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한동안 밀렸던 세탁기를 돌렸다. 피해 갈 수 없었던 코로나에 걸린 탓에 며칠간 시간을 가늠하는 감각이 무너졌다. 낮도 밤도 시대도 잊을 만한 공백 같은 시간이었다. 복숭아 하나를 꺼내 아침을 대신하고, 어제 새로 받아온 약을 먹었다. 주요 증상들이 사라지고 두통과 잔기침만이 남았다.
생각보다 많은 안부의 연락을 받았다. 다른 누군가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었는데, 고마움과 의문의 마음이 양쪽에서 눈치를 보며 기웃거렸다. 돌이켜보면 늘 그래 왔다. 호의가 찾아오면 항상 의문이었다. 어째서. 하고.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만큼은 선명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고마워요.
그 짧은 사이에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찾아왔다. 창 틈 사이의 빛줄기 하나도 찬란하게 빛났다. 도시의 아스팔트가 식어가는 냄새가 났고, 건조한 바람이 불었다.
고작 일주일 조금 안 되었을 뿐인데, 약을 받으러 나온 세상이 무척이나 새롭고 밝아 보였다. 집에만 있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디까지나 자유가 있고,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면 좋기만 일은 아니었다.
평범하게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해가 저무는 도시는 반짝였고, 사람들은 어딘가 설레는 표정으로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장 붐비는 홍대입구역 8번과 9번 출구를 지나오면서 오래된 기억들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며칠간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많은 생각을 했었던 탓이리라.
거리는 참 많이 변했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나는 늘 같은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시간은 다른 차원에서부터 새로운 시대의 포장을 하고 눈앞에 쿵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때때로 기시감이 들었다. 어딘가 그리운 냄새가 났고, 서둘러 집에 돌아와 다음 목적지를 긴 시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