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by 노엘

연말에 모였던 자리에서 편지를 한 통 받았다. 누구에게 전해질지 모르는 랜덤편지를 주고받자는 귀여운 아이디어가 나왔고, 운이 좋게 가장 처음 고를 수 있게 된 나는 한눈에 들어온 B4 정도 사이즈의 편지봉투를 골랐다. 편지라기엔 조금 커 보이는 봉투를 손에 들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열어 보았다.


편지는 일반적인 종이가 아닌 직접 찍은 사진의 뒷면에 쓰여있었다. 그리고 4x6 사이즈로 인화한 다른 사진이 함께 들어 있었다. 어느 사진 모두 겨울 냄새가 났다. 혹시나 해서 봉투를 거꾸로 들어서 흔들어 보니 겉면에 붙은 꽃잎 모양 우표가 툭 떨어졌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편지였다.



이 편지에 대한 회신을 해야겠다고 줄곧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서 이제야 겨우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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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네 편지를 한참 동안이나 책상 위에 꺼내두고 몇 번이나 읽었어. 손으로 하나하나 써 내린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내가 가졌던, 지금도 가지고 있는 불안을 너도 똑같은 모양으로 가지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거든.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고, '그랬지, 그 불안감은 해일처럼 거대해서 어떻게도 할 수 없었지.' 하고 지난날들을 많이 돌아보게 되더라.




우린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고,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는 네가 쓴 말들처럼 그렇게 아프더라. 하지만 참기만 하다 보면 어느샌가 풍선처럼 터져버리는 거지.




모든 것의 너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이었어. 시간이 지나도 스스로의 마음이 가진 형태는 크게 변하지 않더라. 다만 한 뼘 정도 많은 경험을 하고, 어떤 부분은 체념을 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 그러면서 여러 감정들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




겉으로 보기엔 철이 들었다느니 어른스러워졌다느니 따위의 말을 듣게 되었지만, 마음속으론 변함이 없는 거야. 10대 후반에서 20대에 겪었던 거대했던 모든 순간들이 이미 모든 형태의 나를 만들어 놓았고, 나의 자아는 이미 완성이 되어 있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겠더라.




누군가는 그렇게 말을 하곤 해. 이 정도면 성공하신 거 아니냐고. 아니, 나는 조금도 성공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아직 그다지 행복하지 않거든. 운이 좋게도 하고 싶은 직업을 갖고 멋진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늘 어딘가 큰 구멍이 나 있는 것 같은 걸. 여전히 불안하고, 마음 아프고, 사랑도 이별도 서툴기만 한 사람이더라.




그럴 듯 좋아 보이는 반짝이는 이면에는 누구나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림자는 과거가 될 수는 있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니까.




지금보다 어렸을 땐 친구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기라도 했었지. 이제는 그런 여유도 용납되지 않더라고.




너는 이미 사랑받고 있어, 아마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겠지. 하지만 그때가 되어도 네가 가진 흔들리는 마음들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을 거야. 그럴 때는 스스로가 스스로의 친구가 되어줘야 해. 어디에도 사라지지 않게 꼭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너무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네 솔직한 마음들이 나에게는 아주 큰 위로가 되었어. 그리고 썼다가 지워진 네 이름이 너무 쉽게 보여서 귀여웠어. 또 만나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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