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by 노엘

낮시간 동안 몇 번이나 에어컨이 제대로 켜져 있는지 돌아보던 일이 무색하게 촬영을 마치고 1층에 있는 주차장에 내려오자 바람은 이미 가을이었다.


소란스러운 비가 긴 시간 이어지고 맑은 날에도 숨이 막히도록 더웠던 여름도 어느새 저물어가고 있었다. 희미한 가을 냄새가 났다.


꺼지지 않을 듯 뜨거웠던 여름은 영원할 것 같았지만 영원하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하던 여름이 영원하지 않았던 것처럼, 시간은 성실한 마부처럼 서서히 계절을 움직이고 있었다.


어린 시절 여름 방학이면 동생과 나는 늘 할머니 댁에 가서 일주일 넘게 지내다 오곤 했다. 경기 북부에 있는 흔히 시골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집 앞에는 배추나 무 따위를 심어둔 제법 큰 밭이 있었고, 조금 더 떨어진 곳에 할아버지는 벼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키웠다.


여름 방학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사촌들도 그 자리에 모였고, 우리는 주변을 탐험하듯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다니거나 마당에 야외용 접이식 침대 같은 걸 펴놓고는 해가 저물 무렵까지 구름이 흘러가는 걸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집 옆에는 큰 밤나무가 있었고, 언젠가는 할머니를 도와 그곳에 평상 같은걸 어설프게 만들어 놓고는 원두막이라 부르며 즐거워했다.


겨울이면 비료용 비닐 포장 따위를 들고 적당한 언덕을 찾아 미끄럼을 탔다. 주변의 논밭이 얼어 있는 곳이 보이면 썰매를 만들기도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모두 겪은 세대였고, 그 탓에 무어라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단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놀러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한 표정과 상냥한 목소리로 예쁘게 이름을 불러주셨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대문 앞에서 서운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주셨다.


지난해 여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올해 여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지독한 팬데믹의 영향으로 인해 임종의 순간도, 장례식의 절차도 쓸쓸하고 고독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날씨만큼은 기억에 남을 만큼 맑고 청명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단하고 힘들었던 삶의 마지막 순간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날일 수 있어서, 그것 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생전에도 그랬던 적이 없었는데 이따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꿈에 보였다. 다른 평행 우주에 존재하는 것 같은 두 분은 행복해 보였다.


생기 넘치는 모습의 젊은 두 사람은 어딘지 모를 유럽의 소도시 같은 곳에서 우연히 만난다. 동양인이 흔치 않았던 시대에 벌어진 사건에 그들은 금세 호감을 느끼고 사랑에 빠졌다.


그곳엔 전쟁도 없었고, 당장 생활을 이끌어 가야 할 의무나 책임감 같은 피곤한 일도 없었다. 그저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 수 있는 해피 엔딩의 세계였다.


두 분을 모두 보낸 뒤 며칠이 지나서인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한 시대가 저문 느낌이 들었다. 거대한 상실감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제야 눈물이 났다.


생전의 기억들이 희미해져 갈 무렵 할머니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규태가 언제 이렇게 자랐어?"


영원할 것 같던 여름은, 어느새 영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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