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눈이 내리는 걸 보지 못했다.
몇 번인가 눈이 내린 소식과 사진들을 SNS를 통해서 봤지만 거의 대부분 커튼을 치고 집안에 있던 시간이었다. 아침이면 늘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하늘이 그 자리에 있었다.
해가 바뀌긴 했지만 큰 실감은 없다. 연초부터 예상보다 많은 일들과 마감이 몰렸고, 몰두해서 하나 둘 정리해 나가다 보니 매일 어제에서 오늘이 찾아왔다.
최근 들어 잦은 꿈을 꾼다. 눈을 뜨고 나면 대부분 희미해진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 있지만 기억에 남는 얼굴들도 이따금 찾아온다.
지난밤엔 할머니, 동생, 아빠가 꿈에 나왔다. 할머니는 에메랄드빛의 고운 한복을 입고 네댓 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시절의 동생과 2인용 의자에 앉아서 온화한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선 아빠는 나에게 이쪽으로 오라는(아마도) 손짓을 했다. 그 역시 젊고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할머니는 일이 힘들 거라며 걱정하고 격려해 주셨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할머니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어렸을 때는 맞벌이로 잘 만날 수 없었던 부모님 보다도 방학 때 오랜 시간 함께 해주던 할머니가 좋았다. 늘 등에 매달려 할머니를 불렀고, 밥도 엄마가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다며 엄마를 항상 곤란하게 만들곤 했다.
팬데믹 기간 중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격리된 시설 안에 있었던 탓에 두 분의 임종을 모두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마음의 가시가 되어 이따금 통증을 불러왔다.
꿈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이제는 만날 수 없거나 멀어진 사람들이었다. 다행히도 다시 만난 세계에선 모두 따뜻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들보다 내가 걱정이 된 탓인 걸까.
내가 사는 세계엔 언제쯤 눈이 내릴지, 아직도 따뜻한 겨울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