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셔터가 열리자 새하얀 풍경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줄곧 멈춰있던 세계가 달그락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가 지난 자리엔 두줄로 바퀴 자국이 남았다. 출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도 발걸음만큼은 조심스러웠다.
수년째 익숙해지지 않는 아침 진료와 사전 채혈의 두 시간 사이에 늘 가던 커피빈의 이층 자리에 앉았다. 채혈도 마쳤으니 마음 놓고 커피를 주문했다. 이 자리에 오면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이곳을 찾기 전까지는 지하에 세워둔 차 안에서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곤 했는데, 그러고 나면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이 불편해서 주변에 적당한 곳을 찾다 보니 커피빈이 이른 시간부터 영업을 하고 있었다.(채혈은 오전 7시) 이후로는 루틴처럼 이 자리에 오게 됐다. 고단하고 귀찮은 아침의 게으름을 위로해 주기에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그늘진 곳은 아직 미끄러워서 살금살금 걸었다. '여기서 미끄러지면 오늘 하루는 망한 거나 다름없다고.’ 속으로 주문을 외듯 생각하며 한걸음 한걸음 집중해 걸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늘 고립 돼 있는 기분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사나흘 이상 일을 쉬게 되면 거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깊은 웅덩이 아래로 가라앉고 만다. 며칠 사이의 이야기다. 몹시 위태롭다.
고백하자면 늘 결핍과 가까웠다. 채워지지 않는 것들로 인해 불안했고, 때로는 화가 났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펐다. 조금이라도 이 세계에서 벗어나려 탈출구를 찾아보아도 선명해 보이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언젠가 어리다고 말할 수 있었던 시절, 나는 지금 정도의 나이가 되면 행복한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라 막연한 상상을 했다. 당시에 스스로가 가지지 못했단 여유 있고 따뜻한 어른 비슷한 것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유감스럽게도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수많은 결핍을 지닌 채로, 작은 방 안에서 먼 미래를 상상하던 그날의 나와 조금도 달라져 있지 않았다.
며칠 전 술에 취해 친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대뜸 가끔 전화를 걸어도 되냐고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걸어도 괜찮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전화는 걸지 않았다. 고맙다는 답장만 보내두었다. 아마도 도저히 그대로는 잠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거절당해도 가장 무해한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이 일은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집에 돌아와 화면을 뒤로 돌려 감듯 주차장 셔터가 닫히고, 눈으로 가득 뒤덮인 세상이 천천히 페이드아웃 됐다. 그리고 단 한 번 밖에 만난 적이 없었던 사람에 관해 조금 생각했다. 밤새 눈은 쌓여갔고, 아침이 되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어제와 비슷한 하루가 시작됐다.