. 가장 처음 사진을 하겠다고 자리를 잡았던 곳은 홍대입구역 2번 출구 근처의 반지하에 있는 어두운 방이었다. 낮에도 밤에도 조도가 비슷해서 영원히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은 곳이었다.


노후된 건물의 용도변경으로 인해서 1년여 정도밖에 지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그 시기는 내 삶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많았던 해 그랑프리가 열리면 손쉽게 우승을 할 정도로 기억될 만한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그 사이 세 번이나 더 이사를 했지만 여전히 홍대입구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지내고 있다. 나고 자란 것은 아니지만, 흔들리고 중심을 잡고, 다시 흔들리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던 이곳이 나에게는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지난밤 무심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다가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는 것만큼이나 해롭다는 대사가 나오는 걸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글을 읽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담배를 피우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몹시 해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사람과의 경계를 두는 건 나의 기질이자 선택이다. 일을 하는 모습은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개인으로서의 나는 여전히 크게 낯을 가린다. 그래 보이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 앞에서 상당히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옆집의 사람과 아침 출근길 현관 앞에서 우연히 만나도 딱히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인사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이웃은 주차 때문에 차 위치를 바꿔주는 이웃뿐이다. 카톡 프로필로 인해 사진가인 나에게 호기심을 가진 그와는 기묘하게도 함께 술자리를 가진 적도 있지만 이건 워낙 특별한 케이스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에 [습관의 노래]라는 곡이 있다. 무척이나 위로와 공감이 되는 곡이기 때문에 일본어가 불편하지 않다면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사의 일부를 옮겨본다.


"너의 습관을 알고 싶지만 마음이 이끌릴 것 같아서 고민이 돼"


비 냄새가 가득한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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