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만 했었던 말들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메모장을 열고는 한참 동안 깜빡이는 프롬프트만 멍하니 바라봤다.
이미 지나온 서운함이라든가 분개했던 사건들은 대부분 아무래도 좋을 일이 되어 있었다.
며칠 전 지방에서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새삼 해가 짧아진 것을 느꼈다.
낮시간 동안 몽골과 르완다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그러다 보니 먼 곳의 광경들이 떠올랐다. 몽골은 사진으로만 봤었지만, 르완다는 우연한 계기로 직접 갔었던 적이 있다.
사실 가는 순간에도 나는 르완다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다. 지금도 지도를 펼쳐 짚어 보라고 한하면 처음부터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남아공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였고, 이후에도 두 번 정도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지방 소도시의 버스터미널보다 작은 공항에 내려서, 다시 오래된 지프형 트럭을 타고 비포장 도로를 흔들리며 몇 시간이나 달렸다. 해가 저물 무렵이 되어서야 촬영지에 가까운 장소에 다다랐다.
첫째 날 도착한 숙소는 두꺼운 회벽과 아이보리색 페인트로 마감이 된 단층 건물이었다. 하얀 시트가 덮인 작은 일인용 침대가 놓여 있었고, 협탁 위에는 초와 성서가 올려져 있었다. 주변에는 짙은 풀냄새가 가득했다.
이미 다른 나라들을 거쳐 왔던 피로감과 몇 시간이나 흔들리던 차 속에서 진정이 안 되는 몸을 이끌고 그제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밤하늘은 투명했고, 온 우주의 별들이 쏟아질 듯 그 자리를 수놓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경이로운 광경에, 마치 다른 시대의 다른 어떠한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같은 행성 아래에서 이런 하늘이 보이는 곳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이 쏟아지는 별들 사이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따금 무얼 위해 이렇게 힘겨루기를 하듯 긴장하며 달려가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먼지보다 작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에 틀림없을 텐데 숨이 찰 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곤 한다.
며칠 전 지방으로 향하던 날, 휴가 시즌 정체를 예상해 해가 뜨기 전 새벽 시간에 출발했다. 그리고는 우연히 차 안에서 일출을 마주 했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사실 이런 매일을 살고 있었던 것인데 아무것도 모른 채 다른 것들만을 좇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부끄럽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 다섯 시간이나 넘게 걸려 돌아왔지만, 중간중간 먼 곳의 풍경들을 상상하며 밤길을 달렸다. 창문을 모두 열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고단하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